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고운 Aug 08. 2021

삶의 균형이 무너질 때

시소인생-강주원

 어느덧 백수 9일 차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 날짜를 기다릴 때만 해도 시간은 가속 페달을 밟을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이젠 고속도로 위에서 시속 120km로 달리고 있는 듯하다. 퇴사 당일의 기분을 설명하자면 후련함보단 찌뿌둥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SNS에 들어가 대학 동기들이 올린 게시물을 구경했다. 직장 휴게 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맞대고 찍은 사진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이란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와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를 조금 흐릿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불안감은 하룻밤이 지나자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속에 동요 없는 작은 자국을 남겼다.


 외부적인 스트레스가 0에 수렴하면서, 호흡곤란 증상과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심한 무기력증으로 도망쳤던 나의 열정도 되찾았다. 거의 매일 영어회화와 독서, 글쓰기를 병행하며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퇴근 후의 여가시간이 나에게 사직서 제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듯이, 앞으로 약 두 달이란 시간은 최소한 대학 4년을 다닌 만큼의 경력은 쌓아볼지, 1년 반 정도의 여유자금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작가란 직종 다른 길을 달릴지를 알려줄 것이다.


 여기, 이미 후자의 길을 선택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사람 있다. 1인 출판사 대표이자, 그곳에서 직접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강주원 작가는 신간 '시소인생' 산문집에서 인생을 시소에 비유했다. 한쪽 끝엔 현실, 현재, 타인, 고통이 있다면 다른 한쪽 끝은 이상, 미래, 나, 행복이 놓인 시소. 실제로 우리는 그 위에서 삶의 균형을 맞추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하지만 정가운데에서 수평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상을 좇다 보면 현실이 발목을 잡게 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선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보편적이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될 경우, 타인의 간섭 또한 뒤따른다.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해선 끊임없이 고통에서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행복에 치우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휘청거림의 폭을 좁혀주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첫 문장을 읽은 순간, 이 책에 큰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도 견뎌내야 한다지만,

 싫어하는 일을 견디는 동안

 좋아하는 일이 점점 희미해지는,

 우리네 인생. -p. 12

 

 우리는 저마다 싫어하는 일을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나는 그 선을 넘었고, 번아웃과 극심한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가장 슬펐던 점은 좋아하는 일마저 좋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풀 요인이 사라지자, 그것은 쌓이고 다져지며 거대한 퇴적물을 형성했다. 오래 방치했더니 굳어서 깎이지 않았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되찾기 위해 현재 상황에서 극복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인생은 꿈을 이루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굴러가는 건데, 그 한순간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는 바람에 너무 지치는 게 아닐까. -p. 64


 고등학교 시절엔 단 하루의 시험을 위해 3년을 노력했고, 대학생이 되자 취업만을 바라보며 4년을 공부에 매진했다. 그 덕에 원하던 꿈을 이루었지만 인생은 동화책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은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며 계속되었다. 한순간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기 힘든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작은 틈새 속에서 여유를 즐기기로 다짐해본다.


 자신이 무언가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길을 택함으로써 얻는 '고통의 무게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p. 113


 작가는 현실적인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사실 이 문장을 잘 따르기 위해서는 나란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분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경제적인 안정, 때때로 몰려드는 불안감을 모두 껴안을 만큼 하고 싶은지. 그 정도가 아니라면 직장과 병행하며 도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스스로 선택했던, 그리고 앞으로 선택할 모든 결정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받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내가 한 선택이 모두 옳다고. 가장 나다운 결정이었다고. '시소인생'은 한 번 읽고 덮어놓을 책이 아니다. 또 다른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마다 최선의 길을 선택할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비상(非常)한 글로 자신의 비상(備嘗)을 풀어낸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