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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Jun 27. 2021

프리랜서의 낭만과 현실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도란

 "파트장님, 이러이러한 이유로 저 퇴사하겠습니다."

 두 손으로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내민 사직서에 파트장님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는 순도 100% 나의 상상이고, 실제론 구두로 먼저 퇴사를 알렸으며 정중하지만 상당히 쭈뼛거리며 면담을 나누었다.

 "파트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제가 퇴사를 하려고 합니다."

 "일단 앉아봐."

 퇴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는 순간 목이 메임과 동시에 발음이 뭉개졌다. 생각보다 담담히 들어주셨기 때문인지 훌쩍임을 쉽사리 멈추지 못했다. 몇 번의 면담과 설득이 더 이어졌고 나는 결국 일주일 정도 고민한 뒤 컴퓨터로 사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약 한 달 뒤, 나는 이곳을 떠난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더 좋은 글을 쓰려한다. 안정적인 소속감에서 벗어나 불안을 껴안은 자유를 가지려 한다. 나의 짧은 직장생활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프리랜서란 직업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속감이 없고, 승진을 위해 남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으며, 계약 기간 내에 제대로 업무만 완수하면 그에 맞는 급여를 받고 쿨하게 서로 헤어지는.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으니 프리랜서의 현실에 대해 알고자 실제 그곳에 몸담고 있는 실무자의 조언이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이 직업을 우러러보고 환상에만 빠져 있었다는 것을.




 도란 작가는 9년 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좀 더 자유로운 사회생활로 뛰어든 5년 차 프리랜서로, 현재 작가 겸 기자로 활동 중이다. 적지 않은 경력답게 프리랜서의 낭만과 현실이 이 책 속에 알차게 녹아 있다. 실제로 나는 프리랜서의 극히 일부만, 좋아 보이는 겉면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프리랜서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낭만과 편견을 조금씩 허물었고 그 사이에 안정을 포기하고 자유를 택한 이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그들만의 사정을 채워 넣었다.


 프리랜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자유'다.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고, 업무 공간 또한 굉장히 자유롭다. 주변에서 전화 벨소리가 수없이 울려대는 답답한 사무실에서 일할 필요 없이, 이나 카페, 혹은 따로 마련한 자신만의 작업실을 이용하면 된다. 또한 꼭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 오전엔 늦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밤이나 새벽에 집중해서 일을 해도 마감 기한만 지킨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선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때보다 훨씬 더 부지런해야 한다.


 보통 정규직 직장인의 경우엔 내가 일을 좀 못해도, 업무 중 실수가 생겨도 혼은 나더라도 이를 해결해 줄 상사들이 있고 통장에 찍히는 숫자에도 변화가 없다. 정말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잘리기도 힘들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하면 어리석다는 소릴 듣는 곳이 직장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그렇지 않다. 나의 능력이 곧 일감과 직결되고 그것이 곧 돈으로 돌아온다. 클라이언트는 오롯이 내 능력만 보고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화 시켜야 하는 직업이 바로 프리랜서다. 계속 일감을 얻기 위해선 계속해서 남들과 구별되는 나의 능력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또한 시간의 자유가 있다는 의미는, 계획적으로 나에게 맞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 느슨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자신이 짜 놓은 계획을 잘 지키는 성실함이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장점은 나를 잃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앞에선 서로 웃으며 대화하지만 뒤도는 순간 뒷담화가 끊이지 않는 직장생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에 동조한 적은 없지만, 나도 귀가 있으니 들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일상이 계속될수록 회의감이 들었고 직장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마음에 없는 사탕발림을 하며 나를 속이는 일은 더더욱 참기 힘들었다. 나는 프리랜서를 택하면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히 돈을 받고 일하는 사회인이기에 약간의 가면을 써야 함은 피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역할극은 그나마 정리되었지만 결국 프리랜서도 사회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 내에서 서열과 사내 분위기에 맞춰 성격을 관리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업무상 담당자와 교류할 때, 나처럼 인터뷰와 취재가 빈번한 직업인 경우 낯선 이와의 대면에서 적당한 페르소나를 갖춰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싸의 기질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면 클라이언트가 나를 다시 찾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p. 82, 83


 프리랜서라고 모든 일이 비대면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계약한 기업의 많은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며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일단 어떤 직업으로 프리랜서를 하고 싶은지 정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도란 작가는 책에서 프리랜서가 일감을 구하는 방법 4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와 재계약이다. 같은 기업에 프로젝트까지 이전에 진행했던 것과 유사하다면, 프리랜서와 클라이언트 모두 업무를 진행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프리랜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제한 시간 안에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고 고료 수준과 결재방식도 알고 있으니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클라이언트 또한 이전에 함께한 만큼 업무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서로 일면식이 있으니 굳이 시간을 들여 서로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없다. 일의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프리랜서에겐 이러한 재계약이 많아질수록, 비수기에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내향적이고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더라도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직장인일 때보다 그 가면의 두께가 얇을 뿐이다.

 

 적다 보니 희망이 가득 찼던 나의 마음에 찬바람이 인다. 그럼에도, 프리랜서란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을 알리고자 단점 위주로 적었지만 도란 작가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났고 이들과 함께 일하며 다양한 방식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 또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경험해보고 싶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꼭 수십 년간 한 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인식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내가 쓴 글로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창작물이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퇴사 후 바로 이곳에 뛰어들 수도 있고 경제적인 여건에 잠깐 꿈을 늦추어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내가 오랫동안 일할 직업은 나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프리랜서 작가다.


자음과 모음의 합을 이용해 쓴 무형의 것들이 실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땅 위의 나를 단단하게 버티게 해 준다.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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