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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y 16. 2021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을 때

밀가루는 못 먹지만, 빵집을 하고 있습니다-송성례

 요즘 매주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몇 가지 검사 결과, 선생님은 내게 현재 우울증과 번아웃이 온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직장 생활을 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다.


 업무에 조금 적응이 되어갈 때쯤, 다른 부서에서도 일할 상황이 생기면서 나는 다시 신입으로 돌아갔다. 힘들게 올려놓은 자존감은 메마른 모래처럼 약한 바람에도 힘없이 빠져나갔다. 10년 차 이상의 선임들 밑에서 배운 지 3개월의 시간 동안 빠릿빠릿하지 못한 나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속도와 정확성 모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나는 정확성을 높이려다 속도가 더뎌졌고, 속도를 높이려다 실수를 저질렀다. 그 부서의 업무 강도로 보아 그분들이 나에게 느끼는 답답함이 이해는 갔다. 하지만 이해한다 해서 내가 받은 상처가 줄어들진 않았다.


 "좀 빨리빨리 해! 왜 이렇게 느려."

 "실속 없게 일하지 마."

 "야, 그렇게 혼났는데 밥이 넘어가냐?"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가장 두려운 건 모르는 것이 생길 때였다. 나는 질문이 생길 때마다 질문에 급을 매겼다. 이 정도 질문은 해도 되는 건가?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라 혼나면 어떡하지? 하지만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했다간 더 혼날 수 있는데. 매일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일에 대한 책임감보다 혼나지 않기 위한 마음이 커가고 있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서 일에 대한 사유가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부터 내 성향과 직장에서 원하는 성향이 정반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 외향적이고 빠릿빠릿한 사람을 원하고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하 승진을 위해선 윗사람에게 허리를 굽혀야 하는 곳. 그래서 이런 이유들로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마다 퇴근 후의 여가 시간을 잘 보내려 애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정도 번아웃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해서 퇴근 후의 시간만으론 해결되지 않았다. 이전보다 내 성격과 훨씬 더 거리가 먼 부서에 일을 하게 되면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거의 매일을 울었다. 일을 하며 꾸중을 듣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눈물을 훔쳤고, 직원 식당에선 밥을 꾸역꾸역 먹다 울기도 했다. 퇴근 후엔 머리를 감다가 눈물을 물과 함께 배수구에 흘려보냈고 업무 공부를 하다 종이를 울게 만들었다. 자기 전엔 베개를 적시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고 자주 무언갈 깜빡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나름 장기간의 계획이 있었다. 입사를 하고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학생 때 시간이 생겨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못했던 자아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학생 때 인터넷 서핑으로 했던 진로 탐색은 내 인생을 책임지기엔 매우 부족한 정보량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에 가장 꾸준한 흥미를 보인다는 것을.


 2년 동안 거의 매일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그리고 책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지금처럼). 그러다 내 이야기를 글로 다채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책 쓰기 모임을 신청에 POD 출판으로 책을 출간했고 브런치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더 좋은 글이 나올까' 이외의 다른 생각 들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 생각이 많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이나 작사가님의 조언대로 도전은 하되, 무모해지지 않기 위해 꿈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요건이 충족이 되면 완전히 방향을 틀려고 했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런데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기면서 그 계획이 훨씬 앞당겨져야 한다고 느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단 결단을 내리기 전에 최소한의 노력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도전해 성공한 사례를 간접적으로라도 보고 싶었다. 서점에 들렀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표지를 가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밀가루는 못 먹지만, 빵집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지금 원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라 확신했고, 다행히 이는 틀리지 않았다.


 작가는 선천적으로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 글루텐 불내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빵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건 빵을 직접 만드는 과정과 그에 따른 예쁜 결과물이다. 결국 그녀는 또 다른 글루텐 불내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글루텐 프리 빵집, '써니 브레드'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문을 연 후 많은 손님들이 써니 브레드를 찾아와 주었다. 초반부터 승승장구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이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실패하고 고민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여러 산을 넘어야 했고 포기도 많이 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베이킹에 관심이 많았지만 외에도 다양한 것들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첫 시작은 베이비시터였다. 아이를 좋아하고 돌보기에도 자신이 있었다. 다행히 베이비 시팅이 잘 맞으면서 그녀는 조금 더 발전시켜 유아교육과로 진학을 하기 위해 학생 튜터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과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그만두게 된다. 이후 그녀는 온라인 쇼핑몰, 즉 작은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오해하실 분들이 계실  같아 말씀드린다. 작가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의 낡고 오래된 집에서 풍족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쇼핑몰 사업을 하고 약간의 소득이 생기기 시작할 때, 집안 사정이 더 안 좋아지면서 결국 사업도 그만두기로 한다.


 그녀는 꿈을 찾는 과정이 사치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직시했고 단순히 돈이 목적인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행복하지 않았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다. 결국 그녀는 부모님께 용기를 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흥미를 가졌던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비현실적일 때가 많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막막하고 주변에서 말려도 해내야 한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고충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임지지 못할 희망적인 말로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써니 브레드가 잘 되기까지, 그리고 이 상황을 유지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작가의 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 나의 상황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자신을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자책하며 여러 번 무너졌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내가 부러워했던 연예인, 사업가도 내 눈에 빛나 보이기만 했던 사람들도 즐거울 수만은 없겠구나. 저 위치에서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노력하는지 그들만의 고충이 얼마나 많은지, 한때는 전혀 몰랐구나. 그냥 부러워만 하고 시기만 했구나. 부자나 유명한 연예인들이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하면 코웃음을 쳤던 내가 생각이 났다.

 

 써니 브레드 사장님의 생각은 사장님의 글을 보는 내게도 똑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회적인 지위, 안정감, 경제적인 요소들을 모두 내려놓고도 그냥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묵묵히 갈 수 있는지. 조금은 정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즐거움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모든 분들께,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면 써니 브레드 사장님의 이야기를 경청해보시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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