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움 요청하기 :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이전 편을 읽어본 사람은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의지와 의존이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어?
이 의문은 아주 자연스럽다. 내가 의지하기에 앞서 의지와 의존의 차이를 먼저 얘기한 것은, 의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의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의지가 의존으로 넘어가는 순간, 상대는 지친다. 지친 상대는 작은 말실수부터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의지를 잘하기 위해서는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협력 관계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의지가 필요한 때
의지에 조건을 따지는 것에 어폐가 있지만, 누구나 의지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누구나 중 누구는 그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의지가 이어지다 보면 홀로 서야 하는 순간마저 습관처럼 의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의지하기 위해 내 마음에 물어보자.
지금은 얼마나 의지가 필요한 순간인가요?
1. 내 행동을 주체하고 싶으나 주체할 수 없는가?
2.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지만, 도저히 방법을 알 수 없는가?
3.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가?
4. 의지하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는가?
5.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 물음은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를 필요로 할 때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하나씩 이유를 설명하자면, 1번(1. 내 행동을 주체하고 싶으나 주체할 수 없는가?)의 경우 내가 이 상황을 '실은 해결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지금 힘든 이 상황이 만족스럽고 스스로 벗어나기 싫은, 그런 상황.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마음속에 들어오는 말은 어느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진짜 도움을 원하는 것인지 질문한다. 만약 [아니요]라는 답이 나왔다면, 그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2번(2.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지만, 도저히 방법을 알 수 없는가?) 역시 상황의 해결에 관한 의지가 있으나 나 스스로 방법을 알 수 없을 때 타인을 찾게 된다. 이럴 때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할 방도를 찾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분들이 자신 없게 "글이 안 써진다."라고 말하면 나는 괜찮다고 한다. 내가 함께 고민할 테니 우리는 뇌가 2개지 않느냐고.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
3번(3.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가?)은 '얼마나 위기상황인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 곁에서 나를 통제해야만 한다. 정신이 좀 돌아올 때까지라도. 이럴 때는 가까운 사람이라도 힘든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병원을 찾는다. 가까운 이들에게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서. 이 경우에 해당된다면, 치료기관이나 병원이 적합할 수 있다.
4번(4. 의지하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는가?)은 '새로운 시도'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울한 사람은 늘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도 많다. 이 때문에 혼자 해결하려다 일을 키우고, 결국 혼자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도움을 받으면서도 죄책감을 가진다. 그렇기에 '아직 혼자 해결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해도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해 본 적 없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5번(5.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가?)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찔렀을 것 같다. 혼자서도 안 되는 것 같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 연락할 사람이 없다. 휴대전화를 켜고 연락처를 훑어보지만,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연락처 속에 당신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작은 도움을 줄 누군가는 있기 마련이다.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작은 마음이라도 모아야 한다.
의지를 마음먹다
자, 여기까지 당신은 의지를 '마음 먹었'다. 마음을 먹었으니 당장 연락을 할까? 싶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행여나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수 있고 행여나 더 상처받지 않을까 마음 졸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상대가 나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게 유도(?)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도움받고 싶은가?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자주 받았다면 익숙한 질문일 것이다. 주치의는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늘 내게 와 물었다. "제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때는 나도 초보 우울러였고 주치의도 나를 모르기에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분명해졌다.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마음을 주치의에게 말했다. 그리고 주치의는 지금도 그때의 약속대로 행동한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이건 치료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주변에 가까운(혹은 먼) 사람에게 요청을 할 때에도 무작정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보다 내가 무슨 도움을 받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만약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면 '오늘 밤만 곁에 있어줘.'라고 분명히 제시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다 꺼내고 싶다면 '무슨 말을 하든 내 얘기를 듣기만 해 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도움을 요청할 때엔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내가 바라는 것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도와주는 이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혼동도, 부담스러움도, 실수로 상처 주는 일도 줄어든다. 상대가 바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마음을 위한 일이다. 그러니 의지하는 것을 미안해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도움 받고 싶어 하는지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의지 목록
그래서 의지할 사람이 도무지 떠올리지 않는 당신. 괜찮다. 이제부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함께 떠올릴 테니까(뇌가 2개이지 않는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가족이나, 가족이어서 더 어려운 경우가 수두루빽빽하다. 나도 친구에게 말해도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한다. 만나는 이가 있다면, 부탁할 수 있겠지만 모두에게 애인이 있지 않으니 열외로 두자. 그렇다면 누가 남을까? 대충 내 뇌로 질문을 만들어봤다.
1. 내가 도와준 사람이 누가 있을까?
2. 그래도 잊지 않고 가끔 연락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3.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4. 내 사정을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5. 지금 당장 죽고 싶다고? 1393 자살 예방 전화는 뭐라고 말할까?
몇 명의 사람이 떠올랐는가? 몇 번에서 누가 떠올랐는가? '아, 얘한테는 좀 그런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지가 절실한 지금, 가장 따져야 하는 것은 누가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는거다. 부끄럽고 민폐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도 괜찮다. 나중에 괜찮아지면 그 사람을 챙겨주거나 보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삶은 민폐를 주고받는 일이지 않나. 당신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면 갚을 기회는 넘쳐나게 돼 있다.
단, 의지 목록에 1명밖에 없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유일하다는 것은 특별함을 주기도 하지만 부담감을 남기기도 하니까. 최소 3명 이상 어떻게든 떠올리자. 소중한 단 한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자. (단 한 명이 5번에 해당한다면 괜찮다. 전화를 받는 분은 계속 달라질 테니. 그래도 목록은 적어보길.)
오늘의 의지하기
1. 지금 얼마나 의지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2. 의지한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하자.
3. 의지 목록에서 의지할 사람을 선택하자.
4.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제시하자.
다음은 의지하기 마지막 단계로 가려한다. 뇌가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좋은 의지 비법이 있다면 서로 공유해 보자. 부끄러워하지 않고 댓글을 달아보는 거다. 조금은 뻔뻔해야 삶이 편해지곤 하니까.
오늘의 숙제는 의지목록 만들기다.
1. 이름 / 전화번호 / 연락 가능 시간대 / 요청할 수 있는 내용
2. 이름 / 전화번호 / 연락 가능 시간대 / 요청할 수 있는 내용
3. 이름 / 전화번호 / 연락 가능 시간대 / 요청할 수 있는 내용
최소 3곳 이상 목록을 채워보자. 더 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적어보아도 좋다. 의지할 수 있는 이유를 함께 적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세상에 내가 필요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필요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숙제 : 의지 목록 3개 이상 작성하기
※심화과정 :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했던 순간을 적어보기
#5_자살 충동 매뉴얼 /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나요?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새 연재물로 매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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