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움 요청하기 : 1단계_의지와 의존은 다르다
의지(依支)
1. 명사. 다른 것에 몸을 기댐. 또는 그렇게 하는 대상.
2. 명사.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음. 또는 그렇게 하는 대상.
마음이 오랫동안 힘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말을 마음으로 삼켰을 것이다. 아직 가시가 연해지지 않은 전어를 통으로 먹은 듯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걸리는 말을.
언제까지 그럴 거야?
도대체 뭐가 힘든데?
나도 힘들어.
이 정도만 돼도 양반이겠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아픈 말들이 위로의 말들보다 수두룩하다. 또 뱉기는 얼마나 쉬운지. 나 역시 책으로 "저 아픕니다!!!"를 공표하기 전에 들었던 아픈 말이 있다. 정말 사랑했던 이의 말이었다. 헤어지는 길, 차갑게 돌아서던 그는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연이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가 견디기 힘들어."
그와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그의 말대로 당시 나는 집안 형편부터 여러 문제를 떠안고 있었고,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였다. 그 역시 말하기 힘든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품어주기에는 다소 어렸다. 고작 스무 살이었으니까.
그러나 스무 살의 그 말은 돌고 돌아 서른의 나까지 닿아있다. 힘든 얘길 할 때면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게 되고, 행여 내 얘기만 한 것은 아닐지 신경 쓰게 만든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분명하나, 온전히 '의지(依支)'하는 마음은 어쩐지 두렵다. 상대가 나를, 견디기 힘들어할까 봐.
의지란 무엇인가
의지의 명사적 의미는 가장 앞에서 소개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지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2. 명사.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음.]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가 의지와 혼용되어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의존.
의존의 명확한 의미부터 알아보자.
의존(依存)
명사. 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함.
여기서 더 나아가면 '존재'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대 '현실에 실제로 있음'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의지는 '도움을 받는 행위'이며 의존은 '도움을 받기에 살아가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지와 의존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연속성일 것이다. 의지는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의존은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나의 마음은 '의지'에 해당할까, '의존'에 해당할까? 아마 힘들 때 잠시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의지겠지만, 이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다며 매달리는 것은 의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건강한 '의지'란 '의존'이 아닌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일이다.
나 역시 의지와 의존 사이에서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정신과 주치의와 긴 시간을 보내며 나는 주치의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사람이 내 마음을 다 알아주길 바라고, 내가 힘들 때 나를 보호해 주기 바라며, 언제나 나를 챙겨주길 바랐다(티는 잘 안 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 수 없다. 마음이 그런다 한들 치료자는 그래서도 안 된다. 이를 잘 모르던 나는 막 알을 깨고 눈을 마주친 것이 어미라 생각한 듯 주치의를 따랐다. 이 사람이 없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며 생각은 바뀌었다. 주치의는 내 일상생활 복귀를 돕는 일이지,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더 집중을 하게 되고 그들과 마음을 나눴다. 언제 병원에 가는지 속을 세곤 했는데 그러한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때때로 상태가 악화되면 주치의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 의존에서 의지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이제는 주치의가 있던 없던 죽을 때가 되면 죽겠지 싶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
자살 예방에서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는 환경'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사회에서 고립된 사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살 예방은 고위험군을 찾아내어 '사회적 고립'을 막을 대책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받는 정신건강 복지 서비스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참가한 정신건강 심포지엄에서 의료진은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다' 혹은 '환자가 복지 시스템을 거부한다'라고 말했다. 자살시도를 한 환자를 입원시킨 뒤 복지기관과 연결하려 하면 거절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입원 기간 복지사와의 만남을 몇 번 가져 라포(상호신뢰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걸까?
모두의 마음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는 상대에게 피해만 끼치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비난이 숨어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이란 생각부터 든다.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모르는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마음 쓰이는 일이다. 구구절절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제 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끼치고 만다는 걸. 또다시 이어지는 자살시도로 인한 의료비, 인력, 주변 사람의 상처. 그 모두를 생각하면 필요할 때 도움을 받고 얼른 일어나는 것이 합리적이다.
도와주세요.
이 말은 그 무엇보다 하기 힘든 말이다. 어쩌면 마음속에도 뻣뻣한 전어 가시가 박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내뱉고 나면,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홀로 버텨내던 경험 중 작은 하나라도 도움 받는 경험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속에 남는다. 우리가 겪은 숱한 상처와 함께.
의지하기 단계에 앞서, 연습을 해보자. 아래 문장을 소리 내어 3번 읽어보길 바란다.
-도와주세요.
-혹시 제가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마음이 힘들어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따뜻한 말에는 따뜻한 말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마음은 격정적일지라도 조금 가라앉히고 오늘 연습한 말을 되뇌며 필요할 때 상대에게 말해보자.
※숙제 :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연습한 문장을 말해보기.
※심화과정 : 자살 충동이 들 때 솔직하게 말하며 도움을 요청하기.
#4_자살 충동 매뉴얼 / 의지와 의존은 다르다
*현 자살예방을 직시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새 연재물로 매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suyeon_lee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