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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30. 2021

나는 연기하면서 사는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늘 즐거우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할 것 같은 강박감 같은 게 든달까. 그게 적당하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언제부턴가 조금 지쳐가고 있었나 보다. 사람들을 만나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집에 돌아오던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기하면서 사는 것 같아.”라고.      


멋있다는 말이 듣기 싫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나는 어떤 사람이냐는 말을 많이 듣냐"라고 묻는 다면, 나는 멋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멋있게 살고 싶었다. '멋있다'의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있게 사는 삶을 위해서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재밌게 했다. 열심히 했다. 집중해서 했다. 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할 때는 일을 열심히 하고, 놀 때는 재밌게 놀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 잘 해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멋있다."는 말을 꽤 많이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뭔가 뿌듯했었던 것 같다. '우와, 나 잘하고 있나 봐.' 하면서.


   그런데 요새는 멋있단 말이 듣기 싫어졌다. 나도 내가 멋있는 줄 알았는데, 멋있지 않은 내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사소한 말에도 상처 받는 찌질한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의견에 틀렸다고 반박하는 사람의 말에 쿨하게 넘기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이 보였다.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 어쩐지 예쁘지 않은 모습은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멋있다는 말을 들으면 멋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뭔가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왠지 나는 그들의 말에,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들의 기대와 다른 나의 찌질한 모습을 보면 그들이 실망하겠지. 그게 무서워서 나는 점점 더 멋있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그게 점점 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멋있는 척,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 완벽한 연기를 마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생각한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는 말도 듣고 싶었다. 사실 멋있단 말은 기분 좋은 말이고, 좋게 봐주는 거니까 고마운 말이다. 그런데 그 똑같은 말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 상태가 좀 달라졌던 것이다. 멋있다는 말을 그냥 칭찬으로 받고 넘기면 되는데, 그걸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멋있다는 말을 듣기 싫은 게 아니다. 멋있단 말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가 싫었다.


어디까지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연기이고, 또 어디까지가 내가 억지로 하고 있는 연기일까.


  어렸을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화난 것 같아 보인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던 나였다. '먼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라는 말은 보너스로 들었고. 남자들은 항상 이상형을 물으면 "밝고 웃는 게 예쁜 여자"라고 했다. 밝고 외향적인 친구들은 어디에서나 항상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밝고, 외향적이고, 잘 웃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수줍음 많고 낯가리던 학창 시절에 나는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 앞에서 밝고, 잘 웃는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별거 아닌 농담에도 깔깔대고 웃었다. 내가 웃는 모습이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인 "웃는 게 예쁜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웃는 건 나름 효과가 있었다. 그러면서 더 많이 웃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거나 할 때도 억지로 웃으려고 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내 웃음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척’하는 건지 나조차 구분이 안 가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이 있다. 몸도 마음도 축 처지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그럴 때조차도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울한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모습을 좋게 봐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애써 그랬을까 하니,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날 좋게만 봐주고 날 좋아해 줬으면 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처럼 나 좀 안아달라고 나 좀 예뻐해 달라고.

 


 

  누구나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땐,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에게 말해줘야겠다. 그래도 괜찮다고. 항상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힘들게 너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찌질하고 소심하면 뭐 어떠냐고. 기분 안 좋을 땐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연기하고 싶지 않을 땐,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내 모습에 떠나갈 사람이면 떠나가게 내버려 두지 뭐. 괜찮아 괜찮아.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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