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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Feb 21. 2021

완벽한 불행은 없어

고통 투성이 날들에도 행복이란 빈틈은 존재한다.

 나흘간의 설 연휴로 오래간만에 심신 모두 온전한 휴식을 보냈다. 그런데 빨간 날이 많을수록 그로 인한 후유증은 심하다 했던가. 저번 주 일요일까지 휴식에 취해 있던 나의 생체리듬은 새로운 한 주의 시작부터 엄청난 숙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월요일 아침,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내 몸은 물론이고 직장으로 향하는 걸음들이 마치 강철 신발을 신은 것 마냥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게다가 한창 새로운 분야의 업무를 배우고 있던 터라 부담감이 낳은 불안감이 내 몸을 어둡게 에워쌌다. 결국 후유증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후부터 몸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스꺼웠다. 어떻게 버티다 결국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바로 집으로 달려갈 수 없었다. 하필 그 날, 새로운 파트의 직속 상사 선생님과 저녁 늦게까지 남아 실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마칠 때까지 고통으로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으려 엄청나게 애를 써야 했다. 결국 나는 집에 도착한 후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주저앉아버렸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급하게 씻은 뒤, 곧장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잠에 빠져들었다.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월요병이었다.


 이렇게 기나긴 월요일이 지나가고도 평범하지만 평온했던 일상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금요일 저녁까지 멘탈이 약해져 있었다. 업무 실수로 인한 선임의 작은 꾸지람에도 나는 한없이 위축되었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일들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로 날아왔다. 자존감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게다가 한창 일로 바쁜 시기에 새로운 집과의 계약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전세 계약이 처음이라 많은 것이 서툴렀다.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오랜만의 무너짐이었다. 부정적인 단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나는 금요일 밤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심신이 안정된 뒤 주중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정말 5일 동안 불행하기만 했는지. 나는 아주 잠시라도 기분 좋은 사건이 있었는지 시간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다 화요일 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얼마 전부터 매주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 취미가 책과 글쓰기이다 보니 학생 때 이미 시작된 목과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 그날도 예약 시간에 맞추어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고 그때 직원 분께 실비 보험 관련 서류를 받아 왔다. 집에 가서 확인해 보잔 생각으로 봉투를 가방 안에 넣어둔 뒤 바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꺼내 보니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오늘의 명언과 그 아래엔 도수치료와 병행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자는 문구였다. 명언이 사실 운동과 관련된 글이었겠지만, 나는 좀 더 묵직하고 넓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봉투에 쓰인 오늘의 명언은 '낭비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이다'였다. 오래된 형광등이 여러 번 깜빡거리다 켜지듯이 마음의 전구가 지지직거리다 밝아졌다. 그 날 풀려 있던 마음의 나사를 잠시라도 다시 조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검정 물감을 물에 풀어놓은 뒤 계속 확산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계속 반추해내며 검정 물감을 더 많이 풀었다. 다음 날에도 힘든 일상은 계속되었지만 잠시라도 그 한 문장이 내 머리를 밝게 만들었다.



 연휴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의 날들 속에서도 크고 작은 행복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업무 실수가 있던 날에도 칭찬받은 순간은 있었고, 조금씩 나아지는 업무 숙련도에 뿌듯한 순간들도 있었다. 또한 내 힘든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도 곁에 있었다. 나의 연인은 며칠간 계속된 나의 투정을 경청해 주었고 현실적이지만 다정한 말을 아낌없이 내 귓속에 들려주었다. 힘들다는 문자 하나에 바로 집으로 달려와 주었다. 그 덕분에 한두 시간이 즐겁게 흘러갔다. 고마운 사람이다. 외에도 잠깐이라도 힘든 순간들을 잊을 수 있던 사건은 꽤 많았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에 홀딱 취한 적도, 맛있는 음식에 오로지 혀의 즐거움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불행 투성이 하루에도 방심할 틈은 분명 존재했다. 그 균열에 내가 어떤 접착제를 발라 온전한 하루를 보낼 건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약속한다. 완벽하게 불행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말고 소확행을 꾸준히 누리며 불행을 엉성하게 만들 거라고.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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