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빵과 수빡

by 토스트잼





‘어디야? 사무실 안 옴?’

(2시간 후)

‘자리에 두고 간다. 선물’


진 빠지는 릴레이 회의를 마치고, 늦은 밤에나 돌아온 사무실.

책상 위엔 포스트잇이 붙여진 흰색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다.


세상에 뭐야 이게.

‘식빵계의 에르메스’라는, 그 유명한 <화이트리에> 쇼핑백 아냐…!

대박대박. 나 이거 인터넷에서만 봤지 실물 영접은 또 첨인데, 하 손 떨려라. 경건한 마음으로 일단 빵 봉지를 살짝이 열어드려본다.

킁킁.

하아- 이 고소하고 영롱한 밀가루 향…!

귀여운 녀석. 웬일로 이런 깜찍한 짓을 한대? 당장 후배한테 카톡을 갈긴다.


”카톡“ (쇼핑백 사진)

”카톡“ (식빵 사진)

”카톡“ (브이- 손가락 걸고 식빵 든 셀카 사진)

”카톡“ 대박대박.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후배님. 하루의 빡침이 다 풀렸사옵니다

”카톡“ 여긴 또 언제 갔다 왔어? 무슨 일이야 내 것까지 다 사다 주고 ㅠㅠ

“카톡” 아니 마침 어젠가 자기 전에 릴스 이거 보다 잤었는데!!! 너 내 꿈에 왔다 갔냐며


전화 진동보다 더한 간격으로, 식빵의 밀가루만큼이나 촘촘하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와 마침 당 떨어졌는데. 당장 집에 가서 하나 구워 먹어야지- 하는 찰나,


“카톡” 일단, 선배 쌩으로 하나 지금 먹어봐

“카톡” 갓 나왔을 때 그냥도 먹어봐야함


구래?

식빵 쌩으로 먹는 건 중학교 땐가 아침에 토스트기 고장 나서 궁시렁대며 먹은 이후론 첨인 것 같은데.

당장 짐 싸서 퇴근하고픈 욕구를 누르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식빵 한 귀퉁이를 뜯어 입에 넣어본다.


오오…!


맛있어. 뭔가 더 찰지고, 더 밀도 있는 느낌이랄까.

이거슨 닭고기야 식빵이야? (이거슬 기억한다면 당신은 최소 80년대생_그때 그 시절 <샤니>광고)


근데 맛은 있는데, 음… 그렇다고 막 ‘우와 미친 맛. 이거슨 내 인생 최고의 식빵…!’ 이러면서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야. 뭐랄까… 살짝 헷갈린달까.

진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사 먹는 것처럼 <화이트리에>가 객관적으로 월등한 맛이 맞는 건지, 아님 허기지고 지친 지금 이시간 때라 그냥 어떤 탄수화물이든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 탄수화물 중독에 빵순이인 나지만, 미식가는 아닌 하찮은 막입으로썬 그냥 “이러나저러나 다 맛있다”가 맞다.


암튼, 맛있게 먹었다.

받은 사람이 맛있게 먹었음 되었지, 뭘.

그렇게 비싸고 귀한 몸 <화이트리에>는 쉬는 날이었던 그다음 날 아침에 구워서 한 조각, 저녁에 구워서 잼에 발라 한 조각. 그리고 남은 건 냉동실에 고이 넣어 아직까지 잘 주무시고 계신다. 다 먹어 치우긴 해야는데. 이 비싼걸.


그러고 보니

식빵이란 존재가 우리 집 냉장고에 있게 된 건, 입사 후 자취를 시작하고는 처음인 일이다.

냉장고도 낯설어할 것이다.

‘오우, 뭐야. 먹다 남은 거 참 많이도 품어 봤지만, 넌 또 첨이다?’ 하면서.


혼자 산 지 어언 10년.

어느 순간 식빵이란 내게 ’식구‘, ‘4인 가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10개 남짓한 조각들이나 들어있으니 한번 사면 주구장창 몇 끼를, 며칠 동안을 먹어야 하는지라 아예 살 시도 조차를 안 하는 남의 먹거리로 인식이 되어버린 거다. 어린 시절, 식구가 6명이나 되었던 우리 집은 식빵 한 봉지를 사면 나는 땅콩잼에, 누군가는 시리얼에, 또 누군가는 딸기잼과 달걀을 얹어 각자의 방식으로 금방 먹어 치워버려 곧 바닥이 나는지라 우리 집에선 아침마다 상시 스탠바이 시켜놓아야 했던 주식이었다. 그래서 더 그런가. 혼자 살게 된 이후론 ‘식빵’이란 존재는 1인 가구인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살 엄두도 못 내고 사놓곤 감당도 안 되는 메뉴로 느껴졌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발뮤다>가 나온 후론 이런 인식도 ’취향 변화‘정도의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그래서 학창 시절 그 좋아하던 아침 갓 구운 식빵의 바삭함, 그 위에 살살 녹아 스며드는 땅콩잼이 그리울 때면 주말에 브런치 가게를 찾아가 ’사먹는‘ 경제 행위로 만족감을 채운다. 포함된 식빵 양으로만 따지면 가격은 10배나 되는 게 함정이지만.


비슷한 먹거리로 수박이 있다.

여름에 태어나, 제일 좋아하는 과일 Top2인 수박과 말랑 복숭아로 지친 여름을 겨우 나는 나로선 딱 지금, 이 계절부터 1일 1수박을 해치우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수박이란

카페에서 파는 수박 주스(라기엔 수박보다 시럽이 더 들어가는 듯)

뷔페에서 디저트로 많이 쌓아놓는 수박(을 주식보다 많이 먹어 늘 돈이 아깝지)

편의점에서 요맨-큼을, 비이-싸게 파는 썰어진 수박(이게 과연 언제 썰린 걸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수박즙처럼 차오름)

가끔 회식 때 시키는 화채 속 수박(아 밀키스 타지 마요... 수박 맛 안 나요…)


수박충인데 온전한 수박을 누리지 못하는 이 서러움.

가끔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반쪽짜리 수박이라도 사서 1주일 동안 먹어볼까 고민은 해보지만 어휴. 그걸 언제 다 썰고, 썰어서 담아둘 락앤락 용기는 또 언제 사서 어디다 보관해 두며, 썬다 한들 껍데기는 또 언제 버리러 내려가고, 그렇게 먹다 남은 수박의 수분기 점점 말라가는 건 또 내 눈으로 어떻게 보나 싶어 언감생심, 꿈도 수박 반쪽처럼 접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오늘도 난, 수박 주스를 사서 마신다.

“시럽 다 빼고 주세요”

이건 탄수화물 중독자로서 혈당 스파이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_이 아니라 그저 수박. 과일로써의 수박 맛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1인 가구의 슬픈 주문이다.


”위잉-“

사랑하는 수박들이 사정없이 갈려 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산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 가능성도 없고.

그럼 난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지금처럼 쭉 1인 가구라는 건데.

계속 이렇게 수박도, 식빵도 안 먹고 살 거야? 대체 언제까지 대체재 짝퉁들로 아쉬움을 달랠 거야.


1인 가구, 1인 가구.

이것도 결국 대충 편하게 살고 싶어 내세우는 쉬운 핑계다.

집에서 굳이 혼자 밥해 먹기도 귀찮고, 설거지는 더 귀찮고. 다림질이든 세차든 시간과 품 많이 드는 살림은 내가 직접 하기도 귀찮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점점 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외주화‘시켜서 남의 손에 맡기고, 돈을 주고 해결해서 신경을 덜 쓰고.

그렇게 나 스스로가 나를 잘 먹이지 않고, 케어하지 못한 채 남의 손을 빌려 혹은 바깥 시스템에 의존한 채 어영부영 생활을 유지시켜 나가는 반쪽짜리 삶.


근데 알고 있지?

어느 순간, 회사고 가족이고 명함이고 다 떼고, ‘나’로써 정면승부 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거.

그땐 진짜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생존에 필요한 능력치를 내 안에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때가 온다는 거.

이건 식빵을 먹고 수박을 먹는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하는 케파, 즉 나의 내공에 대한 이야기다.

하.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언제까지 미룰까.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 오늘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 같은 이 두려움은 뭘까.


쪼옵-

수박 주스를 한 입 들이켠다.

읏. 단데. 뭐지. 시럽 다 빼달라고 했는데.

절반만 넣으신 건가, 아니면 수박 자체가 단 건가.

허나 알 방법이 없다. 여쭤봐도, 카페 사장님이 내게 거짓말을 하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타인에게 내 삶의 선택을 홀라당 맡겨버릴 수는 없다.


수박을 사러 가자.

인생 처음으로, 통수박에 도전해 보는 거다.

아, 수박을 썰려면 큰 칼이 필요한데. 그래, 까짓거 칼도 사보는 거다.

수박도 사고, 칼도 사고, 내 내공도 한번 이 김에 사보자.


오늘 저녁은, 냉동실에 얼려둔 화이트리에 식빵에 수박을 원 없이 먹어보는 거다.

에르메스 식빵에 진짜 찐 수빡.

그럼 내 인생도 언젠간 명품이 될 수 있겠지. 도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