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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와 마지막 환자

by aliceheeyoung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초가을 밤이다.


지하철이 귀한 동네라 한대를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빠르게 전철을 타기 위해 진료실 정리와 환복을 서두른다. 태풍 때문에 환수가 많지 않으리란 기대에도 늦은 시간까지도 내원이 끊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내 빠짐없이 치료를 하지만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호전을 보이던 요통 환자 한분이 오늘의 마지막 환자다. 어쩐지 오늘은 통증이 더 심하다는 거다. 기존과 동일하게 침과 약침을 놓았는데 치료받은 부위가 따갑고 우리하다며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지 못한다. 서둘러 퇴근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침상에 앉아 아이스팩을 통증 부위에 대어주며 주변 근육을 주물렀다. 5분여 시간이 흐른 후 그이는 훨씬 나아졌다며 환하게 웃어준다. 간발의 차이로 퇴근 지하철은 놓쳤다. 점심시간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이렇게 강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퇴근 무렵에는 우산을 썼음에도 옷과 신발이 홀딱 젖어버렸다.


얼마나 몸이 불편했으면 비바람을 뚫고 한의원에 내원했을까, 그리고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마음을 먹었을까. 마지막 환자의 미소가 퇴근길 내내 떠올라, 귀가를 재촉했던 발걸음이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나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 초심을 잊지 않는 따뜻한 한의사가 되고자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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