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고운 Sep 12. 2021

요즘 애들의 인생 역전 코인 포털, "달까지 가즈아!"

달까지 가자-장류진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1ETH이 ~원이 되었다. 1ETH이 ~원을 돌파했다. 1ETH이 ~원을 찍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내 기분은 떡락과 떡상의 반복으로 파도를 쳤다.

 

 몇 달 전, 아빠가 뉴스를 보며,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노오력'만으로는 나를 포함한 요즘 애들의 미래가 보장되기 힘든 시대다.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는 불안한 앞날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착실히 직장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만으론, 물가상승률과 유사한 이율의 적금만으론, 나 혼자서도 여유롭게 살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그러니 돈을 불리고 싶은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욕심을 넘어, 앞으로를 위한 생존 방식에 가깝다. 자연스레 그들은 주식과 가상화폐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달까지 가자'는 이 과정을 자연스레 품고 있는 소설이다. 마론 제과 직원인 다해, 은상, 지송은 다른 부서임에도 서로의 비슷한 환경에 끌려 금세 친해진다. 그들은 5, 6, 9평 원룸을 벗어나기 위해 상사의 갑질을 참아내며 박봉이지만 따박따박 월급을 입금해주는 회사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러다 평소 돈에 관심이 많던 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큰 수익을 얻게 된 사실을 알게 되자, 다해와 지송은 차례로 그 배에 함께 오르기로 결정한다. 과연 그녀들은 J곡선을 그리며 고공 행진할 수 있을까? 마침내 달까지 갈 수 있을까?


"너도 빨리 들어와. 솔직히 우리한텐 이제...... 이것밖에 없어."


 많은 2030 세대가 이 문장에 멈칫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코인 열차에 늦게라도 합류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가난이 무서운 게 아니다. 이 가난이 평생 지속될 거라는 근거 있는 믿음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집'이다. 서울의 집값은 꾸준히 J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에 주변 지역도 함께 오른다. 전세와 월세 역시 따라서 오른다. 월급이 인상되더라도 얕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릴뿐, 집값 상승의 J곡선에 비하면 발목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린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해서라도 가상화폐나 주식으로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한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저렴한 월세의 서울 원룸 현실이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화장실과 부엌의 경계가 없었다. 변기와 가스레인지가 마주 보고 있는 형태를 보니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장류진 작가는 소설에서 다해의 원룸을 묘사하며 이러한 현실을 잘 녹여냈다.


 "좁은 방 전체가 물바다 상태다. 화장실에서부터 출발한 물거품이 화장실 맞은편에 붙은 싱크대를 지나 방 끄트머리에 놓인 싱글 사이즈 침대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다해가 살던 원룸엔 턱이 없었다. 그래서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와도 방바닥엔 흙과 먼지가 돌아다녔고,  화장실에선 샤워를 조금만 오래 해도 장판까지 물이 들어왔다. 그녀가 원룸을 계약할 당시에는 이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다. 턱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기본 요소였으니까. 알쓸신잡에 나오셨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이 한 인터뷰 영상에서 말씀하셨듯이, '창문이 없는 방이나 반지하 같은 최소한의 주거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는 집은 허가를 내주면 안 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하루빨리 인간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에서만 지낼 수 있도록 이러한 규제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상화폐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란 사실 외에 다른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문제는 오히려 가상화폐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코인으로 한순간에 한강을 갈 수도 있지만, 한 순간에 한강에 집을 살 수 있는 수익을 얻게 된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박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꼭 주변인들이 아니더라도, 미디어에서 수십 억을 벌고 퇴사한 직장인들을 보면 공허함을 느끼 된다. 그 감정은 무언갈 성취하려는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게 만들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도 평소엔 관심도 없던 가상화폐였는데 어느 순간 네이버 '이더리움'을 검색하고 있었다.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이상하게 엄청난 후회가 몰려왔다. 자기 전엔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예전에 백만 원만 사둘 껄." 이제 맨 땅에 헤딩하면 정말 죽게 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두렵다.


 '달까지 가자'는 흥미, 의미, 시의성을 두루 갖춘 소설이다. 서로 다른 매력의 세 사람이 익살스럽게 직장의 구조를 비판하는 모습에 속 시원해지고 이더리움이 떡락과 떡상을 할 때마다 그녀들과 같은 마음을 품게 된다. 그녀들이 인생그래프에서 J곡선을 찍길 응원한다면, '달까지 가자'로 가즈아!


(23분 지각해서 죄송합니당ㅠㅠ)

작가의 이전글 잠 못 이루는 밤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