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쓴 Oct 13. 2023

물건을 비우며 마음도 비운다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집은 올해 3월에 2년 계약한 원룸 월셋집이다. 회사와 매우 가깝고, 원룸치고 넓고, 이 동네 평균적인 월세보다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지금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계속 여기 살면 좋을 것 같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은 여기는 매우 낡았다는 점이다.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고 살고 있지만 도배, 장판도 오래되었고 화장실도 한 번도 리모델링을 안 한 것 같다. 더 연장해서 살기에는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아직 계약기간이 1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비슷한 일상이라면 시간은 금방 지나갈 테니까.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처음 독립하면 이것저것 취향에 맞는 가전가구들을 사고 싶다고 하던데,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놓지 않기로 했다. 원룸 월세라 하더라도 예쁜 물건들을 집에 두고 예쁘게 꾸미면 기분이 좋아지니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자꾸 그다음을 미리 생각하는 나에게는 많은 물건들이 오히려 짐처럼 느껴졌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티브이도 소파도 스탠드 조명도 없다. 가구나 가전도 최소한으로 샀다. 살까 말까 했던 것 중에 가습기, 서큘레이터, 에어프라이기, 핸디청소기, 스팀다리미, 스마트쓰레기통 등이 있었는데 몇 개월 동안 고민만 하고 어느 것도 사지 않았다. 반년 동안 없어도 불편함이 없었던 거 보니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


  기분전환을 위한 인테리어용으로 산 것은 가림막 커튼, 벽을 꾸며줄 엽서, 향초, 조화 화병 1개, 그림 액자 1개 정도다. 몇천 원에서 몇만 원 정도로 방을 꽤 화사하게 만들어주니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인테리어 소품들을 산 것도 독립 후 한 3개월 정도까지만 이었고 이제는 인테리어를 위해 쇼핑하는 건 아예 없다. 요즘은 거의 식료품과 생필품만 사고 있다.



  현재 베란다에서 화분 3개를 키우고 있는데 예쁜 식물들을 볼 때마다 몇 개 더 데려오고 싶은 욕심이 자주 든다. 옷이나 화장품엔 전혀 관심이 안 가는데 시장에서 식물들 볼 때마다 자꾸 눈이 확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있는 얘들이나 잘 키우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겨우 화분 3개밖에 없는데도 식물영양제, 식물등, 화분 선반, 분갈이할 화분과 흙 등 필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키우는 데만 돈 많이 드는 줄 알았더니, 반려식물 키우는데도 은근히 돈이 든다. 혹시나 지금 반려식물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면 새로 데려올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더 데려오지 않으려 한다.


  미니멀리스트인지는 모르겠는데 물건 욕심이 별로 없다. 친구들이 집들이 선물 사준다 할 때도 최대한 휴지나 세제 등 생필품 위주로 받았다. 본가에서 나올 때 있던 옷의 대략 30% 정도를 버리고 왔는데 여전히 버려야 할 옷들이 많이 보인다. 요샌 늘 입는 옷만 입어서 그런 것 같다. 입었을 때 편하지 않은 옷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옷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최소 3년 이상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꽤 많다. 다행히 집 근처에 헌 옷수거함이 있어서 생각날 때마다 1~2개씩 갖다 넣고 있다. 화장품도 거의 다 버렸다. 로션, 선크림, 비비크림이면 화장 끝이라 각종 색조화장품들은 다 버렸다. 화장품 버리는 김에 먼지만 쌓인 향수들도 다 버렸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는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최소 일주일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렇게 했음에도 꼭 필요한 물건인 경우에만 산다. 이렇게 하면 장바구니에서 삭제하는 물건이 꽤 된다. 자주 쓰는 물건도 결국엔 낡아서 버려야 하고, 안 쓰는 물건도 쓰지는 않고 자리만 차지해서 결국 버려야 한다. 물론 가지고 있는 동안에 잘 쓰이기만 하면 그 물건의 역할을 다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새 물건을 들여오면 이게 결국에는 '어떻게 버려야하지?'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쓰레기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니 새로운 물건을 들이고 싶지 않고, 있는 물건은 버리고 싶어 진다.



 

  심심할 땐 서랍을 뒤져서 안 쓰는 필기구나 문구류라도 버린다. 여기를 떠날 때가 금방 올 테니 이사할 때 모두 불필요한 짐이 될 것 같은 것들을 미리미리 비워두는 중이다. 물건을 버리면서 다짐하고 있다. 무엇에든 집착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된다고. 그러니 버릴 때마다 뭔가 속이 후련하다. 물건을 하나씩 비우며 무거운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나의 첫 독립생활을 한 이곳을 떠날 때가 오면 비슷한 다른 곳에 임차하게 될지, 완전히 먼 곳으로 떠나게 될지, 운 좋게 집을 매매하게 될지, 최악은(?) 본가로 다시 돌아가게 될지(이것만은 제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때론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든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게 짐도 가볍게 해야지.

이전 14화 독립뽕이 사라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