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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29. 2024

결혼 안하기도 어렵다.

  나이 들어서 결혼 생각이 없어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 생각했던 게 무려 중학생 때였다. 그 당시 친구들은 모두 어른이 되면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나는 결혼 안 하고 싶은데'라고 했다가 친구들의 '쟨 뭐야?' 하는 것 같은 눈초리를 한 몸에 받았다. 나처럼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이상한 얘'가 되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보니까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아,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하면 안 되겠구나.' 그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결혼 얘기가 나오면 겉으로는 웃으며 맞장구치곤 했다.


  그러다 20대가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 결혼 생각 없다는 말을 얼핏 했었는데, 그때도 10대 때와 반응은 똑같았다. 이상한 얘를 보는 듯한 시선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토씨 하나 안 틀리는 단골 멘트까지.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이 들면 생각이 바뀔 거야'라는 말을 진짜 수백 번은 들었었는데,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증명이 되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중학생 때의 생각이 변함없고,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아무리 결혼이 선택인 시대가 왔다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고정관념은 잘 안 바뀐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흔해졌는데도, 정작 주변에 비혼인 사람은 찾기 힘들다.




  '결혼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는 많이들 얘기한다. 그런데 반대로 '결혼하지 않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쉽기만 한 일은 없다. 결혼하기 어려운 것처럼, 결혼하지 않기도 어렵다. 단지 어려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결혼하기 어려운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먼저 본인들이 원하는 결혼 상대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가 가장 어렵다. 만난다 한들 결혼하기까지 과정도 어렵다. 신혼집 마련과 결혼식 준비에 드는 돈도 어마어마하고, 당사자들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의 요구사항들까지 서로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도 많고, 결혼식 준비과정에 시간과 돈도 많이 들어가고, 흔히 결혼식 전후로 정리된다는 인간관계와 그 후 주거 문제, 출산 육아 등 끝도 없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결혼 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아서 결혼은 좋은 점도, 어려운 점도 눈에 잘 보인다. 결혼한 사람들은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면 다각도로 결혼생활에 대해 간접경험도 된다. 반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보니 결혼하지 않을 때의 좋은 점, 어려운 점은 잘 안 보인다. 막연히 '결혼 안 하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추측성 얘기들 또는 결혼 안 하면 외롭게 혼자 늙어 죽을 것이라는 괴담만이 난무한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안 하는 사람에 비해서 월등히 많기 때문에 소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다수의 이야기가 주목받기 쉽고 소수의 이야기는 묻힐 수밖에 없다.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한 사람들은 중학생 때의 나처럼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입을 닫게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주위에서 하나 둘 하니, 나도 해야 하나.. 정도만 잠깐 고민하고 말았을 뿐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지만, 죽어도 절대로 결혼을 안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결혼을 하고 싶진 않다. 사람 인생 어찌 될지 모르니 여지만 조금 남겨둘 뿐이다.


  중학생 때부터 30대 중반을 넘은 지금까지 여전히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해도 여전히) 결혼한 것이 정상이라는 분위기한테 맨날 오른쪽, 왼쪽 귀싸대기를 맞으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맷집이 는 거 같다.




  비혼이란 말이 흔한 말이 되었지만, 실제 비혼으로 쭉 살고 있는 4, 50대 이상의 여성을 찾기 어렵다. 현재 40대인 70년대 후반~80년 대생들은 대부분 '어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하는 것'으로 주입받고 컸을 것이다. 결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의 1,20대들이 4,50대가 되어야 비혼이 말로만 흔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비혼으로 4, 50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사례는 내 주변에선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글을 많이 찾아 읽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결혼하게 된 여성들이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결혼하지 않겠다던 여성들이 결국 결혼하게 되는 이유는 "정서적 안정, 신체적 안정, 경제적 안정"을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1. 결혼 적령기가 지날 때까지 결혼 못 한 것은 어디 하자가 있는 여자라는 사회적 시선, 혼자 사는 여자라고 쉽게 추파를 던져대는 남자들의 시선, 이를 결혼을 통해 말끔하게 피할 수 있다. (정서적 안정)

2. 차를 사거나 집을 사거나 인테리어를 하거나 이사를 할 때 젊은 여자,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얕보는 시선을 남편이 있다면 피할 수 있고, 혼자 사는 경우보다 각종 성범죄로부터 훨씬 더 안전하다. (신체적 안정)

3.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혼자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도 살 수 없는 내 집 마련을 남편과 함께 힘을 합치면 어느 정도 가능하고, 내가 일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와도 남편 소득으로 먹고살 수는 있게 된다. (경제적 안정)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의 장점은 크게 이 3가지 카테고리에 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 3가지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으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건 1, 2번은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를 혼자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그나마 3번의 '경제적 안정'은 혼자서도 어떻게 지지고 볶고 비벼볼 수는 있겠다. 이 또한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살아가는데 중요한 1,2번은 결혼 말고는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참 암담하다. 결국 비혼을 추구했던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기 어려운 이유는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정서적 안정, 신체적 안정, 경제적 안정을 혼자 힘으로 이루기가 매우 매우 어렵고, 어떤 것은 또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아선호사상으로 80년대 후반~90년대 생까지는 여성보다 남성들의 인구가 1.2배 정도 많다고 한다. 또 여전히 결혼할 때 경제적 준비 정도를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더 많이 요구한다. 집값이 워낙 높아져 남성들이 집을 해와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남성이 결혼할 때 더 많은 돈을 준비해 와야 한다는 통념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들은 결혼 자금을 많이 못 모았더라도 사회적으로 너그러이 봐준다. 이러니 아무래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는 결혼하기 쉽다.


여성들을 결혼하게 하려고 사회적 각본이 세밀하게 다 짜여있는 느낌이다.




  친구들이나 중년 여성들이 나에게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되지~"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여성들은 모두 기혼자다.) 그녀들이 말하는 '능력'이란 '돈(경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대부분 전업주부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남편 소득이 월등히 많은 경우들이었으니. 바꿔 말하면 본인들이 경제적 능력이 충분했으면 결혼 안 했을 것 같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 능력만 있다고 해서 혼자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혼자 살기 위해(결혼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정신력, 힘든 일도 버틸 수 있는 체력, 위기가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경제적 능력 등의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든 아니든, 누구든 언젠가는 혼자 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니 결혼 여부 상관없이 혼자 잘 살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던 여성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물론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선택한 것일 테니 '결혼 안 하겠다더니 결국 결혼한다며'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사는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신, 결혼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다만, 나는 결혼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삶을 함께 헤쳐나갈 동지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느낌이라 조금 아쉬울 뿐이다.


  내가 50대가 될 때쯤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비혼이 흔해질까. 지금 20대들은 결혼 안 해도 큰 일어나는 거 아니구나, 결혼 여부 상관없이도 잘 살 수 있구나 하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오게 될까. 결혼하고서도 각자가 다양하게 살아가듯, 결혼하지 않고도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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