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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나 Aug 11. 2021

(미운) 오리 새끼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 안데르센 <미운 아기오리>

 구도심의 버려진 폐호텔은 그 일대 일진들에게 있어 최고의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고성방가 하며 술판을 벌여도, 다른 아이들을 끌고 와 몹쓸 짓을 해도, 말리거나 훼방 놓을 사람이 없다 보니 무슨 짓이든지 맘대로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낙원이었다. 하지만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이 되면 얘기가 달라졌다. 전기도 난방도 다 끊겨버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서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꽃 피는 봄이나 돼야 방문객이 있을법한 한겨울의 폐호텔에 신기하게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가 지고 나면 온통 암흑천지가 되어버리는 호텔의 한 객실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객실 중앙에는 20대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의자에 묶인 채 정신을 잃고 방치되어 있었다. 그나마 코와 입에서 미약하게 김이 나는 걸로 봐서 숨은 붙어있는 듯했다.


 잠시 뒤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몽롱한 듯 힘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내 기운을 좀 차렸는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꽁꽁 묶여있던 탓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외침을 듣고 달려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애들 괴롭힐 땐 방해꾼이 없어서 좋았지?”


 어둠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묶여있는 남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다.


 “그런데 어쩌나? 지금 널 구해줄 사람 역시 없는데?”


 “뭐야 당신? 나한테 왜 이래?”


 “뭔가 찔리는 게 있을 텐데?”


 남자는 이내 떠오르는 대로 몇 명의 이름을 읊어보았다. 여자가 비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몇 년 살지도 않아놓고 참 여럿한테도 죄를 지었나 보네?”


 “장난해? 어떤 새끼야? 치사하게 뒤에 숨지 말고 직접 나오라 그래!”


 “내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해?”


 “당연한 거 아니야? 너 혼자 무슨 수로 나를 여기까지 날러? 이거 범죄야. 요즘은 CCTV가 좋아서 다 찍힌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네가 하면 장난이고 남이 하면 범죄지? 이런 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뭐야? 학창 시절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복수라도 하려고? 누군지 몰라도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그만 해라.”


 웃음기 가득했던 여자의 얼굴이 일순 진지하게 돌변했다.


 “철저하게 망가질 뻔했지. 일진 노릇하던 너랑 네 친구들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그래도 괜찮아. 오늘을 계기로 미래를 향해 날개 짓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뭔 개소리야?”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을 이어갔다.


 “너 ‘카르마(=업보)’가 뭔지는 아니?”


 남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여자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딱히 알 거란 기대를 갖고 물어본 건 아니야. 그럼,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는 알라나?”


 “말장난 그만 하고, 빨리 대. 어떤 새끼가 시킨 거냐고?”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나쁜 머리로 지은 별명치곤 꽤나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운 오리 새끼? 오리온?”


 “완전 바보는 아니었네? 맞아. 아까 술집에서 너랑 친구들이 안주 대신 한창 씹어댔던 그 오리 새끼.”


 “뻥치시네. 그 새끼 고아에 친구도 없고 가진 것도 개털인 거 다 아는데, 차라리 부모 잘 만나서 돈이나 많은 준영이가 시켰다고 하지 그러냐?”


 “그랬으면 좋겠지만, 네가 말한 준영이는 부모 돈 믿고 흥청망청 살다가 결국 그 돈 다 털어먹거든.”


 “지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뭐 미래에서 오기라도 했냐?”


 “그래. 미래에서 왔지. 존경하는 오리온 회장님을 대신해 너를 혼내주기 위해.”


 “야, 그만해라. 재미없다. 니들 이러다 진짜 쇠고랑 찬다.”


 “미성년자일 땐 법을 개똥으로 알더니, 성인 됐다고 이제 법의 보호 좀 받으시겠다? 아참, 아까 CCTV 가지고 뭐라 뭐라 했지?”


 여자가 남자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위로 향한 손바닥을 살짝 들어 올리자 남자가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것을 저지했다. 남자는 공중에 뜬 채로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녀야만 했다. 얼마 후 여자는 남자를 제자리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넌 CCTV 시점보다 한참 위로 다녔으니, 찍히지 않았을 거야.”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숨쉬기 곤란했는지, 남자는 헉헉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좀 믿음이 가? 내가 미래에서 올 수 있었던 것도, 방금 전 것도 따지고 보면 오리온 회장님 덕분이야.”


 헉헉거리는 남자를 향해 여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몇 분간은 말을 못 할 테니 듣기만 해. 오늘 너희들이 술집에서 한창 왕년의 무용담을 지껄이고 있을 때, 근처에 오리온 회장님이 있었어. 맞아 니들 덕분에 대학도 못 가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그 ‘오리 새끼’ 말이야. 사실 자살할 용기도 안 나서 술의 힘이라도 빌려보려고 찾아간 그곳에 하필이면 너희들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자신을 죽고 싶게 만든 지옥 같던 학창 시절이 순간의 안주거리로 허비되는 것을 들으며 오기가 생겨버렸지. 이후 갖은 고생을 해가며 멈추지 않고 정진한 덕분에 세계 최고의 초우량 기업인 ‘스완(=백조)’이 탄생할 수가 있었던 거야. 니들이야 별 뜻 없이 재미로 ‘오리온’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 ‘오리 새끼’라는 별명을 지었겠지만, 그에겐 ‘미운 오리 새끼’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었나 봐. 암튼 그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결국 아름다운 백조가 되었으니, 이제 백조를 못살게 군 오리들이 벌을 받을 차례겠지?”


 여자가 서서히 다가오자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에서 오리온이 복수하려고 너를 보냈다고? 애들 장난이었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불과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오리온 회장님이 했던 말과 같은 말이네? 그때 네가 그랬잖아. 우리 기분에 달린 거지 이유 따윈 필요 없다고. 나도 마찬가지야. 그를 존경하는 내 입장에서 너의 죄를 묻지 않으면 기분이 엿 같아서 이럴 뿐이야. 사실 오리온 회장님은 너 따위 안중에도 없으셔. 밀림의 왕 사자가 새끼 시절 자길 괴롭혔던 하이에나를 찾아가 복수하는 거 봤어? 이미 그가 있는 곳은 너 따위가 있을 수도 없는 곳이야.”


 “근데 왜 하필이면 나야? 나 혼자서 그런 것도 아니잖아?”


 “네가 제일 별 볼일 없기 때문에 제일 먼저인 거야. 국가대표감이라는 흥국이는 학폭 사실이 탄로 나서 축구판에 얼씬도 못하게 될 거야. 반반한 외모로 주연 자리를 꿰차려던 온달이도 학창 시절 악행이 낱낱이 드러나서 꼬꾸라지게 될 거고. 걔들은 이후에 찾아가도 늦지 않아.”


 “자 잠깐만! 나비효과 몰라? 지금 내가 없어지면 미래가 바뀔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오리온 회장이고, 스완이고 완전 나가리야!”


 남자의 막말 대잔치에 여자가 다시 한번 깔깔거리며 웃었다.


 “너처럼 약자들만 괴롭히며 산 인간이 미래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건데, 너에게 있는 재주라곤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위대한 망각증 밖에 없잖아? 너 ‘미운 오리 새끼’에 나왔던 오리들의 말로를 아니?”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남자를 향해 여자가 말했다.


 “아무도 몰라. 너의 미래처럼 말이야. 어떠한 관심과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그냥 사라졌어. 사냥꾼의 총에 맞았는지, 살쾡이에게 물려갔는지 알게 뭐야?”


 서서히 남자에게 다가가며 여자가 말했다.


 “여기서 문제. 나는 사냥꾼일까요? 살쾡이일까요?”


 공포에 질린 남자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또다시 저지했다. 남자의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속삭이듯 여자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기회가 있었어. 회장님의 죽마고우가 되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기회가. 너 또한 그와 함께 창공을 맘껏 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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