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고운 Jan 24. 2021

제목 없음

 침체기가 찾아왔다. 요즘 에 대한 전구 스위치가 계속 꺼져 있다. 그래서 이번 주는 글이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다.


 일단 코로나로 인해 공간의 제약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평일은 병원을 가야 할 때 말고는 거의 직장-집의 무한반복이고, 주말에도 필요한 물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원체 집에 콕 박혀 혼자서 사부작 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라지만, 집순이에게도 가끔은 일상에 스파크가 튀어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나는 주로 여행에서 가장 괜찮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편인데,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색다른 환경 속에서 좋은 소재와 문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황이 이러한 탓에,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하러 가는 것마저 힘들어졌다. 생활 반경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생각에도 큰 제약이 생겨버렸다. 어서 빨리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마음껏 사색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두 번째는 바로 높아진 자존감이다.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의아해하는 들이 많으리라 예상된다. 나도 이런 결론이 나왔다는 게 조금 당황스럽다. 자존감이 높아진 건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굉장히 좋은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나에겐 독서와 글쓰기에서만큼은 조금 예외인 것 같다. 자아존중감이 높다는 의미에는 완만한 감정의 굴곡이 내포되어 있다. 즉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에선 희소식이다. 하지만 쉽게 상처 받지 않고 우울해지지 않는 만큼,

행복한 감정에도 차분함을 드러낸다. 예전엔 엄청 슬퍼하고 엄청 행복해했다면 지금은 기준점에서 하향과 상향의 높이가 크지 않다. 감정의 격함이 없어지니 독서를 할 때도 감명 깊은 문장을 마주치더라도 감동과 울림은 여전히 받지만, 이전만큼 한 문장에 꽂혀서 한참 동안 눈물을 보이거나 사색에 잠겨 메모장에 내 감정을 고스란히 남기는 일이 적어졌다. 감수성이 줄어들고 메모장에 모아놓은 글 재료들이 적어지니 첫 줄을 완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높은 감수성이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겐 조금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어떻게든 내 글로 독자분들께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강박이었다.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면서 다양한 깨달음을 얻게 되니 나도 무언가 대단한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글은 써지지 않았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지우기를 반복했다. 일단 흐름에 따라 써 놓고 수정하면 될 것을 한 문장 한 문장 정성 들여 쓰기 위해 노력했다. 때론 평범한 시작이 비범함을 낳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정세랑' 작가님과 했던 인터뷰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들이 물 흐르듯이 글을 쓰는 것 같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멍하니 커서 깜빡이는 것만 보게 된다고. 일필휘지는 유명 작가들에게도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글쓰기는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보다 그 행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훨씬 더 많은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첫 번째는 아직 해결이 불가능하고 두 번째는 굳이 억지로 낮출 필요는 없으니, 결국 세 번째 원인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아주 하찮은 것도 일단 써 보자. 그게 의미를 주는 글이든, 내 일기장에만 있어야 할 글이든 간에 말이다.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난 아직 인생의 경험이 한참 적을 나이고, 앞으로 무수한 경험을 해 볼 나이니까.


 세 가지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단순한 글쓰기 변명거리로 치부될까 염려스럽지만 나는 이런 글쓰기 침체기에도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소재로 만들어 꾸준히 글을 발행하는 나를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주고 싶다.


사진 출처: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An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