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로 살아남기
모니터에 알바몬이 떠 있다.
십 년 만에 들어간 알바몬은 날 기억한다.
열일곱 적 올려놓은 이력서는
스물까지 업데이트가 되어있다.
너는 아직 날 잊지 않았구나.
나는 널 잊고 싶었어.
모른 척 살아가고 싶었어.
너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게
그 정도로 잘 살아보고 싶었어.
하지만, 결국 난
너를 잊을 수 없는 걸까.
출퇴근이 편한 거리로 설정해서
구인공고를 본다.
쇼핑이라도 하는 듯
시급과 근무시간을 까다롭게 비교한다.
스크롤이 내려간다.
쭉쭉
쭉 쭉 쭉쭉쭉
근데 나,
뭘 하고 싶은 거야.
돈을 벌고 싶은 거야?
경험이 필요한 거야?
이제 어른이 될 심산이야?
(아니)
뭘 하고 싶은 거야.
뭘 하고 싶어서 십 년 만에 돌아온 거야.
그때 철없는 속마음이
울고불고 소리친다.
글을 쓰고 싶었다고!
나도 돈 버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합리적인 겉마음은
차분하게 설득한다.
24시간 동안 글 쓸 거 아니잖아.
몇 시간 일한다고 글 못 쓰는 거 아니잖아.
혹시
전업작가라는 고고함을 유지하고 싶었니?
알량한 명예욕이었니?
(으윽)
통장잔고를 본다.
너는 왜 항상 초심을 잃지 않니.
개설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니.
의문을 품다가 문득 떠올린다.
알바몬이 아무리 나를 기억해도
내 통장 언제나 초심이었다는 걸.
그렇다면,
알바를 해도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얘긴가?
이미 틀린 건가, 나?
모니터에 알바몬이 꺼졌다.
십 년간 날 잊지 않은 알바몬이
어른스런 작별인사를 한다.
어차피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면
하고 싶은 걸 해.
알량한 명예욕도 부리고
고고한 척도 해 봐.
그런 것들마저 꼴 보기 싫어지면
그때 다시 돌아와.
나는 널 기억하고 있으니.
눈물이 또르륵
흐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마워.
내 이력서를 기억해 줘서.
나는 다시 돌아간다.
전업작가의 삶으로.
아무생각 없는 글이 필요해서
아무생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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