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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Jan 17. 2021

Anne

상상은 꿈을 이루어준다

 (매주 일요일 7시에 올리기로 스스로 약속했는데 혹시나 기다리셨던 분들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마 전 빔 프로젝터를 하나 장만했다. 불을 끄고 흰 벽면에 영상을 비추니 분위기가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 날은 퇴근 후 넷플릭스 드라마 '빨강 머리 앤' 1화를 시청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릴 적 동화책으로 접해서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고아였던 앤이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초록 지붕 집에 살고 있던 나이 든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나는 앤을 참 좋아한다. 개성 있는 빨강 머리와 귀여운 주근깨를 가진 소녀는 당차고 활달하다. 또한 가식이 없고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타인을 대할 때 거의 가면을 쓰지 않는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할 줄 알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출할 줄 안다. 그렇기에 조금 수다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앤은 상상력이 뛰어난 소녀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앤에게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사실 그녀는 밝은 분위기와 달리 슬픈 유년시절을 겪었다. 고아인 앤은 아늑한 초록지붕 집에 살기 전까지 여러 가정집을 전전하며 힘든 노동을 해왔다. 그녀를 입양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앤을 가족이 아닌 일손을 충당해 줄 노예로만 여겼다. 작은 실수만 저질러도 매질을 당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쉽게 희망을 잃지 않았다. 현실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폭력도, 노동도, 배고프다며 우는 아기들도 없었다. 꽃과 나무, 새소리가 들려오는 푸른 초원, 예쁜 가구들이 놓여 있는 자기만의 방,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앤만이 있었다.


 상상력은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의 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앤의 회피형 수단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만 상상력은 현실도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앤의 상상은 긍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그녀를 꿈꾸게 만들었고 현실을 더 열심히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세상엔 앤 같이 상상 속에서 꿈꾸며 사는 어른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고 허황된 생각만 한다며 어른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상상은 상상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더 좋은 현실을 살아갈 시작이 될 수 있다. 꿈꾸던 장면이 일상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앤 같은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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