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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Oct 28. 2022

정신 장애인이 되지 못한  정신 질환자

사회가 가둔 병 : 정신 질환은 언제나 예외였다

 정신과 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고 벌써 6년이 지났다. 6년 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증상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반복적인 극심한 우울 증상을 보였고 꾸준히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결국 사건이 터진 건 2년 전이었다.

 꾸준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충동과 우울증세, 알코올 중독이 겹쳐 나는 패닉 상태였다.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병원에 가길 거부하기도 했다. 매일 소주 한 병 이상을 마셨고 충동적 행동을 했다. 거식 증세가 심해져 몸무게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실신까지 이르렀다. 웬만해선 보호자를 호출하지 않던 주치의도 이번만은 예외였다. 말을 할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보호자를 바꿔달라 하기도 했다.

 주치의는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입원할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한 달 입원비가 적게는 8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이었는데, 그 돈이 없었다. 경제적 이유와 치료에 대한 의지 상실로 나는 계속 입원 치료를 거부했다. 보호자 또한 보호 입원까지 시키고 싶어 하진 않아했다. 대신 일터에 얘기를 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를 보호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했다.



동사무소를 찾아가다

  정신 장애인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맘때였다.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면 최소한 경제적 부담은 덜 수 있고, 보호자 또한 경제 활동을 못하며 나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반복적인 우울증세는 나의 삶을 바꾸었고 '완치가 힘들다'라는 얘기 또한 들은 상황이었다. 나는 보호자와 상의한 뒤 동사무소를 찾았고 사회복지사를 통해 상담을 받게 됐다.

 집과 가까운 동사무소를 찾아가 직원에게 "정신 장애인 신청 상담하러 왔는데요."라고 말하자 상담 공간으로 안내했다. 상담 공간은 약간 분리가 되어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나는 정신 장애인이 되는 요건이 무엇인지, 복지 혜택은 무엇인지 물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요양 혹은 입원비 지원이었다. 그러나 지원사항은 많지 않았다.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복지사는 장애 인정이 된다면 다시 지원 상담을 해주겠다며 필요한 서류를 정리해 프린트해 주셨다. 이어 장애인 등록 및 서비스 신청서를 작성했다.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차근차근 설명해주어 무사히 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필요한 서류는 장애진단서, 검사결과서, 진료기록지였다. 이는 모두 병원 측에 요청해야 하는 사항이었다. 나는 주치의에게 직접 얘기하기 어려워 보호자에게 부탁했다. 보호자가 병원에 동행했고 심리상담을 마친 뒤 보호자가 주치의와 면담을 하며 필요한 서류를 요청했다. 이때 주치의는 내게 '이수연 씨가 진료기록지를 보지 않게 해 달라'라고 보호자에게 부탁했다. 6년 간 봐온 주치의가 나에 관해 분석한 내용을 내가 보게 되는 것이 앞으로의 치료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주치의의 부탁대로 나는 진료기록지를 보지 않았다 그간의 상담 기록은 너무 많아 1달에 1 정도의 내용만 모았고 그것만 해도 사전 두께였다. 장애진단서에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F33(재발성 우울장애) GAF점수가 41~50 사이가 나왔고 정신장애 2급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진료기록지의 내용이 궁금했으나 이는 보호자가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고 문서 위조 방지를 위해 서류를 확인  서류봉투에 밀봉하여 전달받아 열어볼  없었다. 서류는 방문했던 동사무소에 제출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장애 심사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정신 장애인이 되지 못한 정신 질환자

  심사 기간은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기다림 끝에 받은 심사 결과는 미승인이었다. 간단한 사유에는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지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 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공단의 결정에 의의제기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럴 힘이 도저히 없었다.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정신 장애인 신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이마저 승인이 되지 않으니 어디도 받아주는 곳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공단의 결정에 완벽히 의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반복적인 우울증세와 함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어떻게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내가 했던 비정상적인 행동과 말, 생각은 모두 진료기록이 되지 않고 내 속에 품어 있을 뿐이었다.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때엔 입원 치료를 통해 그 시기를 넘기기 위해 노력했고 직업도 출근해야 하는 일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를 택했다. 실제로 정신병원 입원 2회 차까지만 해도 프리랜서긴 해도 계약직으로 월급을 받고 출퇴근을 했지만, 반복적으로 입원을 하게 되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후 비교적 자유로운 작가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경제적 활동으로 인한 생계유지 방법을 '직업'이라 칭한다면 아마 나를 작가라고 부르긴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공단 측에선 이를 '사회생활'로 인식했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정신 장애인이 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든 사회 속에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나를 제도의 보호 밖에 내몰았다.




 <사회가 가둔 병 : 정신 질환은 언제나 예외였다>에선 '실제로 정신 장애인의 등록률은 2017년 기준 86.2퍼센트다. 이는 전체 장애인의 등록률인 94.1퍼센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정신 질환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정신 장애'로 정의하기를 원한다. 이는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모델에 근거한다'(본문 72p)라고 밝혔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장애학에서 근거하여 사회적 모델로 접근하게 되며 사회, 문화, 물리적 구조를 문제 삼게 되지만, 정신 질환자를 향한 시선은 '의료 모델'로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작용한다. 정신과 약물을 복 욕하는 것, 치료를 받는 것 모두 개인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사회적 모델로 문제를 제기하면 '사회는 도대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정신 장애인이 되지 못한 정신 질환자는 이 의료 모델의 시선 속에 자신마저 가두게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사실, 정신 장애인이 된다고 해서 완벽한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노력을 탓하게 되는 의료 모델적 시선을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정신질환은 4명 중 1명 꼴로 겪게 되는 흔한 질병이기도 하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정신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억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안정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울함과 불안함, 망상에 자신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같이 움직여 준다면 이 마음의 고통을 나눠 들어 조금은 더 살아가 보자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사회가 가둔 병 : 정신 질환은 언제나 예외였다>에서 가장 큰 위로는, 이 모든 고통이 나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메시지였다. 항상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고 조절하지 못하면 나의 잘못이 됐다. 정신 장애인을 신청했던 건 제도적 보장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아픔에 대한 인정 욕구였다. 영화 <굿 윌 헌팅>에는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처럼 정신 질환자들에게도 그들 개인을 탓하는 시선보단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각종 기고 및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번개탄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소울 하우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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