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지난 일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보단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고민하고 상상한다. 먼 과거이든 가까운 과거이든 좋았던 일도 안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회상을 하지 않다 보니 그 어떤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친구들은 나에게 "너 그때 그랬었잖아." 하는데, 나는 "내가 그랬었어???"라고 할 때가 많다.
나는 참 하고 싶은 게 많고 욕심도 많아서 늘 바쁘다. 내 일상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은 늘 규칙적으로 일정하고, 그 사이사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끼워 넣는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는 일,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일, (언젠가는 실수 없이 멋지게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피아노 연습을 하는 일, 자전거를 타는 일, 복싱과 달리기를 하는 일, 또 다른 새롭게 해 볼거리를 찾는 일 등. 그렇게 나름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가고 있던 중, 문득 내 초등학생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2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딩 히야는 그 당시 여느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원을 많이 다녔었다. 서예학원, 태권도, 피아노, 보습학원, 미술학원 등. 보통은 미술학원 다니는 건 좋은데 태권도 다니는 건 싫다거나, 수학학원 다니는 건 좋은데 피아노 학원 다니는 건 싫었다거나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 모든 학원을 다니는 게 다 좋았다. 무엇이든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나에게 다 신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집 대문 밖에서 동네 친구들이 "히야야 놀자~"하고 부르면 나는 "안돼. 나 이따 학원 가야 돼."하고 돌려보내곤 했다. 그리고 미술학원에 갔다가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설거지하고 방 치우고 동생들에게 볶음밥이나 토스트 같은 걸 만들어주곤 했다. 초딩때는 상장을 받으면 부모님께 자랑하고 칭찬을 듣기를 좋아한다. 나도 물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칭찬받고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 대해 더 마음속에 되살아나는 느낌이 있다.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더 열심히, 더 잘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장을 받았다는 것,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 내가 여러 학원을 다니면서 집안일도 도우면서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해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본인이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에 "뿌듯해했다"라고 한다. 그런데 초딩 때뿐만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내가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것에 그냥 뿌듯해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주면 되니까.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내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때가 가장 좋다. 타인의 인정은 그다음 문제다. 지금도 이것저것 도전하고 바쁘게 사는 건 단순히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스스로 뿌듯해하고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에 과도하게 기대지 않게 된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학벌, 직업, 재산, 외모 같은 겉모습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초딩 히야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또다시 30년, 40년 후의 모습에서도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인정에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해주고, 뭐든 배우기를 좋아하고 즐기면서 사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할머니 히야의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