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옛 여행의 기억
혼자 여행할 때마다 숙소로 게스트하우스는 늘 피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첫 게하의 기억이 너무나 안 좋았었기 때문이다.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여수에 갔을 때 게하를 처음 갔었다. 작은방에 2층 침대를 3개나 욱여넣은 6인실 방에 묵었다. 그 당시에 인기 있는 게하였는지 만실이었다. 그런데 샤워실은 딱 하나뿐이라 한 명씩 씻어야 하니, 씻는 거 기다리느라 엄청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여자들은 샤워하는 데 더 오래 걸리니까. 그리고 저녁에 파티를 여는 게하였는데, 게스트들 다 같이 큰 테이블에 모여 술을 먹었다. 그때 인원이 내 기억에 적어도 12명 이상이었던 것 같다. 사장님이 분위기 띄우려고 게임 같은 거 진행하셨던 것 같다. 그것까진 좋은데 사장님이 이성 게스트들끼리 억지로 짝을 지어주려고 하는 것부터 슬슬 짜증이 났다.
내가 그때 27살이었는데 거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제비 뽑기 같은 걸로 내 짝이 된 남자애는 이제 막 20살 된 얘였다. 사장님께서 짝이 된 사람끼리 앉을 수 있도록 자리배정을 다시 하셨다. 내가 그 아이를 짝으로 고른 것도 아닌데, 거기서 제일 어린애가 제일 나이 많은 나와 짝이 되게 돼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게임도 술자리도 대화도 다 재미없고 지루했던 것 같은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잘 때도 나는 다른 일행보다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거의 새벽까지 밖에서 더 놀다 와서 자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도 설쳤다.
어쨌든 이때의 기억 때문에 그다음 여행부터 나는 무조건 게하는 피했다. 그랬던 내가 이때부터 11년이나 지난 서른여덟이 되어 다시 게하를 가게 되었다. 이번엔 제주도에서. 이번에 첫날 1박은 게하를 잡았던 이유는 그냥 숙소비용을 좀 더 아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씻고 잠만 잘 생각이었으므로. 그런데 이번 게하는 기대를 전혀 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이번에도 당연히 예상했듯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지만. 억지스러운 술 파티도 없었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숙소도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게스트들끼리의 대화도 그냥 여행하다 잠깐 만난 사람들 간에 하는 간단한 통성명, 서로의 여행 일정, 자잘 자잘한 인생 얘기 등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은 적당한 대화라서 좋았다.
물론, 스쿠터를 타고 다녀야 해서 체력 소모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둘째 날과 셋째 날은 1인실로 쓸 수 있는 리조트들로 갔다. 역시 혼자 쓰는 객실이 편하긴 하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게하에 묵었던 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게하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이번 여행으로 좀 사그라든 것 같다. 그나저나 어떻게 스물일곱에 갔을 때도 서른여덟에 갔을 때도 왜 항상 내가 제일 나이가 많지...
예전 여행을 다시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은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 여행 추억들은 다 좋아 보이기만 한다. 사진이 별로 없는 여행이라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안 좋은 일이 하나 있었다면, 그 여행 전체가 안 좋은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여행의 기억은 사진이나 기록이 없다면 늘 더 미화되거나 더 악화되는 것 같다. 안 좋은 기억이 남는 여행도 되돌아보니 그때 그렇게 안 좋았던 건 아니었을지도.. 하는 생각도 든다. 11년 전 첫 게하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기록도 사진도 없어서 숙소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동네가 어땠는지 등은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냥 '불편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안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것처럼.
반대로, 그때 거기서 추억이 너무 좋아서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으면, 그때와 같지 않은 느낌에 실망할 때가 많다. 인도 여행이 그랬다. 처음에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 그때의 설렘을 가지고 다시 갔을 때, 처음만큼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좋았던 추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 머릿속에서 부풀려지고, 팍팍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미화됐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니 좋았던 추억을 가지고 다시 방문하면 실망할 확률이, 안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다시 방문하면 생각보다 좋을 확률이 높아지는 게 아닐까.
이번 스쿠터 타고 제주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풍경 사진과 음식 사진들뿐이므로, 여행하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 생각, 느낌을 글로 꼭 기록해 놓고 싶었다. 여행 다녀온 후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얼른 글을 쓰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해 빠르게 이 여행의 기록들을 쓴다. 언제 또 다시 제주도에 갈진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혼자 제주여행을 가게 되거든 그때 다시 이 글들을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