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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06. 2022

님아 그 학교를 택하지 마오

1장-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내가 사는 곳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중학교 내신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끝날 무렵,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고운아, 너는 내신 점수가 높아서 여고는 합격하고도 남을 거야. 넣어 봐.”

 ○○여고는 남고와 함께 그 지역에서 나름 명문고로 알려져 있었다. 지방에서 인 서울 하기가 쉽지 않은데, 해당 학교는 대입에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 학업 분위기가 좋을 거라는 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얼마 전 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남녀공학인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가 떠올랐다. 피피티 자료엔 솔깃할 만한 장점들이 쓰여 있었다. 나는 예쁜 교복과 중위권 학교라는 점이 가장 끌렸다. 여고는 중학교와 거의 동일한 디자인의 회색 교복을 입어야 했다. 한창 꾸미고 싶어 할 나이에 6년 내내 똑같은 교복만 입고 싶지 않았다. 상위권의 학생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성적을 유지할 자신도 없었다. 더욱이 속셈학원만 다녀도 전교 20등 안에 들던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학업 난이도일 거라는 사실도 알았기에 망설여졌다.


 부모님과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니 모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학업 분위기 조성이 잘 되어 있는 여고에 지원하기를 바라셨다. 결국 나는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성향임을 인정하고 상위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선택이 고난으로 몰아가는지도 모르고.


 실제로, ○○여자고등학교의 학급 분위기는 모범적이었다. 교칙도 엄격하였고,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열정적이었다. 그 덕분인지 한결 수월하게 공부에 임할 수 있었다.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필기도 꼼꼼히 하였다. 스터디 플래너에 계획을 세우며 진지하게 공부를 이어갔다.

 

 얼마 후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역시 난이도가 높았다. 결과는 300명 중 60등대였다. 조금 실망했지만 내신 따기가 어려운 건 예상한 바이므로 너무 위축되진 않았다. 그런데  조금씩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적은 연이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일명 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각 학년마다 열람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슬프게도 좌석 배치는 성적순이었다. 처음엔 창가와 가까운 자리였는데, 조금씩 출입문쪽으로 밀려났다. 서로의 성적을 비교하고 시기 질투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노골적인 기숙사 규칙으로 인해 비참함을 느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나는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 선생님들과 친구들, 부모님도 인정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항상 전교 2등을 하던 같은 반 친구도 내 노력을 알아주었고 그녀가 수업에 불가피하게 빠졌던 날엔 내 노트를 빌려가기도 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허투루 쓰지 못했고 야자가 끝난 후엔 기숙사 자습실에서 새벽 한 시까지 남아 추가로 공부했다. 그런데도 3년 내내 첫 시험보다 높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싶어 여러 공부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인가’란 의구심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성적에 대한 열등감은 사람을 점점 치졸하게 만들었다. 남들 놀 때 실컷 놀던 아이들이 매번 1, 2등급이 나올 때면 허탈함과 동시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공부도 공평하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쉬는 시간마다 내 자리로 다가올 때, 부끄럽게도 그녀가 반갑지 않았다. 이렇게 3년 내내 따라다녔던 열등감은 훗날 대학 생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했다.


  지금은 고등학생 때 친해진 친구들과의 수많은 추억으로 3년 간의 고통이 휘발되었지만 당시엔 □□고등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나를 미워했다. 만약 내가 그곳을 골랐다면 내신 성적이 좀 더 높게 나오지 않았을까. 그럼 수시 전형으로 더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을 텐데. 게다가 여고엔 없는 농어촌 전형까지 있어 오히려 그 길이 내게 유리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스물일곱의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스무 살을 앞둔 나는 현재의 상황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잦은 실패에 의연하게 대처하기엔 그때의 난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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