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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05. 2022

어쩌면 흔한 이야기

<이 책의 끝은 열린 결말입니다>-프롤로그

 아침 8시 알람이 울렸다. “우리 30분만 더 자자”란 엄마의 달콤한 제안에 홀린 듯 30분 뒤로 알람을 다시 맞추고 눈을 감았다. 체감상 1분쯤 지난 것 같은데, 시끄러운 알람이 다시 울렸다. 온수매트로 데워진 몸은 침대에서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9시 반쯤 남자 친구로부터 온 전화에 정신을 차리고 푹신한 이불을 걷어냈다. 옆을 보니 엄마가 누워 있던 자리가 비어있었다. 밖에서 음식 냄새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의 게으름은 오늘치 불안감을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몇 번 해준 후 나갈 준비를 했다.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그만큼 쉬는 시간을 줄이자고 마음먹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슈크림 라떼를 시키고 작업하기 좋은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휴대폰을 엎어 놓은 후 노트북을 열어 한글 창을 띄었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까딱거린 지 20분이 지났다.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만 반복해 흰 여백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슈크림이 커피에 반쯤 녹아 모양이 이상해졌다.


 제목과 달리 흔하지 않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나 보다. 분명 전날 읽었던 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에서 “에세이를 쓸 때 중요한 것은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이다”라는 문장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으면서 완벽한 첫 문장을 위해 애를 먹다니. 이번엔 제목다운 글로 시작하기 위해 고심했고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오늘의 일상 일부를 담기로 했다. 어렵지 않게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이 책은 나의 연대기다. 고등학생 이전의 유치한 모습과 어린 시절 생긴 깊은 상처를 꺼내 보여주기엔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열일곱 살의 나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지금의 내가 가득 담겨 있다. 사실 좀 전까지만 해도 망설였다. 4시간 반 동안 공들여 만든 목차를 보면서 “이걸 사람들이 볼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쓴 이야기들이 어쩌면 흔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지만 곧이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수록 많은 사람이 맞장구를 쳐주지 않을까.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프롤로그 초반엔 오늘의 일상을 담았는데, 본문엔 그날의 일상들을 집어넣어보려 한다. 1장엔 지나고 보면 인생의 작은 조각에 불과했지만 당시엔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여겼던 3년 간의 여고 시절을, 2장엔 하고 싶은 것을 그때로 몰아두었지만 정작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기에도 벅찼던 대학 4년을 담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FM대로 사는 것에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들어서고 나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 본격적으로 생기면서 안정적인 삶을 거스르고 싶어졌다. 3장에선 운 좋게 바로 정규직 대학 병원에 입사하지만 조금씩 삐그덕거렸던 나의 사회초년생 모습을, 4장에선 결국 새로운 길을 방황하게 된 백수의 일상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4장은 현재 나의 모습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기에 이 책의 끝은 열린 결말이다. 어떻게 끝이 날지 작가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스토리. 과연 나는 좋아하는 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한계를 느끼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게 될까. 어떤 길로 나아가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흔한 삶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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