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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Aug 01. 2021

비상(非常)한 글로 자신의 비상(備嘗)을 풀어낸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정지음

 다행히도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인식에 대한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유튜브에 자신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관련 영상을 올리거나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공간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글로 공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가 아닐까 싶다. 비슷한 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가져봤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큰 위로를 받게 되고, 익명의 힘을 빌려 그 공간에 댓글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가 정상적이기 쉽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설이 아닐까. 그렇기에 지금 바로 소개할 책은 모두를 위한 정신 케어 비법책이 될 자격이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작가 정지음은 26살의 젊은 나이에 ADHD를 진단받다. 유년 시절, 정신이 산만하고 시험 점수가 과목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했어도 조금 문제아적이고 독특한 성향이라 여겼을 뿐, 자신이 미숙한 전두엽을 지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일지는 그녀의 가족도 의심하지 못했다. 정신과에 간 이유도 어릴 적부터 피웠던 담배를 끊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는 그녀에게 금연을 하는 것보다 ADHD를 치료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고, 자신의 몸에 ADHD란 도장이 찍히자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다. 비(非)가 붙은 모든 부정적 단어에 자신을 결부시키며 비정상이란 단어에 끊임없이 우울한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물기가 사라질 만큼 충분히 울고 괴로워하며 충격을 배설한 후, 그녀는 마음을 조금 달리 먹기로 한다. 모든 만물엔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ADHD 또한 동전의 뒷면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뛰어난 창의력이 존재했고, 그녀는 그중 글쓰기 능력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심리 상담사였다. 작가가 쓴 증상 기록을 읽던 중 상담사는 그녀에게 '반드시, 반드시 긴 글을 써 보세요.'라는 의미심장한 감상평을 남긴다. 결국 그녀는 여러 포기를 거친 끝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긴 글을 쓰게 된다. 그녀의 솔직한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은 제8회 브런치북 수상에서 대상을 받게 된다.


 수상 경력 외에도 그녀는 비가시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얻다. 글을 통해 온전한 '나'가 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글 속의 나는 천사나 돌고래가 될 수 있었다. (......)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단 생각이 들자, 왠지 절실히도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건 이상하게 눈물 나는 감각이었다." -p. 292

 에세이를 쓰면서 자신의 ADHD 증상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스스로를 구출할 방법에 집중하는 작가의 모습은 내 인생에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다. ADHD가 있든 없든, 우린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의식할 때 불안감을 느낀다. 정상인, 일반인에 속하지 않을까 봐. 어쩌면 모든 분야에서 정상인에 속하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개성을 억눌러야 하지 않을까. 정상은 결국 보편성과 연관되어 있다 생각하기에, 어쩌면 그 단어 또한 주관적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탄산수 같은 문장들은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 말장난의 대가로써 시인 중에선 오은을, 에세이 작가로선 정지음을 언급할 정도로, 그녀는 책을 통해 비정상인이 아닌 비범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냈고 이 선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단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그녀의 능력이 너무 부러울 정도로 좋은 글 투성이다. 그녀의 비상한 문장들로 단짠단짠한 성장기를 읽다 보면 비범한 그녀가 금세 좋아질 것이다.




 "다른 ADHD들도 나처럼 새하얀 밤과 깜깜한 낮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친근하고 정중하게 안부를 묻기 위하여, 일단 나의 이야기를 썼다. 모자란 글들을 초대장 삼아 전송할 수 있다면, 나의 해묵은 패배감도 즐거운 파티의 호스트가 될 것이었다." -p. 6


 "네모난 책장에서 만난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마모시키며 둥글어진다면 그제야 의문 없이 기쁠 것 같았다."

-p. 7


 "나는 남들처럼 생각하지 않아 망하는 편이지만, 한 번씩은 남들이 염두에 두지 않는 방식으로 성공한다."

-p. 26


 "나는 마법 상점 주인을 독대하며 '엄청 똑똑한 의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구나. 그런데 책이 많네. 이걸 다 읽은 건가?'라는 상념에 빠져 있었다. 원장님이 '포켓몬스터'의 오박사를 닮았다고, 그래서 그 앞에 손을 포개고 앉은 내가 포켓몬 같다고도 생각했다." -p. 32


 "나는 ADHD에 항복하고, 질환의 파편으로 존재하는 모든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ADHD와 나는 원심분리기에 돌려도 분리되지 않으니 차라리 공존을 택한 것이다." -p. 55


 "ADHD라도 뭐 어때ㅑ용.

 또 지각했어도 뭐 어때ㅑ용.

 맨날 돈이 없어도 뭐 어때ㅑ용.

 끝맺을 말이 마땅치 않아도 뭐 어때ㅑ용!" -p. 56


"나는 무가치하고 무규칙적이며 무방비한 데다 무계획적인가? 무례하다는 점으로 보아 무식하고 무책임해서 무능력한가?"

"나는 무궁무진하고, 어떤 면에선 무고하다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무사함의 증명인 거라고, 단지 상상력 하나로 머릿속에 무성영화 상영관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무수히 많은 날을 살며 그래도 무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무용함과 무용은 한 끗 차이라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p.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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