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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Jun 13. 2021

따뜻한 음식과 씁쓸한 사랑의 공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요리와 문학, 음식과 사랑이 잘 버무려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예쁜 접시에 담겨 있다. 난 그걸 맛보았고, 천천히 음미했으며, 흥분했고 맛있게 소화했다.

 

 차례부터 음식 냄새가 강렬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며 소제목은 6월의 ‘성냥 반죽’을 제외하고 모두 멕시코 음식의 이름이다.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로 시작하는 1월의 첫 문장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요리책을 연상시키지만 요리 설명 사이사이, 때론 섬세한 음식 표현들 안에 여성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주인공 티타는 페드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막내딸은 평생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라는 이 가문의 전통을 고집하는 티타의 어머니, 마마 엘레나 때문에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강제로 결혼시키려 한다. 이에 페드로는 결혼을 결국 승낙하고 티타에게 사탕발림식의 사랑고백을 한다.


“이 결혼이 당신의 곁에 남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당신을 향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였으면 언니와의 결혼을 승낙한 순간 마음을 접었겠지만, 순수한 티타는 그 비겁한 변명을 믿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에 쓰일 음식을 준비하면서 티타의 마음은 문드러진다. 문제의 결혼식을 치른 후 둘은 로베르토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티타는 자기 자식인 양 로베르토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하지만 이를 마뜩잖게 여긴 마마 엘레나는 티타와 페드로의 사이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부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이에 상심한 티타는 나중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다. 여기서 두 번째 썸남, 존 브라운 박사와 인연이 닿는다. 그녀는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되찾고 존을 통해 뜨거움과 열정보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주인 다른 종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배우며 성장하게 되고 결국 마마 엘레나가 죽고 난 뒤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하지만 티타는 결혼식 직전 갈등을 하게 되고 존의 배려있는 말과 행동을 통해 페드로를 택하게 된다. 결말은 비극과 희극 그 사이 어디쯤으로 막을 내린다.

 

 이렇듯 주요 내용은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 이야기지만, 나는 서브 캐릭터가 더 마음이 갔다. 먼저 티타의 또 다른 언니, 헤르트루디스다. 그녀는 티타가 만든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고 기괴한 사건을 통해 후안이라는 남자와 집을 나가게 된다. 그녀는 훗날 후안과 결혼을 하며 그와 같이 혁명군의 장군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보수적인 가문뿐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틀을 깨고 나와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다음의 문단을 필사하며 나는 큰 쾌감을 얻었다.

 

“그녀는 이제 혁명군의 여장군이 되었다. 이 직위는 전쟁터에서 미친 듯이 싸운 결과로 정말 어렵사리 얻은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지도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혁명군에 일단 가담한 후에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때까지 쉬지 않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두 번째 인물은 존 브라운 박사다. 그는 달콤한 말로 그녀를 유혹하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철학적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를 이끌어가며 티타의 마음을 끈다. 그의 대화를 보면 존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특히 티타가 페드로와 존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존과의 결혼을 거절하려 할 때 그가 그녀를 대하는 모습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하다.

 

 “티타, 당신이 뭘 했든 나는 상관없어요. 본질적인 게 바뀌지 않았다면 살면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내 생각은 당신이 한 말에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신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가 될 남자가 나인지 아닌지는 잘 생각해 봐요. 당신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며칠 내로 결혼식을 올립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제일 먼저 페드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당신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할 거요.”


 저 상황에서 티타가 결국 페드로를 선택하는 것에 답답함이 컸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봤기 때문에 존과의 결혼을 원했을 것이다. 사랑은 이성보단 감성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란 걸 알기에, 마냥 티타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쓰다 보니 음식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진 않았는데, 이 내용들 안에 다양한 음식 묘사가 알알이 들어차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음식의 맛과 사랑을 결부시키는 문장은 색다른 흥분과 짜릿함을 가져다준다. 고전답지 않게 가독성이 좋아 술술 잘 읽히고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다. 약간의 막장(?)과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당혹감에 오히려 호기심이 자극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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