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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Sep 19. 2021

식물이 바라본 인간의 나약함과 사랑스러움

쓸모 없는 하소연-김민준

(제 블로그에 묵혀 두었던 글을 꺼내보았습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물리적인 무게는 가벼우나 그 본질은 꽤나 묵직한 책.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식물 아글라오네마(영화 '레옹'에서 레옹이 항상 소중하게 가지고 다녔던 식물)와 그를 보살피는 동시에, 친구라 여기며 그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여자, 하소연. 둘의 교감은 연인 사이보다 애틋하였으며 나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 주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얼마 전 SNS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글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는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았다며 이렇게 사람이 복잡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인간만큼 비상식적이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며 입체적이고 복잡한 생명체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 같다. '원래 인생은 혼자다'라고 말하면서 애타게 연인을 찾고 친구를 사귀며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애를 쓴다. 상대의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이면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인간은 가까운 이들의 아픔엔 진심 어린 눈물을 보이지만, 뉴스를 통해 나오는 아주 먼 이들의 아픔에는 그저 잠깐의 이슈로 여길 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이토록 인간은, 따뜻한 동시에 매정한 존재다.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존재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등장하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처럼 말이다. 이렇듯 명확한 경계가 없고 복잡하니,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본인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나조차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데, 상대를 아는 것은 오죽할까. 그런데 이상한 점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보다 남들을 알아가는 시간에 곱절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순서가 뒤바뀌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상대를 배척하고 헐뜯으며, 상처를 주고받는다. 본인과 상대에게 한 없이 모진 말들을 쏟아낸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왜 그 말을 들을 정도로 한심한 걸까. 그래서 이런 나약한 생명체는 우정과 사랑이란 감정에 더욱 자신의 무게를 한껏 뉘이나 보다.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참 모순이 많은 생명체다.


 김민준 작가의 책은 처음 접했는데 글의 표현력과 창의성이 대단히 감탄스러웠다. 어떻게 식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걸까. 그것도 인간이 반할 만큼 멋진 식물로 말이다. 모든 글자가 명대사를 이루었다. 빗소리와 유독 잘 어울리는 책이다.


p. 17


하소연은 스스로 몹시 메말라 있을 때

금방이라도 흩어져 버릴 듯 위태로운 갈증에 사로잡힐 때면

그렇게 눈물이라는 것으로, 울음이라는 행위로 마음에 물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략)...

너는 가장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너는 이 세계 속에서 영원한 타자로 존재하게 될 뿐이야.

당분간은 지금처럼 마음에 물을 주도록 해.


p. 20


그녀가 이 밤을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에겐 차갑고 타인에겐 지나치게 관대하여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기형적인 태도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자생할 수 없는 존재.

해서 마음 편히 고독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뿌리 깊은 두려움이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중심이었고 그것을 도와줄 온전한 버팀목이었다.

나는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다만 내게는 목소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저 잎사귀를 촉촉하게 수분으로 둘러서

나 또한 그녀와 같이 젖어 있음을 알리는 것이 전부였다.


p. 23


타자의 마음을 느끼는 것도 결국엔 나의 마음을 읽는 행위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마음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감정을 해석하는 것일 뿐이지, 그것을 온전히 주고받을 수는 없다.

하여 모든 개개인의 감정은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는 것이다.


p. 29-30


문득, 하소연을 껴안고 싶은 밤이다.

나는 제일로 싱싱하고 건강한 잎사귀 하나를 과감히 내던졌다.

유연하게, 무언의 고백이 탄로 날까 노심초사하며 그 잎 하나가 그녀의 발끝에 닿았을 때,

비로소 나는 외롭지 않았다.


p. 63-64


잃으면서 얻는다는 말, 이별.

그것으로 식물은 스스로를 관철한다.

지나온 계절들을 되돌아본다.

더욱 더 성숙한 씨앗을 품기 위해서 말이다.


p. 86


마음은 사고에 비해 훨씬 더 은유적이다.

왜 인간은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주고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심리적으로 적당한 거리가 모든 이에게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찌됐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모든 이해가 오해를 전제로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 112


현실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을 강요하고,

마음은 조금 더 본능에 층실하길 원한다.

그 간극 사이에서 인간은 실로 불온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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