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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14. 2024

사람들을 만나면 할 얘기가 없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나를 소개하는 말이 길어진다. 초반까지는 "3n살 직장인입니다." 하면 끝이다. 중후반이 되면 "3n살 직장인입니다. 결혼은 안 했고요. 만나는 사람은 없고요. 아, 돌싱은 아니에요." 뭔가 부연설명이 길어진다. 나이와 직업을 알고 30대 후반이라 하면 그다음에 궁금해하는 건 결혼여부다. 물론 결혼했어도 아이가 있는지 여부, 마련을 했는지 여부 등도 설명드려야(?) 한다.


  예전엔 여러 모임들에 나가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여러 명이 모이는 곳엔 가지 않게 되었다. 한창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는 카톡에 단톡방들도 엄청 많았다. 대학원 동기들 단톡방, 노무사 동기들, 스터디하면서 만났던 모임들, 취미활동 하면서 만났던 모임, 내가 다녔던 체육관 단톡방,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등등. 오랫동안 모임 자체를 아예 가지 않다 보니, 지금 남은 단톡방은 대여섯 개 정도다. 그것도 이제는 다들 각자 인생 살기 바쁜 나이가 되어서 오래됐지만 조용한 단톡방들이다. 가끔 누군가가 오랜만에 모이자며 단톡방이 활기를 띌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눈팅만 할 뿐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모이는 이유는 대부분 결혼 소식이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전 예전에 여행에서 만났던 동생에게서 개인톡이 왔다. 그때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보기로 했는데 같이 볼 시간이 되냐며. 함께 여행했을 때 너무 즐거웠던 사람들이라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같이 보겠노라 했다. 이번에 본다면 거의 3~4년 만에 보는 거였다. 평소 같았으면 요새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다음에 보자고 거절했을 텐데, 나도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나 보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다들 반갑게 인사하고 저녁 먹으면서 근황 얘기를 했다. 그런데 진심으로 반갑긴 한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뭔가 점점 할 얘기가 없어졌다. 뭔가 좀 불편해졌다. 왜 그런고 했더니 이들이 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직업(커리어)과 결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30대 남성들이었다. 학벌 좋고, 내 집 마련하고, 외모도 나쁘지 않고, 연봉도 자산도 높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완벽한 그들의 다음 관심사는 결혼 얘기 일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은 올해 여름에 이미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했다. 커리어에도 결혼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나는 그들과 할 얘기가 없었다. 그냥 듣고 맞장구만 쳐주고 있었다.


  나는 그냥 소소한 것들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들 있잖은가. 소위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블로그에 일기 쓰기라든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라든가, 뻔하고 재미없는 일상에서 작은 설렘을 주는 것들 말이다. 운동하면서 느끼는 개운함,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전율, 내가 좋아서 오랫동안 하고 있는 취미들, 산책하면서 느끼는 여유로움, 글을 쓰며 알게 되는 나의 깊은 속마음 같은 것들. 직업, 결혼, 돈 같은 현실적인 얘기들만 말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들에 관한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걸까.


  그런데 다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직업과 결혼처럼 인생에 (눈에 보이는)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빅이벤트가 아니다 보니 그럴 것이다. 여행 안 다녀도, 음악 안 들어도, 운동 안 해도, 글을 안 써도 일상을 잘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나의 인생을 궁금해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인생이 궁금하지 않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인생에는 관심 없다. 다들 나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거나 내가 지향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다.


  어쨌든 나의 이야기는 공감을 받지 못하는 탓인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뭔가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었는지 문득 다시 깨달았다. 예전에도 언제부턴가 그랬던 것 같다. 혼자서 잘 지내다가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 나만 이렇게 특이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인 것 같다. 혼자 사는 것도 너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도 너무너무 좋지만,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나만의 공간이 있는 일상에 있다 보면 또 금세 괜찮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문득 나도 사람들한테 공감받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재밌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하는 하기 싫은데, 남들 하는 거 안 하고 있어서 느끼는 소외감이 드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남들 다하니까 나도 해야 할 같은 마음에서 하는 거라면 정말 끔찍하다. 어쨌든 이제 이러다 주위에 아무도 안 남게 생겼다. 이미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나답게 산다는 거 쉽지 않다.


나는 소위 잘 나가는 지인들 사이에선 커리어도 결혼도 관심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나를 잘 모르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하는 것도 많고 열심히 사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

앞으로 나를 '이상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다녀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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