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스쿠터로 제주여행 2탄

여행지에서 혼자 밥 먹는다는 것

by 놀쓴

서울에서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조금 다르다. 여행객들이 많은 관광지는 연인끼리, 가족끼리, 아니면 단체 관광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 근처 밥집들은 다 시끌벅적하고 테이블이 꽉꽉 차 있다. 혼자 온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아우라가 풍긴다. 그래서 유명한 관광지나 바닷가 쪽 밥집은 무조건 피했다.


첫날 점심은 일반 한식집이었다.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다 보이는 아무 한식집이나 들어가야지 했는데, 스쿠터 운전이 능숙하지 않은지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기 힘들었다. 결국 스쿠터 멈춰 세워서 검색해서 찾은 한식집에 들어갔다. 테이블은 한 7~8개 정도 있었고 손님은 3 테이블 차 있었으나, 예의상 창가 쪽 1인석 좌석에 앉아서 먹었다. 혼자 먹기에는 역시 창밖을 마주 보는 1인석 자리가 제일 편하다. 혼자 밥 먹다가 다른 테이블 사람이랑 눈 마주치는 건 정말 뻘쭘하다. 고등어 정식을 시켰는데 딱 혼자 먹기 적당한 메뉴고 맛도 괜찮았다. 저녁은 국수를 먹기로 했다. 면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여행 왔으니 평소에 잘 안 먹는 걸 먹어보기로 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보말 칼국수를 시켜보았다. 동네 맛집이었는지 내가 들어간 지 10분 만에 테이블이 꽉 찼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도 별로였고 시끌벅적해져서 급하게 먹고 나왔다. 유명한 관광지 근처가 아니었는데도 두 군데 밥집의 손님들 모두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보통 식당 문 열고 들어가면 '몇 분이세요?'하고 물어본다. '혼잔데요, 1명인데요.' 대답하고 나면 뭔가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혼자 왔다는 이유로 식당에 뭔가 죄송스러워지는 느낌이다. 혼자 먹으러 갈 때는 늘 식탁도 최대한 깨끗이 쓰고, 최대한 내가 먹은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자리 차지하지 않게 빨리 먹고 나오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내 돈 주고 밥 먹는데 왜 이렇게 움츠러들지? 배고픈데 근처 식당이 적당한 데가 없어서 큰 식당에 가야 하는 경우 "1인 식사 가능한가요?" 하고 내가 먼저 묻기도 한다. 다행인지 아직까지 "1명은 안 받아요." 하는 곳은 없었다.


제주도 갈 때마다 서귀포매일올래시장은 늘 갔던 것 같다. 이날 비가 많이 와서 지금까지 올래시장 갔던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없었는데도(그래도 많긴 많음) 정신이 없었다. 밥집보다 시장에 간 이유는 메뉴 여러 가지를 조금씩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두랑 닭강정, 오메기떡 사서 벤치 앉아 먹었는데 너무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폭우를 맞으면서 스쿠터 타고 간 터라 나는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상태였다. 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여행 가면 시장 구경을 꼭 가는 편인데, 여기는 '시장'이라기보단 '기념품 숍&관광지'느낌이라 다음에 제주도 가면 여긴 이제 안 갈 것 같다.


사실 나는 회가 먹고 싶었다. 혼자 횟집에 가볼까 고민을 해봤다. 주문만 많이 한다면야 혼자 횟집 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만한 가격을 내면서까지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대안으로 회를 포장해서 숙소 가서 먹어볼까 고민해 봤다. 가게 가서 포장 픽업해서 다시 숙소 가서 음식 꺼내서 세팅하고 다 먹고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정리해야 하는 게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회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긴 한데, 희한하게 바닷가 근처에 가면 회가 그렇게 땡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회는 못 먹고 돌아왔다.


대신 제주도에 왔으니 흑돼지는 꼭 먹겠노라 다짐했다. 혼자 먹으면 계란찜이나 냉면 같은 사이드 메뉴도 배불러서 못 먹을 것이고, 뭔가 빨리 먹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좀 고민이 됐다. 그때 예전 여행에서 만났던 제주도 사는 아는 동생이 떠올랐다. 흑돼지를 같이 먹자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계란찜과 냉면까지 먹겠다고 몇 년 만에 연락하려 한다는 게 좀 웃겼다. 한 2년 전 만났었으나 그 후 연락한 적도 없고, 이날 본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에 다시 또 볼 일이 없으므로, 피상적인 대화만 이어질 것이었다. 결국 그냥 내 인생 최초로 '혼자 고깃집 가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풍 검색해서 후기가 괜찮고, 또 후기 중에 혼자 먹었다는 리뷰가 있는 곳을 찾았다. 혹시나 1인은 안 받는다 할까 봐 그 근처 다른 밥집도 찾아놨다. 다행히 '혼잔데요' 했는데 '앉으세요' 해서 가장 구석자리 슬그머니 앉았다. 흑돼지 오겹살 2인분을 시켰다. 고기는 밥과 같이 먹는 스타일이라 공깃밥 하나도 시켰다. 다행히 고기를 직접 구워주시는 곳이었다. '고기 400g, 공깃밥, 콜라'를 40분 만에 해치우고 나왔다. 공깃밥을 조금 남기고 고기는 다 먹었다.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시간을 피해서 조금 이른 저녁시간 오후 6시 좀 전에 갔으나, 곧 저녁 먹으러 사람들이 올 것 같아 빨리 먹었다. 다행히 오랜만에 먹는 흑돼지고기는 꿀맛이었다. 사이드 메뉴를 못 먹은 아쉬움이 있으나, 고기 400g으로 배가 가득 차버린 내 배때기를 탓할 수밖에.


지막 날은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먹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브런치 카페였는데 아메리칸 브런치+아이스 아메리카노가 2만 3천 원이나 했다. 예상은 했지만 제주도 물가가 전반적으로 서울보다 비싼 것 같았다. 특히나 바닷가 가까운 데 있는 카페는 훨씬 더 비쌌다. 밥값보다 바다뷰값이 더 비싼 것 같다.


여행지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선택권이 많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모든 식당이 혼자 온 손님보다는 여럿이 온 단체손님을 반길 테니.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일행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메뉴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혼자 밥 먹는다는 것은 또 메뉴를 여러 가지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서 가면, 여러 가지 사이드 메뉴를 시켜놓고 나눠먹을 수 있다. 혼자 가면 대식가가 아니고서야 메뉴는 1개 또는 많아봤자 2개밖에 못 시킨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을 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내 경우엔 일반적인 밥집은 혼자 가는 게 좋고, 2인 이상 주문 가능 같은 메뉴나 고깃집, 횟집 등을 가고 싶을 때는 같이 먹을 사람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여행을 왔으니 밥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와 디저트를 즐겨야 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자꾸 쫓기는지, 밥집이든 카페든 음식 나오는 시간 포함해서 길어봤자 4,50분 이내에 나왔다. 웨이팅이 있는 곳이 아니고서야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있는 게 눈치 보이는 건 아닌데.. 아마 일행이 없으니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겠지. 그럼 창밖 보면서 멍 때려야 하는데. 예전보다 많이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보다. 원래 밥을 빨리 먹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혼자 가면 더더욱 빨리 먹고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엔 혼자 여행 가면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혼자 찍는 셀카엔 한계가 있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찍어달라 하면 맘에 안 드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렇다고 같이 여행을 계속하고 싶진 않고, 딱 서로 사진만 즐겁게 찍어주고 나서 빠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제는 혼자 여행 가면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것저것 여러 개 시켜서 먹고 싶은데 혼자선 다 먹을 수 없고, 혼자 먹을 때보다 같이 먹으면 느긋하게 먹고 올 수 있으므로. 그렇다고 같이 여행을 계속하고 싶진 않고, 딱 서로 같이 즐겁게 밥만 나눠먹고 나서 각자 빠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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