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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Jun 06. 2021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데미안-헤르만 헤세(하)

 오늘의 서평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냈던 이 신비로운 문장들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걸까. 나는 이를 크게 표면적인 의미와 내면적인 의미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이렇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게 된다. 엄마의 안락한 뱃속에서 힘겹게 나와 세상 밖으로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세상의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간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절대 평탄하만은 않다. 싱클레어가 유년 시절에 겪었던 것과 같이, 우리는 언젠가 부모란 보호자의 품에서 벗어나 조금씩 독립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엔 여러 고난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친구와의 갈등, 취업 준비, 일만 하면 버티기 힘든 직장 생활을 이겨내며 우리는 조금씩 사회로 나아가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표면적인 투쟁이며 또 다른 세계다.


 하지만 데미안이 보낸 답장의 진정한 의미는 후자에 가깝다. 좀 더 내밀하게 들어가 보자. 새와 알은 나,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진 세계관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내면의 성숙을 위해 즉, 협소한 세상에서 폭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지니고 있던 여러 편견과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치관의 붕괴 또한 피할 수 없다. 또한 가장 본질적으로 봤을 때,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보편성이 뿜어내는 압박을 스스로 버텨내야만 한다. 나다운 삶을 향한 여정은 결코 녹록지 않은 것이다. 남들에겐 당연한 삶이 나에겐 아닐 수 있다. 그럴 때 나의 욕망을 무시한 채 꾸역꾸역 다수인 척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와 맞는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수가 '예'라고 할 때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세계를 깨뜨려야 내가 진정 원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나의 내면의 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만이 존재하는 예수가 될 수는 없지만 아브락사스 신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싱클레어는 제2의 데미안,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면서 이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자신에게로 나아가게 된다.


"자넨 번번이 자신이 별난 사람이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책하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고, 그러다가 내면의 소리가 들리거든 즉시 그것들에 자신을 내맡기게. 처음부터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신의 뜻과 일치하는지, 그들의 마음에 들지를 묻지는 말라구!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쳐. 그렇게 하면 안전하게 인도로만 걷는 화석이 되고 마는 거야. 이봐, 싱클레어. 우리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신이자 악마이고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네. 아브락사스는 어떤 생각도, 어떤 꿈도 제외하지 않아. 그 점을 결코 잊지 말게."


"싱클레어, 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지만 우리 길은 힘들다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세."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싱클레어는 여행 중 데미안을 재회하게 된다. 데미안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된다.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사랑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데미안처럼 시간과 나이를 초원한 모습이었고 세상을 이미 통달한 사람 같았다. 베아트리체와는 차원이 다른 사랑이었다. 아니, 이를 초월한 존경이었다. 싱클레어는 이후 데미안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불길한 예언을 한다.


"싱클레어,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여러 번 이야기했던 일을 경험하게 될 거야! 세계가 스스로 새로워지려 하고 있어. 죽음의 냄새가 맡아져. 죽음 없이는 어떠한 새로운 탄생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몸서리쳐지는 일이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그러다 싱클레어는 폭탄의 파편에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 장면은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된다.


 그 별들 가운에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곧장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굉음을 내며 수천 조각의 불꽃으로 쪼개져서, 나를 솟구쳐 올렸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계가 내 위에 무너져 내렸다.


 혼수상태였던 그가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 놀랍게도 옆자리엔 데미안이 누워 있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가며 속삭였다.


"꼬마 싱클레어, 들어봐! 나는 떠나야 해.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불러도 내가 말이든 기차든 되는대로 막 타고 올 수는 없어. 그때 너는 네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너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 그리고 또 하나!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처하면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너에게 전해주라고 말이야……. 눈을 감아, 싱클레어!"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입을 맞춘다. 눈을 감은 싱클레어는 곧장 잠에 빠져든다. 다시 깨어나 눈을 떠 보니 옆자리엔 데미안이 아닌 다른 사람이 누워 있었고 이 책은 다음의 문장으로 종결된다.


이제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어쩌면 데미안이 아브락사스 신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싱클레어도 이에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데미안'은 일회독만으론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책이다. 나는 두 번을 읽었고 이렇게 나의 견해를 풀어냈지만 아직도 풀어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잔존해 있다. 그럼에도 나의 불완전한 서평을 공개한 이유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의 인생 책 데미안에 가까이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 글로 조금이나마 어려운 고전이 쉽게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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