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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Jun 20. 2021

현실과 이상이 충돌할 때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글배우

나는 당시에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번 읽었다. 그리고 네 번 모두 나의 마음에 다정한 물결을 일게 했고 인생에 나름 큰 시련이 올 때마다 조심스레 일으켜 주었다.


 SNS 프로필 하단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문장이 적혀 있다. '현실적이되, 낭만을 놓지 말기.' 나의 좌우명은 한동안 잘 지켜지는 듯하다 몇 달 전부터 낭만이란 이상향에 무게추가 급격하게 실리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계획은 이랬다. 첫 번째 꿈을 이루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두 번째 꿈이 나타났다. 향후 작가로서 제2의 삶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어렵게 취업한 곳을 뛰쳐나와 바로 전업작가로 일할 생각은 나의 플랜에 전혀 없었다. 나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한 방안을 택했다. 퇴근 후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조금씩 발판을 마련한 후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수익 창출이 가능해질 때에야 퇴사 후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최근 두 달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평일 아침엔 눈을 뜬 순간부터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고 일 하는 내내 자아가 소멸되는 기분이 들었다. 직장 내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이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끼니는 기름지고 맛만 있는 음식으로 때우며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이어갔다. 그럴수록 머리와 몸은 무거워졌고 마음은 황폐해져 갔다. 나는 결국 깊은 심연 속에서 허우적대다 온 몸에 힘이 빠져버려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


 상사분께 구두로 퇴사를 말씀드렸다. 그 단어를 토해낼 때까지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내 우려와는 달리 담담하고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높은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과 면담을 이어갔다. 병가를 내고 조금 쉬었다 복귀하란 제안도 주셨지만 그때까진 내 결정에 있어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근 후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세 분의 직장 선배님들께 전화가 왔다.


 "착하게 열심히 일만 하지 말고, 이제 이기적으로 살아."

 "힘들다고 밥 거르지 말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건강 잘 챙겨. 그리고 힘들게 얻은 자린데 아직 기회 있으니까 내려놓지는 말자."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꼭 계속 같이 일하기예요? 울지 말요."

 

 아무리 정규직이어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잡으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의 공백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속되는 설득에 바람 한 점 없는 강물이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꿈을 향한 결단을 내렸는데, 다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을 집어 들어야만 했다.




 글배우님이 쓰신 연분홍색 표지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에세이집은 제목 그대로의 목적으로 읽어도 좋지만 지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게 있어도 편안하게 읽기 좋은 책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큰 결단을 내려야만 할  애타게 찾게 되는 책이다.


 그는 원래 20대 초반 의류 사업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첫 사업에 실패하고 3000만 원의 빚이 생기자 빚을 갚고 두 번째 의류 사업을 시도하기 위해 무작정 돈을 벌고자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의 전재산은 34만 원. 겨우 고시원에서 창고로 쓰던 방을 구하고 얼마 후 그는 한 노인이 찹쌀떡 장사로 큰돈을 버는 것을 보자 찹쌀떡을 팔기 시작한다. 당연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데 팔릴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그만의 방식으로 대기업 건물 앞에서 직장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8개월 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큰절을 했다.

그러자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그 기업의 회장이 그의 노력에 감동하여 전 직원에게 8000만 원어치 찹쌀떡을 대량 구매한 것이다.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두 번째 의류 사업에도 실패했다. 글배우님의 꿈을 향한 도전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대학교를 자퇴하기 전, 그는 카피라이터를 꿈꾸었고 100여 개의 공모전 중 단 한 곳에 수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꾸준히 글을 올리자 독자들이 늘어나고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강연 제의가 들어오고 책을 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지금의 유명한 글배우 작가가 되었다.(현재 SNS 24만 팔로워 계정을 운영하고 계신 엄청난 분이다)


 어찌 보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기까지 너무 돌고 돌아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적으로 성장했고 그렇기에 성숙하고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는 햇살에 색이 바래 윗부분이 하얘져버린 책은 나에게 의외의 결론에 도달하게 해 주었다. 선택을 내리는 것에 있어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배우님은 당시에 좋아하는 분야에 올인을 하신 거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놓지만 않는다면, 지금 내 상황에서의 최선을 다한다면 조금 둘러서 가든 운 좋게 직진해서 가든 결국은 꿈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결정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저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매일 똑같은 곳에 가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장소에 있고 똑같은 걸 먹고
똑같은 사람들과 있으면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면
사람은 누구나 우울해진다. -p. 61


남들 기준에서 안 좋은 선택이라고 본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되었다. -p. 69


생각을 정리하려고 할 때
잘 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열심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충분히 쉬는 것입니다.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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