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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Aug 26. 2022

힘 빼고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니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는 그냥 박자 맞춰서 악보대로 치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막상 배우기 시작하고 보니 악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한 곡도 삑사리 거의 안 내고 치려면 그 한 곡을 수십 번에서 많으면 백번 넘게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레슨 때마다 선생님께 자주 지적받는 부분은 연습한 곡에서 삑사리가 났을 때가 아니었다. 바로 피아노 칠 때 '팔에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몸이 경직되어 손가락도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가로로 넓게 펼쳐진 건반 위에서 오른손, 왼손의 열 손가락 모두가 넓은 음역대를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곡이 잘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수십 번 반복해서 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힘을 빼고 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 곡을 악보대로 정확히 치는 것은 연습하면 할수록 조금씩 나아지지만, 힘을 빼는 것은 어떻게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아 더욱 답답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힘 빼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자주 들었다. 샌드백을 칠 때 관장님께서도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이 '어깨에 힘 빼라'라는 것이고, 예전에 수영 배울 때 수영 강사님도 늘 나한테 어깨에 힘 좀 빼라고 하셨었다. 운동 배울 때는 몸을 쓰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악기인 피아노 배울 때까지도 어깨에 힘 빼라는 말을 들을 줄이야... 뿐만 아니라 운전을 배울 때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운전하고 난 뒤 늘 어깨가 뻐근했다. 익숙해지면 저절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운전을 한지도 이제 몇 년 되었고, 복싱도 몇 년째 하는데도 어느 순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늘 힘을 주고 살았던 것 같다.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고, 건강을 잘 챙겨야 된다고, 이것도 잘해야 되고 저것도 잘해야 된다고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힘을 빼면 완전히 힘이 빠져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까 봐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잘 해내고 싶을 때, 열심히 하고 싶을 때 힘이 과하게 들어간다. 겉으로 보기엔 몸에 힘이 들어가 있지만, 결국은 마음의 문제였다. 압박감, 조급함, 불안함이 마음을 잔뜩 누르고 있으니 몸에도 힘이 들어갈 수밖에.

  피아노 칠 때 가볍게 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힘 있게 세게 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듯, 모든 일에는 강약 조절이 필요한 법이다. 힘을 빼는 게 중요한 이유는 힘을 주고 있을 때 보다 힘을 빼고 있을 때 이 강약 조절을 훨씬 더 잘 된다는 것이다. 샌드백을 칠 때도 피아노를 칠 때도 힘 빼고 가볍게 강약 조절하면서 쳐야 더 자연스러우면서 멋있게 칠 수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는 잘 안된다는 게 문제다.)


  차라리 "힘내!"라고 하면 내 온몸의 힘을 다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어째 힘내는 것보다 힘 빼는 게 더 어려운 것일까. "힘 빼!"라는 말은 "힘내!"라는 말과 반대말인데도 힘내라고 한다고 힘이 잘 안 나듯, 힘 빼라고 한다고 힘이 잘 빠지지도 않는다. 내 힘인데, 내 몸인데도, 내 맘처럼 안되니 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힘을 빼고 하다가도 또 힘이 들어간 걸 느끼면 다시 힘을 빼고 또다시 힘이 들어가고의 반복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힘이 들어갔다고 느껴질 때마다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뿐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벌써 가을이다. 가을에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회사 건물 옥상에서, 체육관 창밖으로, 길을 가다가 문득 가만히 서서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본다. 어떨 때는 잔잔한 바다 같고, 어떨 때는 하늘색 도화지에 하얀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도 같은 가을 하늘은 멍 때리기 참 좋다.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힘이 빠져나가도록 크게 후~ 하고 내뱉어본다. 힘 빼고 사는 연습, 어렵지만 계속 노력해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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