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자 주부이고, 주부이자 가장이다. 1인 가구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분업화되어 있는 역할을 혼자서 모두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모든 역할을 혼자 소화해 내야 하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 혼자만 잘하면 되니까 오히려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먼저 가장으로서의 역할인 돈을 벌어온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식주에는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고, 그다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교육비, 문화활동비 등에도 돈이 들어간다. 또 돈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아플 때이다. 갑자기 큰돈이 들어가지만 돈을 아낄 수도 없는 병원비에도 돈은 매우 요긴하다. 가장이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이 안 되니 가정경제가 아예 굴러가지 않는다. 결국 가정을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니 가정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가정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일종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
1인 가구라고 해서 1인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만 벌면 되는 줄 아는 것은 큰 착각이다. 1인 가구에도 2인 가구를 운영할 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특히 주거 때문에 그렇다. 혼자 산다고 해서 코딱지만 한 원룸에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살아도 최소 거실과 침실은 분리되어 있어야 하고, 집에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널찍한 주방도 필요하다. 좀 더 잘 살고 싶다면 서재 or 취미 방도 따로 있으면 좋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옷방도 따로 있는 게 좋다. 1인 가구도 2인 가구만큼의 큰 냉장고와 세탁기도 필요하다. 주거비 측면에서는 1인 가구나 2인 가구나 별 차이가 없다.
식비 측면에서도 먹는 입은 하난데 그 이상의 식비가 들어간다. 1인 가구에 맞는 소포장된 식료품들을 살 수 있지만, 대량으로 사는 것보다 소량으로 사는 것이 당연히 더 비싸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들은 혼자 매일 먹어도 금방 상해서 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루 2끼 점심, 저녁을 집에서 야무지게 먹고 있음에도 음식물을 버려야 할 경우가 꽤 많다.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한 안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열어보고 가장 빨리 상할 것부터 먹는 순서를 정해서 먹는데도 그렇다. 지금 먹지 않으면 나중에 상해서 버려야 하는 음식들... 음식물 쓰레기봉투값도 아깝고, 한두 끼 식사값이 버려지는 것도 아깝고, 냄새나고, 벌레 꼬이고, 버리러 나가기도 귀찮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 안 만들려고 배부른데도 남은 음식들을 다 내 뱃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한다. 왜 우리 엄마가 그렇게 배만 나오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늘 엄마가 식구들이 다 먹고 마지막에 남은 음식들을 본인의 입으로 해치우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돈을 못 벌어오면 나를 대신해 돈 벌어다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가끔 두려움이 엄습한다. 두려움을 조금 잠재워줄 묘약은 머니머니 해도 머니다. 그래서 늘 여윳돈, 비상금은 건드리지 않는다. 수입이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 하나밖에 없는 수입이 끊기는 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원룸 사는 1인 가구라 집안일이 많진 않다. 다만 낡은 집이라 조금만 안 치워도 지저분해 보인다. 터득한 노하우는 청소는 자주 못해도 물건 정리만 잘해도 깔끔해 보인다는 것이다. 잘 안 쓰는 물건들은 모두 서랍장, 붙박이장에 넣어 놓는다. 밖에 꺼내 놓는 물건들은 거의 없다. 요리하고 나서 가스레인지에 튄 것은 바로 닦는다. 설거지는 무조건 먹고 나서 바로 한다. 원룸에 벌레 생기고 냄새나는 건 치명타다. 환기도 잘 안되니까. 그나마 혼자 먹으니 설거짓거리가 많지 않아서 바로바로 설거지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화장실은 샤워하고 나서 바로 스퀴즈로 벽의 물을 다 쓸고 화장실 문을 열어둔다. 바닥은 워낙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지는지라 청소기를 자주 돌린다. 밥은 해서 얼려놓고 그때그때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다. 빨래는 흰옷, 어두운 옷 나눠서 주 2회 정도 모아서 돌린다. 집안일은 루틴이 잡혀서 크게 어려운 건 없다.
반려 식물들을 돌보는 것도 우리 집 주부인 나의 중요한 일이다. 아침, 저녁으로 상태들을 확인하고, 물을 주고, 통풍과 빛이 잘 받는지 확인한다. 나의 손길이 며칠만 없어도 금방 시들시들해질 아이들이라 책임감이 막중하다. 평소에는 청소기 자주 돌리고 물건 제자리에 두기만 하면 집안일에 큰 문제는 없다. 은근히 가장 짜증 나는 건 먼지가 많이 쌓인다는 점이다. 책상 위, 서랍장 위 등 며칠만 안 닦아도 먼지가 쌓여있다. 최대한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닦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와 싱크대 청소는 정말 귀찮다. 제일 하기 싫지만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하는 청소다. 아무리 깨끗이 사용해도, 화장실 물때와 싱크대 물때는 어쩔 수가 없다. 못해도 2주에 한 번씩은 락스 청소를 해줘야 한다.
누군가는 혼자 사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치우냐고 한다. 혼자 사니까 더 열심히 치우고 깔끔하게 해야 한다. 주부들이 가족들을 깨끗한 집에서 쉴 수 있도록 열심히 치우고 있는 것처럼, 1인 가구의 주부인 나는 '나를 위해서' 깨끗한 집안 살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속 가장과 주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실 이 단어들이 더이상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은 효율적인 조직의 운영을 위해 '장(長)'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옛날에야 대가족이었으니 '장(長)'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많아봤자 4인 가구 정도인데 왜 장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 또 '주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인정하다시피 요즘 외벌이로 가정을 꾸리기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옛날처럼 말 그대로 굶고 사는 세대도 아닌데 왜 가정주부처럼 살림만 따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낀다는 것, 사회에서 지위를 인정받는 것 등등 여러 의미가 있다. 밖에서 돈 벌면서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 보람, 사회적 지위, 안정감, 성취감 등은 주부에게도 필요한 것들이다.
분업체계보다 '밖에서 돈 버는 일'도 '안에서 살림하는 일'도 가구 구성원이 다 함께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2인 가구라면 한 명이 돈을 못 벌게 됐을 때 다른 한 명이 커버할 수 있고, 한 명이 살림을 못하게 됐을 때도 다른 한 명이 커버할 수 있게 된다. 또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도 있게 된다. 미성년자가 아닌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올 줄도 알아야 하고, 집안일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돈 버는 것도, 돈 관리하는 것도 집안일도 혼자서 다 할 줄 아는 두 사람이 함께해야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시너지효과가 난다. 만약 나중에 나와 함께 사는 동반자가 생기거든 가장의 역할도 함께 나눠서, 주부의 역할도 함께 나눠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장의 역할은 한 사람만 전부 다 하고, 주부의 역할을 한 사람만 전부 다 하는 경우, 서로 "누가 더 힘들게~' 하는 '힘듦 배틀'만 도돌이표처럼 계속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반자가 생긴다면 그땐 <둘이서 2인 가구 운영하기>를 써봐야지.
계속 혼자 살든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든 나는 계속 돈을 벌거고 계속 집안일을 할 거다. 1인 가구라고 자유롭고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몇 인 가구든 의식주가 필수로 갖추어진 하나의 가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인 가구는 모두 혼자 해야 하니 더욱 부지런해야 하고 더 여윳돈이 있어야 하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내 몸 건강 마음건강도 스스로 더 잘 돌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