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일상도 다 소중해

by 놀쓴

올해 늦은 여름휴가는 베트남 하노이에 다녀왔었다. 하노이로 간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항공권이 싸서. 그리고 베트남은 물가도 싸니까. 그냥 여행이 가고 싶었을 뿐이지 꼭 어디로 가고 싶다는 데는 없었다. 그저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여행의 첫 관문인 인천공항에서의 설렘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 없이 싼 항공권을 덜컥 예매했던 게 화근이었나.. 이번 여행은 너무 힘들었다. 그저 맛있는 거 먹고 예쁜 풍경 보면서 쉬고 싶었던 나에게 하노이 도심은 너무 습하고 덥고, 정신없었다. 호텔에서 나온 지 5분도 안 돼서 땀이 줄줄 흘렀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사진도 거의 못 찍었다. 몇 년 전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유럽에서도 혼자 하루 종일 잘만 걸어 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었던 나였는데.. 이번 여행은 이상했다. 그동안 나는 여행 가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걷는 게 힘들고 귀찮았다. 나는 길거리 음식 아무거나 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길거리 음식들이 하나같이 다 비슷하고 맛이 없다고 느껴졌다.


럼에도 소중한 시간과 돈을 써서 여행을 왔으니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늦게 자고 했더니 체력이 거의 바닥을 찍었다. 여행 시기를 잘못 맞춰 온 건가... 아니면 이제 20대 때 같은 체력이 안 돼서 그런 건가... 난생처음으로 여행 중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에 이리저리 치일 때마다 나는 항상 여행을 꿈꿨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을까. 몇 번의 여행 경험이 쌓여갈수록 여행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그저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떠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나는 늘 또 그다음 여행을 꿈꿨다. 여행에 가서 무얼 하겠다는 것보다 나는 그저 잠시라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 세계여행을 꿈꿨고, 이민을 꿈꿨다. 말 그대로 '한때'였다. 단순히 장소만 바뀐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예전처럼 멋진 면만 보면서 동경하듯 세계여행이나 이민을 꿈꾸지 않는다.



하노이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서 잠을 푹 자고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서 혼자 식탁에 앉아 고요함을 느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그제야 뭔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 내 일상이 참 소중했구나.' 나도 모르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속마음이었다. 일상이 지겨워서 여행을 떠나놓고 여행을 다녀와서 일상이 좋아졌다니.


동안 다녔던 해외여행 사진들을 오랜만에 들춰봤다. 혼자 갔던 유럽, 인도, 남미 여행 그리고 그때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들과 찍었던 사진들까지 모두 앨범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고, 평생 동안 다시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그들과 추억 한 조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뭔가 오묘했다. 요즘처럼 일상이 지겨울 때마다 그냥 가끔 예전 여행 사진들을 들춰보면서 혼자 회상에 젖고 미소 짓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된다.


여행 때마다 좋았던 점들도 있었지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적도 거의 매번 있었다. 그런데 여행 사진을 들춰보면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 어렴풋이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보면 분명히 안 좋은 일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사진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는 것이 막상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일 때보다 훨씬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힘들었던 하노이 여행도 나중에 돌아보면 또 좋은 추억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다음 여행을 꿈꾼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도 안 돼서 또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웃겼다. 여행은 현실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쉬러 간 여행에서 고생만 하고 올 수도 있다. 계획대로 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여행은 또 가야겠다. 편안하지만 때론 지루해지는 일상을 또 그럭저럭 버텨갈 힘이 되니까. 익숙함도 필요하지만, 낯섦과 새로움도 필요하다. 익숙함도 새로움도 모두 삶의 한 부분이다. 여행이 있기에 일상이 소중하고, 일상이 있기에 여행이 소중하다.

이전 15화물건을 비우며 마음도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