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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y 23. 2021

삶의 축소판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편의점. 요즘은 발길이 드물지만, 대학 시절 편리하고 저렴한 맛에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학교 내에서 자주 가던 편의점 세 곳이 있었다.


 크기도 클뿐더러, 야외 테이블이 몇 개 있어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앉으면 술과 안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던 CU가 그중 하나였다. 소주, 맥주, 각종 과자, 그리고 안주와 해장을 겸하는 얼큰한 라면까지.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지면 학생들은 과제, 시험, 때론 교수님의 뒷담화를 주제로 수다를 떨었고, 대화가 무르익어가면 앞으로의 미래 같은 조금 더 묵직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실 나는 조용한 분위기를 더 선호해서 테이블에 여러 번 앉아보진 않았다. 그 편의점에 자주 갔던 이유는 유일하게 24시간 동안 운영했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에 학교에서 밤을 샐 때 출출함을 핑계로 친구들과 간식과 커피를 사러 가곤 했다.


 두 번째 편의점은 학교 구내식당 안에 있는 GS25다. 나는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종종 기숙사 밥이 질리거나 다음 수업 전까지 공강 시간이 애매할 때, 때론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을 때면 그곳에서 오모리 참치찌개에 삼각김밥을 곁들여 사 먹곤 했다. GS25는 점심시간 전용 핫플이었고 이름과 달리 가장 일찍 문을 닫았다.


 마지막은 기숙사 맞은편 타과 건물 1층에 있던 이마트24 편의점이다. 타과 건물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갈 때나 기숙사에 간식을 쟁여놓고 싶을 때, 볼펜과 수정 테이프를 사기 위해 자주 가던 곳이다. 이곳이 좋았던 이유는 근접성도 있지만 주변 전경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있었기에 물건을 사고 나와 그럴싸한 전경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대학생활이 너무 힘이 들 때면 야경을 바라보며 울기도 했다. 이곳도 이름과 달리 꽤 일찍 영업을 종료했다.


  편의점이란 공간은 누군가에겐 정말 편의만 제공받는 곳일 수도 있고 나처럼 하나의 추억이나 고생했던 시절을 반추해볼 수 있는 장소일 수 있다. 때론 현재 간단하게 맥주와 안주를 사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 아르바이트생, 손님,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둘러싼 일상을 담고 있으며 이를 주로 편의점이란 공간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때론 치열한 현실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제목이 불편한 편의점일까. 편리해서 편의점이 아닌가. 사실 이 편의점의 본래 이름은 always다. 이곳은 다른 편의점보다 물건의 종류가 많지 않고 이벤트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별칭이 붙은 이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골손님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한 사내가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말이다. 


 기차 안, 한 중년의 여성이 자신이 파우치를 잃어버렸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휴대폰 너머로 파우치를 주운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고 어눌한 그의 말투에 걱정이 앞섰지만, 그녀는 파우치를 받기 위해 곧장 약속 장소인 서울역의 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파우치를 주운 사내의 정체는 놀랍게도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었다. 여성은 겉모습과 달리 경우가 있는 그를 always 편의점으로 데려가 보답으로 도시락을 사주었다. 그런데 그 도시락을 이번 한 번이 아닌, 배고플 때 언제든지 먹으러 오라며 사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녀는 교직에서 정년퇴임 후 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편의점 사장인 염영숙 여사는 매일 도시락을 먹으러 오는 사내에게 점점 궁금증이 늘어났고 결국 독고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독고 씨는 남들과 달랐다. 양심적이고 꾀를 부리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똑똑하기까지 했다. 이를 지켜보던 염 여사는 마침 야간 근무 자리가 비었는데 편의점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고 독고 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고 씨가 들어온 이후 편의점엔 알 수 없는 생기가 돌았다.


 종류와 행사가 적은 편의점이지만 독고 씨가 손님들에게 행한 여러 선한 행동이 모이면서 편의점을 잘 이용하지 않는 어르신들이 손주들과 함께 간식들을 사 가기 시작했고 일상에 지쳐 손님들이 그에게 털어놓는 여러 고민들을 경청하며 그들이 다시 내일을 버틸 힘을 얻게 해 주었다. 이는 손님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함께 편의점 일을 하는 또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는 두둑한 도움을 준다.


 독고 씨의 이런 따뜻한 행동들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그의 비밀들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과거는 어땠을까. 왜 그는 편의점에서 일하기 전,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했던 걸까. 이야기는 점차 궁금증을 더해가고 후반부엔 이를 속시원히 풀어나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불편한 편의점>은 재밌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이야기는 독고 씨의 정체를 밝히는 내용을 위주로 흘러가지만, 작가는 절대 다른 인물들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편의점에 나타나는 모든 인물들은 겹치지 않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고 갈등과 해소가 있다. 악당에 치우쳐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면 마음껏 욕하기엔 고구마를 한 입에 다 먹은 기분이 드는 인물도 있고 지금의 기회가 무너지면 원하는 일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던 인물에게 그 기회를 잡음으로써 내려놓는 순간을 미루게 되는 인물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접하다 보니, 이 책은 불편한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의점이란 사회적인 틀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결국 삶의 축소판인 셈이다.


  나는 잘 영글어 속이 꽉 찬 달콤 씁쓸한 열매를 한 입 베어 먹는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p. 140


 상처를 돌아보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혹은 욕망이 그 사람의 원동력이 되고 캐릭터가 된다. 캐릭터를 보여주려면 캐릭터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로 가느냐를 보여주면 된다.

-p. 156


 가족들에게 무심코 던졌던 폭력적인 말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뒤통수에서 울릴 때마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었다.

-p. 215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죠.

-p. 247

 

 사실 올겨울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p.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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