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상)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지만, 그 사실들이 언제나 적절하게 기록되고 올바르게 해석돼 왔다고 볼 수는 없어. 간단히 말해서, 난 카인이 엄청난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그가 두려워서 그를 탓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생각해. 카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볍게 떠들어대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한 거지. 그런데 카인과 그 자손들이 표식을 지녔고 남들과 전혀 달랐다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해."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세 개의 십자가에서 간사한 도둑 이야기가 나오다니, 너무 윤리적이고 감상적이지 않아? 명백히 추악한 잘못을 저지른 자가 갑자기 회개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다니. 무덤 코앞에서 하는 그 따위 회개가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이건 선교 목적으로 감상적으로 떠들어대는 거짓 설교에 불과해. 만약 내가 두 도둑 가운데 한 명을 친구로 택한다면, 적어도 신뢰가 있는 상대를 뽑겠어. 눈물 짜며 징징거리는 개종자 말고. 다른 도둑이야말로 사나이답고 개성 있는 사람이야. (......) 아마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나는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해. 인위적으로 분리한 절반만 인정할 게 아니라. 우리는 신에게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해. 그래야 옳아. 그게 안 된다면 너 스스로 악마까지도 품어내는 그런 신을 만들어 내서,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지 않도록 해야 해."
"'금지된 것'은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어. 또 우리는 신부님 앞에서 누군가와 결혼하면 당장 동침할 수 있지만, 어떤 민족은 그렇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들은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해.(......)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버려. 그 편이 쉬우니까. 내면에서 자신만의 법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어려워. 다른 명예로운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 그들에게 금지된 것일 수 있고, 다들 금기시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도 하거든. 사람은 각자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해."
그 봄날의 공원에서 내 시선을 끄는 한 소녀를 만났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우아한 옷차림에, 영리한 소년 같은 얼굴이었다.
소녀라기보다는 차라리 소년의 얼굴이었고, 머리칼도 그녀의 옅은 금발이 아니라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었다. 턱은 단단하고 야무져 보였고 입술은 꽃잎처럼 붉었다. 전체적으로 약간 딱딱하고 가면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인상이 아주 강렬했고 신비로운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