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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Nov 21. 2023

독립한 딸과 엄마의 거리

  독립하고 나서 한 번도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한 적이 없다. 한두 달에 한 번쯤 엄마가 먼저 전화하신다. 이런 얘길 하면 사람들 반응은 좀 극단적인 2가지 형태로 나뉜다. '(공감하면서) 나도 딱히 용건이 있지 않은 이상 부모님께 먼저 전화 안 한다.'라는 파와 '(놀라면서) 아니 그래도 부모님께 안부전화는 가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파로 나뉜다. '나는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별일도 없는데 굳이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나?'란 생각이었는데, 후자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아서 좀 놀랐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독립하고 처음 엄마한테 전화 왔을 때는 내가 '왜?' 하며 전화를 받았다. 용건이 없으면 전화를 왜 하지? 란 생각에 정말 순수(?) 하게 '무슨 일로 전화했느냐'라는 뜻이었는데, 엄마는 또 그게 서운했는지, '왜긴 왜야!! 엄마가 딸한테 전화도 못 해?!'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냥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집에는 안 오나 궁금해서 전화하신 거였다. 나는 이렇게 무심하고 무뚝뚝한 딸이다. 지금은 가끔 엄마에게서 전화 오면 "밥 먹었냐, 뭐 하고 사냐, 별일 없냐, 반찬 해놨으니 가져가라, 집에 언제 오냐"이게 하시는 말씀의 전부다. 나는 "응, 잘 살아, 별일 없지, 알았어, 나중에 갈게" 하고 끊는다.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아 좀 고민되다가도 또 지나고 나면 딱히 먼저 전화는 못 하고 있다.


  주변에서 '딸 같은 며느리'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이 먼저 나오곤 했다. 제대로 표현하려면 '애교 있고 잘 웃고 사근사근한 며느리'라고 해야지. 내가 우리 엄마한테 하듯이 시어머니한테 하면 나는 아마 천하의 버르장머리 없는 며느리가 될 거다. 밖에서는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착한 척 웃고 있지만, 엄마 앞에서는 짜증이나 화도 잘 낸다. 엄마는 내가 뭘 해도 내 편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자꾸 짜증 난 말투가 튀어나올 때가 많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서면 후회하지만)


  현재 내 보험이 많이 들어져 있는데, 내가 직접 든 보험은 하나도 없다. 주택청약통장도 20대 초반에 엄마가 들어주셨던 것, 실손보험이나 다른 보험들도 전부 엄마가 들어놓으셨던 것들이다. 백수 시절까지는 엄마가 내 보험 중 몇 개는 대신 내주셨지만, 취업을 한 이후로 내 보험료는 다 내가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보험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보험을 좀 간소하게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몇십만 원씩 나가는 보험료가 아까웠다. 그런데 내가 보험 해지 한걸 알면 또 엄마가 노발대발할걸 알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지금도 그냥 유지하고 있다.


  오랜 백수생활로 엄마 속을 썩였던지라 이제 혼자서 뭐든 척척 잘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잘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늘 걱정하시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애인 건지, 결혼을 안 해서 애처럼 대하는 건지, 엄마는 뭐든 본인과 의논을 하고 결정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어디 지역 재개발된다더라 투자를 해봐라'라든지 '엄마한테 곗돈 넣으라'던지, 그런 비슷한 말을 하실 때마다 좀 답답하다. 아마 직접적인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어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으신 거겠지만, 엄마 표현대로라면 이미 대가리가 클 대로 커버린 딸내미라 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 물론 잘 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시겠지만 자꾸 내가 해야 할 선택들을 대신하시려는 게 불편할 뿐이다. 이런 것까지 이겨내야 진정한 독립일 텐데.. 내 수입과 지출, 저축은 내가 전부 관리하고, 현재 엄마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전혀 없으니, 경제적 독립은 이룬 것 같다가도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엄마에게서 가끔 반찬이나 먹을 것 들을 받아다 먹고, 엄마가 들어준 보험들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또 독립을 제대로 한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생신, 어버이날, 명절에만 본가에 가고 있다. 그러니 거의 분기에 한 번은 본가에 가는 것 같아 내 딴에는 본가에 자주 가는 느낌이다. 본가에 가면 같이 밥을 먹고 용돈을 드리고 바로 돌아온다. 이제는 본가에 오래 있는 게 불편하다. 여전히 먼저 안부전화는 하지 않는다. 안부전화를 자주 안 한다고 해서 엄마와 사이가 안 좋거나 서먹서먹한 것도 아니다. 막상 집에 놀러 가면 엄마와 일상 얘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장난치기도 한다. 다만 나는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하고 싶을 뿐이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도 실수하더라도 내가 감당하면서 깨닫고 배우고 싶다. 다 큰 딸내미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어렸을 때처럼 자꾸 대신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가 조금 버겁다. 내가 힘든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알기에 완전히 선을 긋기도 어렵다.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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