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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Feb 02. 2021

광고 영상 제작의 모든 것

48. 손절하겠습니다.

<기획도하고 촬영도하고 편집도하고 디자인도하고 모션그래픽도하는 영상피디가 알려주는 광고 영상제작의 모든 것>


48. 손절하겠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딱 1번 외주에게 일을 맡긴 적이 있었다. 초록색 창 네00과 제휴하여 제작하게 된 조금 큰 규모의 온라인 용 강의 영상이었기에(회사를 홍보하기 위한) 내가 쳐낼 규모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외주를 쓰자고 팀장님께 제안드렸다. 과장님이 아는 분이라고 연결해 준 외주 피디는 방송국을 막 퇴사하고 갓 프리랜서의 길에 접어든 분이라고 했다. 예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촬영 시 그분이 메인, 내가 서브로 들어가서 촬영을 돕기로 했다. 촬영 현장은 매우 힘들었지만 나보다 카메라 3대를 혼자 돌려가며 애쓰는 그분이 더 안타까웠다. 왜인지 나한테 일을 잘 안주는 느낌이었는데 아마 내가 경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은 그 이후에 터졌다.


메일로 온 최종 영상은 생각보다 올드했다. 자막의 오타나 화면의 노출이 갑자기 바뀌는 부분 등 수정할 부분도 많이 보였다. 같은 팀 마케팅 담당자와 함께 영상을 확인하며 수정사항을 적어내려 갔다.


고요한 사무실. 몇 분 뒤 전화가 왔다. 그분이었다.


"네, 피디님, 안녕하세요!"

"네."

"수정사항 전달드렸는데 확인해보셨어요~?"

"아..... 이거 누가 적은 거예요?????"


매우 격양된 목소리였고 나는 당황했다.


"제가 적은 건데.. 왜 그러세요?"

"아, 진짜 어이가 없네. 수정을 이렇게 보.. 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티비 안 봐요? 노출? 슈퍼맨이 돌아왔다 그런 거 안보냐고요. 000 스페셜 안 보셨어요? 촬영하다가 노출 바뀌는 거 몰라요? 아, 진짜 이런 수정 처음 받아보네 진짜."


순간 나도 이성을 잃고 소리치고 말았다.


"저기요! 어이가 없다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조용했던 사무실 안이 술렁였고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복도로 나갔다.


"저기요. 이게 지금 무슨 리얼다큐 프로그램도 아니고 우리 영상에 그 프로그램을 왜 갖다 붙이시는 거예요? SNS에 올라가는 강의 영상 보셨어요? 거기서 그렇게 노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 다 보여주냐고요. 자르잖아요. 편집하잖아요. 저희도 그거 요청드린 거잖아요. 티비를 생각하시면 안 되고 의뢰한 저희의 스타일을 먼저 생각하셨어야죠. 어떻게 전화받자마자 어이없다는 얘기가 먼저 나와요????"


상대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제가 무슨 경력 1-2년 된 신입인 줄 아셨나 본데 저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일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안되죠."

"아니.. 그게 견적으로는 그게 안되니까요.."

"견적 제가 짰어요? 저 그쪽 견적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면 처음부터 견적에 맞지 않는 무리한 수정이다 라고 말씀을 해주시면 되잖아요. 뭐하시는 거예요. 이게."

"아 죄송해요 견적을 아시는 줄 알고.."

"됐고요. 견적 얘기하실 거면 팀장님이랑 하시던지 하세요. 끊겠습니다."


끊자마자 눈물이 났다. 울면 지는 건데. 다짜고짜 어이없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회의에 들어간 팀장님한테 이분과 더 이상 소통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손절이다. 팀장님은 피디와 통화 후 피디가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분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방송국에서 꽤 오래 일한 자신의 경력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를 무시했을 수도,


그렇다면 그분은 무사히 프리랜서의 길에 안착하셨을까?

인터넷을 하다가 한 영상 업체 직원 소개 카테고리는 보던 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분이었다.


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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