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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Oct 20. 2023

내 고통은 ‘진짜’일까?

#3 고통 알기 : 고통은 개성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병원에 입원해 보았다면, 통증 척도 이미지를 본 적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수두룩한 입원 기록을 가지고 있기에 발밑에는 늘 통증척도가 적힌 이미지가 붙어있었다.


통증 척도 이미지


 보통 신체의 고통은 이렇게 표정으로 통증의 정도를 파악하는데(의료진은 통증의 정도에 따라 진통제를 처방하게 된다고), 마음이 아픈 것도 이런 표정으로 통증을 파악할 수 있을까. 얼굴이 붉어져 울고불고 소리를 질러야만 최고의 고통(10)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한 마음은 아래 이미지와 같다.


부족하지만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


 그렇다. 마음은 무슨 표정이든간에 그냥 최고 고통 수치였다. 안부를 묻는 의료진에게 미소로 답할 때도, 혼자 병실에 남겨져 생각에 푹 빠져있을 때도, 몸이 떨리고 눈물이 역류하듯 왈칵 쏟아질 때도 마음은 항상 최고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을 견뎌내야 했다.



고통과 불행의 상관관계


 그 당시, 모든 의료진을 포함해 주변 사람까지 내게 무엇이 힘드냐고 물었다. 객관적 상황에서 나는 인생 최고의 '행복해야 할 시기'에 해당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꿈도 이뤘고, 안정적으로 돈도 벌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그 사람은 부족함 없이 잘해주고, 아무도 내게 상처 주지 않는 상태. 요리보고 조리봐도 우울할 이유가, 즉 불행이란 게 없었다. 물론 살아오며 갖은 불행은 존재했지만, 그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행복해야 할 순간에
행복할 줄 모르는 나는
살 가치가 없어!


 나 스스로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나. 내 마음은 계속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이후 정신분석을 통해 내 마음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판명 났다. 계속 상실만을 반복하는 삶을 살다 갑자기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자 '이것도 잃어버리고 말 거야!'라며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행복할 때 죽어야 한다'라던가 '난 행복이란 감정을 모른다'는 인지적 오류가 합쳐지며 나는 죽음의 문턱을 향해 갔다.


 이후 작가가 된 나는 여전히 마음에 최고의 고통을 품고 살았다. 겉으로 웃을 정도의 사회성은 있었다. 덕분에 '넌 그나마 행복한 편'이란 말도 더러 듣고 살았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기회도, 성취도, 주변에 좋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불행이 없는 나는 남 탓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자신을 탓했다. 이렇게 가진 것이 많은 주제에 아픈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그러던 어느 날, 정신질환 인식에 관련하여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을 가지는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는 마음이 아픈 분들도 더러 있었고, 그들의 보호자도 있었다. 누구 하나 선뜻 손들기 어려운 분위기에서(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어떤 분위기인지 바로 알 것이다) 어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는 특별한 불행이 없는데도 마음이 힘들어요.
제 마음은 거짓인가요?


 

 띵.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분의 힘든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본인이 힘들다면, 아프다면, 고통스럽다면 그런 것이다. 그게 마음이다. 이 자리까지 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 이 사람의 마음은 분명 '진짜'다. 나는 그분에게 대답했다.


 "반드시 불행이 있어야만 '아플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다 달라요. 다른 환경, 다른 부모, 다른 지인. 심지어 우리를 이루는 세포마저(DNA라고 하죠) 다르죠. 그런 우리가 느끼는 고통도 제각기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특별한 불행이 없어도 마음이 아플 수 있죠. 그 마음은 진심일 거고, 저는 의심하지 않아요. "


 나는 유창하게(?) 대답하며 내가 한 말을 곱씹었다. 나 역시 자꾸만 '아플 권리'를 찾아다닌 것은 아닌지. 아픈 마음을 거짓처럼 여기지 않았는지. 내 아픔은 오롯이 내 것인데. 그 누구도 대신 느낄 수 없는 나만의 것인데.



고통이라는 개성


 인문학 선생님과 지성이 넘치는 출판사 대표님, 고양시 최고 백수와 나. 나이대도 제각각인 넷이 모여 수육에 소주를 마시며 고통에 대해 말했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철학에서 왜 자꾸 고통에 관해 말하는가? 고통이란 실재하는 것인가? 다소 난해한 물음 속에 사월의책 대표님의 말이 마음에 쑥 들어왔다.


고통이란 개성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지성이 넘치는 대표님은 고급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철학적으로 고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고통이 타인과 내가 분리되는 경계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을 상대는 고스란히, 완전히 똑같게 느낄 수 없어요. 다만 짐작할 뿐이죠. 그런 면에서 상대와 내가 분리되는 시점, 그게 고통인 거죠."


 철학적 논평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려운 말을 싫어하는 작가인 나는 말했다(다행이 나는 막내라 조금 무지해도 귀엽게 봐 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아프다고 하면
비교할 수 없이 아프다는 거군요!"



 나는 그 말을 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내 고통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실은 비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말해도 진짜라는 것에. 내 고통 척도의 답은 내가 매기는 일이라는 것에. 내가 답을 10으로 적으면 10이 맞고 5로 적으면 5가 맞다는 것에. 이렇게 편안할 데가. 내 고통이 드디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고유의 고통이 있다.

 불행과 비례하지 않는 나만의 고통이.

 의심하지 말고 고통에게 마음의 자리를 주어도 된다.

 '진심'이라는 자리를.



 당신은 당신의 고통에게 몇 점을 주고 싶은가?



#3_자살 충동 매뉴얼 /고통 알기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매주 토요일, 브런치에서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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