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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Nov 29. 2023

곧 17살이 되는 나의 첫 차

  2012년에 면허를 땄다. 아직 학생이었고 운전할 일도 없었지만, 면허시험이 어렵게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미리 따놓자는 생각에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면허를 땄다. 그다음은 당연하게도 쭉~ 장롱면허였다. 대략 8년 정도 장롱면허였다. 그러다가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을 계기로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면허 딴 이후로 한 번도 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회사 근처에 있는 운전학원에 하루 3시간씩 3일 운전 연수를 등록했다. 3일 내내 선생님께 혼나기만 했던 것 같다. 어찌어찌 제주도 여행에 가서 친구도 나도 초긴장 상태로 렌터카를 탔다.


  그때 제주도에서 처음 운전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살아 돌아온 게 신기할 정도다. K5를 렌트했는데 운전 연수 때 소나타만 운전했던지라 어떻게 시동 켜는 줄도 몰랐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서 시동을 켰다. 겨우 출발은 했는데 차선에 대한 감각이 없다 보니 차가 자꾸 한쪽으로 쏠려서 차선을 넘어가곤 했다. 우측 차선 변경을 해야 할 때는 우측 사이드미러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지를 못해 (앞만 보기 바쁨) 보조석에 앉은 친구가 대신 사이드미러를 보고 뒤에 차가 한 대도 없다고 말해주면 그때 그냥 깜빡이 키고 바로 차선 변경을 했다. 숙소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주차를 하지 못해 거의 10분 정도를 계속 앞뒤로 왔다 갔다만 하고 있었다. 숙소 카운터에 있으신 분이 나와서 대신 주차를 해주셨다.


  제주도에 다녀온 뒤, 이왕 운전을 시작한 김에 제대로 운전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차를 살 생각은 없었고, 집 근처에 있는 쏘카를 빌려서 운전연습을 하기로 했다. 여전히 혼자 운전은 못하는지라, 운전 선생님으로 운전을 잘하는 친구 한 분을 모셨다. 친구한테 밥과 커피를 사주면서 주 1~2회씩 한 6번 정도 운전을 해보았다. 계속 친구를 불러내기 미안해서 혼자 연습해 보기로 했다.


  처음 혼자 운전하던 날도 떠올려보면 살아 돌아온 게 신기하다. 경기도 외곽에 카페나 한번 갔다 오겠단 생각으로 고속도로를 탔다. 차선 변경을 하려는데 내가 제대로 못 봤는지 뒤에 차가 빠앙-!! 하고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잽싸게 다시 핸들을 돌리고 차 안에서 혼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운전할 때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혼자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운전연습을 했다. 그런데 당최 운전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내 생애 첫 차를 사게 되었다. 계속 쏘카로 운전 연습하는 나를 보던 엄마가 중고차를 사라고 했다. 엄마의 지인이 새 차를 사게 되어 기존에 타던 차를 팔려고 한다며. 좀 고민이 되었지만 내 차가 있어야 더 운전연습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게 된 나의 첫 (중고)차는 200만 원 주고 산 2007년생 투싼이었다.


  오래된 차지만 관리를 잘하셨었는지 외관은 꽤 깨끗했다. 그리고 2년 더 탈 생각으로 타이어를 간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셨다. 딱 2년만 운전연습용으로 타고 폐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주 주말마다 자주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매일 운전하는 게 아니라서 운전 실력이 더디게 늘긴 했지만 그래도 초보 탈출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문제는 많았다. 200만 원 주고 샀는데 지금까지 유지비 제외하고도 수리비로만 대략 300만 원 넘게 쓴 것 같다.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겉만 멀쩡했지 속은 낡을 대로 낡아버린 차였다. 엔진경고등이 켜지기도 하고, 차가 잘 나가다가 갑자기 덜컹거리기도 하고, 한 번은 주행 중에 시동이 갑자기 꺼지기도 했다. 또 내부 부품들이 오래되어 부식된 터라 그런 것들을 교체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나의 붕붕이 병원비(수리비)로 수십만 원씩 깨질 때마다 매번 고민을 했다. '이제 그만 너를 보내줘야 하는 걸까..'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널 보낼 수 없어!!!ㅠㅠ' 하면서 또 병원비를 결제하고 치료받고 다시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조금만 더 타다 보내줘야지.. 조금만 더 타다 보내 줘야지.. 2년만 타고 폐차시키려던 나의 첫 붕붕이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타고 다니고 있다.



  나는 차에 대한 욕심도 없고, 차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차라리 없었으면 없는 것에 익숙해서 괜찮았을 텐데, 있을 때 가끔씩 잘 쓰다가 갑자기 없어지면 그게 또 불편할 것 같았다. 본가에 갔다가 짐을 가지고 올 때도 차가 있으면 편하고, 이번에 독립할 때도 짐을 옮길 때 차가 있어서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가끔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드라이브도 시켜줄 수 있었다. 차가 있다가 갑자기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불편할게 좀 많았다.


  그렇다고 새 차를 사거나, 다른 중고차를 사기에는 돈이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차는 '그냥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라는 주의다. 좋은 차, 비싼 차는 필요 없다. 안 그래도 독립하면서 고정비로 월세가 나가는데 새 차를 사면 차의 할부금까지 감당할 수 없다. 중고차를 사기에는 또 걱정이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운전을 자주 하지 않는다. 주말에만 가끔 한두 번 할 뿐이다. 차를 가만히 주차장에 세워놓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러니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지금 차를 폐차시키고 다른 차를 산다는 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내 붕붕이는 시동을 켜면 엔진 소리가 무슨 큰 탱크처럼 아주 우렁차다. 마치 '나 아직 살아있어!!' 하는 것 같다. 2007년생이라 블루투스 연결 대신에 카세트테이프 들어가는 곳이 있다. (요즘 시대에 카세트테이프 라니..) 운전 중 노래를 들을 때는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차 뒷좌석에 두고 노래를 튼다. 내 차를 타고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가끔 내 차보다 더 오래돼 보이는 차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와, 저 차 내 차보다 더 오래된 것 같아!' 하면서. 뭐 가끔 내 앞에 끼어들기하는 차들 보면 '내 붕붕이가 만만해??!'하기도 하고. (운전할 때 혼잣말하면서 잘 논다.)


  수리점에 가면 다들 '그냥 폐차시키시라'한다. 또 어디 주차를 해놓으면 다른 차들 말고 내 차 창문에만 '폐차 전문' 명함이 꽂혀있다. (왜 내 차 무시해!)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붕붕이를 보내주지 못하겠다. 차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잘 굴러간다'라는 걸 잘하니(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걸 힘들어하긴 하지만) 겉모습은 중요치 않다. 이게 내꺼여서 그런 건지 그동안 정말 요긴하게 잘 타고 다녀서인지 나는 진짜 내 차가 제일 예뻐 보인다. 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의 붕붕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고물차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내 첫 차다.


  내가 운전을 시작한 이유는 차를 갖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꼭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운전하는 게 더 편리한 일이 있을 때 운전을 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단지 내가 할 줄 아는 것 목록에 '운전'을 추가해놓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소중한 붕붕이 덕분에 이제 나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진짜 붕붕이를 보내줘야 할 때가 오면 그때는 다시 공유 차를 빌려 타는 형태로 운전을 해야 할 것 같다. 붕붕아 내가 널 어떻게 보내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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