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쓴 Dec 26. 2023

나는 딸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거라고 하면 다들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사실 안 하고 싶은 이유는 정말 많지만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린다. 어차피 귀 기울여 들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속 시원하게 제가 안 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것'때문입니다! 하고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카페에 어떤 30대 미혼 남자분의 고민 글이 올라왔다. 창업과 투자 관련해서 지금 이런 걸 도전해 봐도 될지 고민하는 그런 글이었다. 그 밑에 댓글들을 읽어보다가 어떤 댓글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딸린 처자식 있으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딸린 처자식 있으면 못하니까 지금 도전해 보라는 말이었다. 창업할까요, 투자할까요, 퇴사할까요 이런 건 많이들 하는 고민이고, 저 댓글도 그런 말에 누구나 자주 하는 그런 평범한 조언 같은 것이었다. 얼핏 보면 그냥 당연해 보이는 말, 여기에 공감하는 댓글도 엄청 많았다. 나는 이 댓글에 눈길이 한동안 머물렀다.


  저 '딸린'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자식이야 미성년자라면 보살펴야 하는 존재이니 딸려있다고 표현하는 게 얼추 이해가 되지만, 다 큰 성인인 아내도 딸려있다고 표현한다. 무슨 짐짝도 아니고. 게다가 저분의 와이프 분은 대기업 직장인이다. 본인이 소득이 더 높다 하더라도 대기업 직장인을 본인이 먹여 살린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저 댓글을 쓰신 분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쓰신 말일 것이다. '딸린 처자식'이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니까. 예전에는 처도 자식도 당연히 가장에게 딸려있는 사람들이 맞았으니까. 처자식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가장이 돈을 벌어서 먹여 살려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딸린 처자식'이라는 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는 경제활동을 거의 할 수 없고, 경력단절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고 돈을 벌어도 옛날과 똑같이 사회적으로 아내는 그냥 딸려있는 사람이 된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자립한 한 성인으로써 살고자 노력해도 그렇게 살기 힘든 사회구조다. 아무리 사회가 변했어도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가 크고,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형태가 아니면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여전히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또 어떻게 보면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남성들이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지고, 여성들이 집안 일과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질 때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생각해 볼 것 같다. 고로 이번 생애 결혼과 아이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를 먹여 살려야 할 '딸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게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나는 나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온전히 자립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나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면서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온전히 자립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삶의 형태는 혼삶이든 결혼이든 동거든 출산이든 입양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곧 17살이 되는 나의 첫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