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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un 17. 2022

노무사인데 노무사 아닌 것 같은 나

  나는 2019년 제28회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1차, 2차, 3차 최종 합격 후 집체교육과 수습기간을 모두 완수한 28기 노무사이다. 그렇게 공식적인 노무사가 된 지 이제 2년이 훌쩍 넘었고, 그 2년여 동안 한 번도 여기 브런치에 써 본 적 없는 내 커리어에 대한 적나라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혹시나 내가 전문직으로 멋진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신 구독자 분들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나는 현재 중소기업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노무법인은 아니지만 노무사로 채용되긴 한 거라 노무 관련 일은 한다. 주 업무는 노동법 관련 자문 일이라 거의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고용보험법 등 법 관련 자문 일만 진행한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이 보도되거나 새로운 대법원 판례 등이 나오면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쓰는 부수적인 업무도 있다. 일은 대체로 많이 한가하다.(즉, 업무능력을 키울 수가 없다.) 9 to 6가 정말 칼같이 잘 지켜지는 곳이다.(즉,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전문직 자격수당이 있어서 중소기업치고는 많은 연봉을 받는다.

  요샌 딱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긴 하지만, 있다 해도 나는 내 직업을 묻는 질문에 그냥 직장인이고 사무직이라고 한다. 노무사라고 거의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현재 직장에서 하고 있는 업무는 전체 노무사 업무 중 20~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것 외에 부수적인 업무는 잘 모른다. 여기 브런치에도 직업란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처음 1년여 정도 기간은 방황을  했다. 동기들이 다들 열심히 커리어 쌓고, 업무를 배우고, 경력을 쌓아가는 시간에 나는 중소기업에서 거의 월급 루팡처럼 지내고 있었으니. 이곳은 워라밸이 좋고 연봉도 나쁘지 않지만, 다양한 일을 하고 업무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이다. 우리 조 노무사 동기들을 보니 (1) 대기업 인사팀 근무하는 사람 (2) 노무법인 채용 노무사 또는 책임 노무사로 근무하는 사람 (3) 노무법인 개업해서 대표노무사가 된 사람,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나는 저 3가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주류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은 큰 불안감을 준다. 취준생 때 취업 성공한 지인들 틈에 껴 있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래서 한동안 대기업 인사팀 공고를 보다가 노무법인 채용공고도 보다가 다른 시험도 또 알아보다가 이것저것 고민하고 방황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만 보던 내 시선을 내 마음으로 돌리고 나니 답이 나왔다. 애초에 나는 노무사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무사란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노무사가 무슨 일 하는 줄도 모른 채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합격만 하면 바로 일자리를 얻고 월급 받을 수 있는 일이되었으니까. 공무원이랑 전문직이랑 둘 중에 무슨 시험 준비할까 하다가, '공무원은 하기 싫으니까 전문직 해야지'이런 식이었다. 내 목적은 그냥 따박따박나오는 월급을 받는 것뿐이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다수에 속해있지 않아 불안했던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노무사인데 노무사 같지 않은 현재 내 모습에 불안하지도 조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노무사로서 멋지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 이름 석자로서 멋지게 살아가면 되니까. 지금 상태 그대로 있을게 아니라, 나는 계속 성장해나갈 자신이 있으니까.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좋다.


  가끔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곤 하는데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2019년 시험 합격했을 때 썼던 글에 "나는 직업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쓰여있었다. 몇 년이 흘러보니, 나는 정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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