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감정 기복 알기
얼마 전, 참여형 프로젝트 그룹 '3355 콜렉티브'에서 연락을 받았다. [정신과 꽃가게]라는 이름으로 정신건강 인식개선을 위한 팝업을 진행하며 오프닝 파티에 참석할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동료 작가와 함께 [정신과 꽃가게]를 방문했다. 직접 만지고 쓸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와 함께 눈에 띈 것은 [감정 기복 상태 체크리스트]였다.
[감정 기복 상태 체크리스트] *개수를 체크해 보아요!
1. 쓸데없는 걱정이 많고 불필요한 생각도 많다.
2.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자주 우울해진다.
3. 잠을 청하지만 자꾸만 뒤척이게 된다.
4.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진다.
5. 일이 잘 안 풀리면 자책을 자주 한다.
6. 나도 내 감정이 왜 안 좋은지 모르겠다.
7. 눈물이 많고 잘 운다.
8. 몸이 처지고 무기력하며 움직이기가 싫다.
9. 칭찬을 못 믿는다.
10.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소리를 지르고 싶다.
11. 사람에게 상처를 잘 받는다.
12.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서운해한다.
제공_사랑의전화복지제단
나는 몇 점이 나왔을까? 먼저 속으로 개수를 세어보았을 당신을 위해 결과를 보여주겠다.
[결과]
-0~4개 선택 시 : 적당한 스트레스로 정상적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지 않은 상태.
-5~8개 선택 시 : 경미한 감정 기복 의심. 심하지 않지만 기분 전환 필요.
-9개 이상 선택 시 : 극심한 감정 기복 상태. 오래 지속된 경우 전문의와 상담 필요.
그래서 나의 결과는...! (두구두구두구) 만점이다! 12 항목 중 12개가 나왔다! 감정 기복 상태 체크리스트가 수능이었다면 SKY에 갔을 텐데! 이 상태는 무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니까 나는 극심한 감정 기복 상태에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7년이나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받았는데도! (그래도 0개는 삶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야박한 결과다.)
여기에 공감한다면 당신도 SKY!
자, 이제 감정 기복이 극심한 나의 아주 평화로운(?) 일상을 들여다보자. 일단 나는 엄청난 무기력(8번)에 잠을 굉장히 많이 잔다. 충분히 잠을 자도 바로 일어나지 못해 누워있고, 누워있다 보면 다시 잠에 든다. 이렇게 깨고 뒤척이다(3번) 잠에 들고 겨우겨우겨우 일어난다. 잠든 시간은 전날 밤 12시. 일어난 시간은 오후 1시. 13시간을 잤다. 평범한 수치다.
정말이지 씻기 귀찮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몸을 이끌고 세수를 한다. 어찌어찌 밖에 나갈 준비까지 한 뒤 음악을 들으며 출근길에 둠칫둠칫.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오늘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리 일을 해야 나중에 편하니 오늘은 꼭 밀리지 않고 하리라. 스스로 다짐과 약속, 복사, 스캔까지 하고 작업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소파에 눕는다.
막상 오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다시 8번). 그냥 소파에 몸을 맡기고 축 늘어져있다. 이때 온갖 생각이 나를 걱정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1번). 이렇게 있다면 오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아무것도 못하면 또 죄책감에 하루를 망칠 텐데. 해야 하는데. 움직여야 하는데. 소파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하고(2번) 기분이 나빠진다(4번). 왜 인지 모르겠다(6번).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화가 나 소리를 꽥 지르고 싶다(10번). 하지만, 혼자 쓰는 작업실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깽판을 친다. 상상으로 뛰어다니면서 "으아아ㅏ악!"소리 지른다. 후... 일할 시간이다.
겨우 자리에 앉으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내게 프린터기라는 별명을 주었지만, 실은 그렇게 쉽게 글을 쓰진 못한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자책(5번)으로 넘어간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7번). 글도 쓰지 못하는 작가라니! 정말 나는 쓸모없는 것 같아! 눈물을 삼키며 겨우겨우 글을 쓴다. 근데 다 쓰고 나니 또 잘 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4번... 그만해). 다시 헤헷 웃고 있자 작업실 동료가 말한다.
"하루종일 누워 있다가 이거 한 거예요?"
내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자신과의 싸움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고작 이거라니. 상처를 받지만(11번) 겉으로는 괜찮은 척한다(12번, 곧 서운한 상태다). 바로 또 표정이 어두워진 내게 동료는 말한다.
"그래도 수연 씨는 글을 잘 쓰잖아요. 뭘 또 그래요."
'그짓말' 속으로만 생각한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을 마저 마친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내일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다 못해 깜깜하다. 하지만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수면제를 먹고 뒤척이다 잠에 든다. 외로운 밤이다.
피곤하시죠?
간단한 나의 예제를 통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부류일 것이다. 하나는 공감하는 부류, 또 하나는 '피곤하게 사네...'라고 생각하는 부류. 그렇다. 나도 쓰면서 내가 엄청 피곤한 사람이라는 걸 막 깨달은 참이다(유레카!).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감정 기복은 굉장히 피곤한 상태라는 것이다. 보는 사람도 피곤하고 겪는 사람도 피곤하다. 그런데 주체할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피곤함이 이어지면 무기력이 되고 무기력이 이어지면 우울증이 되고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사고가 생겨난다. 감정 기복이 심한하면서 자살사고 혹은 시도가 있는 사람일수록 자살사고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더 빠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낮에는 웃다 밤이 되면 바로 죽고 싶은 것이다. 낮에 멀쩡히 만난 사람이 다음날 병원에 가 있는 상황 또한 일어나게 된다. 주변은 패닉에 가까울 것이다. 어떠한 신호도, 기색도 없어 보였을 테니까.
여기서 하나. 인간은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 감정 기복을 일으키는 요인은 많다. 갑자기 친구가 답을 하지 않거나, 과거의 안 좋은 날이 떠오른다거나, 상사가 나의 실수를 따진다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잡초가 깊게 뿌리내리기 전 뽑아버리는 것이다. 감정 기복 자체를 줄인다면 갑작스러운 자살사고가 찾아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감정기복을 줄인다 > 스트레스를 줄인다 (일시적인 효과)
감정기복을 줄인다 > 스트레스를 잘 처리한다 (장기적인 효과!)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은 단기적으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스트레스 자체를 처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스트레스가 찾아올 때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면 아마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나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나의 주권을 스트레스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트레스 자체를 내가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감정을 당신이 컨트롤하는 것이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내 마음은 내거니까.
감정기복을 줄이기 위해서 오늘의 짤막한 팁을 남긴다.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상황이 오면 이렇게 해보자.
1. 코로 깊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신다.
2. 코로 한번 더 짧게 들이마신다.
3. 입으로 숨을 푹 내쉰다.
4. 이 행동을 이성을 찾을 때까지 반복한다.
※숙제 :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호흡법 해보기.
※주의! 상사 앞에서 호흡법을 한다면 한숨처럼 보일 수 있으니 자리에서 작게 시도할 것!
※심화과정 : 극심한 감정 기복+자살충동이라면 제거할 수 있는 스트레스 요인을 하나라도 찾아보자. 이러한 경우 안전한 상황에 들어오는 것이 최우선이다.
#2_자살 충동 매뉴얼 / 감정 기복 알기
[정신과 꽃가게 팝업정보]
-기간 : 2023.10.7 ~ 2023.10.19
-장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31-1 POP남산
-정보 : 개개인을 마음을 살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가드닝 체험이 가능합니다. (누구나 참여가능)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새 연재물로 매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suyeon_lee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