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의 품질 보증
데이터 수집 및 통계 분석 분야에서는 '이례적 행운'이라는 항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측정할 수 있는 공정, 재료, 그리고 엄격한 오차 범위만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02-06' 시기, 즉 2002년 5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경상도 특정 공단에서 생산된 제품들의 데이터는 수십 년간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특별한 물건들도 아니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블록, 냉장고의 압축기, 혹은 작은 휴대전화 액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쉽게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통계적으로 예측되는 고장률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동시대 다른 모든 생산품보다 평균 8.2% 더 긴 수명을 보였고, 치명적인 기능 고장 발생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았습니다. 이 제품들은 마치 엔트로피의 법칙을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제조 공정의 숨겨진 혁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재료공학자들은 그 시기에 투입된 강철의 합금 비율을, 화학자들은 폴리머의 냉각수 온도를, 프로그래머들은 공정 제어 알고리즘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평범했습니다. 별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그 전후 3년과 완벽히 동일한 재료, 동일한 공정이었습니다. 데이터는 그저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 더 좋았다'고 말할 뿐, '왜'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2002년에 대학생이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북처럼 울리던 그 함성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그 공단 중 한 곳의 생산 관리자였습니다. 평생을 '수율'과 '공차'라는 단어와 함께 하시던 분이었지만, 그해 여름만큼은 기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동료들과 함께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갔던, 가슴이 터질세라 환호를 외치던 붉은 악마였습니다.
퇴직 후 아버지가 물려주신 차가 한 대 있습니다. 2002년 6월 18일 생산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 열렸던 바로 그날, 아버지의 공장에서 조립된 차량입니다. 아버지는 전설처럼 당시의 공장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기계조차도 우리 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라인이 멈추는 법이 없었지. 모든 게 매끄럽게, 기름칠이 아니라... 뭐랄까, 좋은 기운이 돌았던 것 같아."
그 차는 30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렸지만, 정비사는 엔진 소리만 듣고는 "상태가 너무 좋아서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차 같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차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 'G-02-06' 아카이브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공정 과정의 수치적인 데이터 대신, 역사적 사건들의 정성적인 데이터와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상관관계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품의 내구성 스파이크는 공장의 품질 관리 그래프나 장비 교체와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물론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모두 오차 범위 내의 차이였습니다. 오히려 2002년 월드컵의 경기 일정, 특히 대한민국의 승리 일자와 일치했습니다.
폴란드전 승리. 미국전 무승부. 포르투갈전 승리.
그리고 6월 18일, 안정환의 골든골.
그날은 데이터 그래프에서 가장 높이 솟은, 불가능에 가까운 봉우리였습니다. 마치 수만 개의 부품이 스스로 자가 치유라도 한 듯, 제품 불량률은 그날 하루 동안 거의 0에 수렴했습니다.
저는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데이터도 대조해 보았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국가적 재난과 집단적 불안감이 팽배했던 그 시기, 공장의 공정은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초기 불량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이 물질세계와 분리되어 있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의식이 하나의 강렬하고 순수한 감정 —공포나 분노가 아닌, 순수한 환희와 집단적 확신— 으로 동시에 수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거대한 '감정 동기화'의 실험실이었습니다.
엔지니어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지만, 그 역시 환호하는 군중의 일부였습니다. 용광로의 쇳물을 붓는 노동자는 방진 마스크 너머로 경기를 봤고,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을 검수하던 작업자는 라디오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을 들었습니다.
단순히 나사를 조이고, 용접을 한 것이 아니라 기쁨을 불어넣었습니다.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찰자 효과'의 극단적인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지극히 인간적인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라면 불안, 피로, 혹은 사소한 잡념으로 인해 발생했을 미세한 손 떨림이나 순간적인 부주의가, 그 시기에는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작업자의 신경계는 그들이 응원하던 선수들처럼 최고조로 예리해졌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공정 과정의 무작위적인 엔트로피의 침입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패였습니다. 작업자의 손이 평소보다 0.01밀리미터 더 정확하게 움직였다면, 그것은 그가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의심이나 불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집단적 확신이 물질의 무작위성을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품질 관리 변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아버지의 2002년식 차를 닦으며 생각합니다. 이 차는 단순히 강철과 플라스틱의 조합이 아니다. 이것은 그해 6월 18일, 아버지가 느꼈던, 그리고 아버지의 동료들이 느꼈던 순수한 환희의 물리적 증거다. 강철의 형태로 빚어진 2002년의 기억이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기술, 더 완벽한 AI를 통해 결함 없는 제품을 만들려 노력합니다. 우리는 공정에서 '인간'을 제거하려 합니다. 인간의 실수, 인간의 변덕, 인간의 감정을 말입니다.
하지만 2002년의 데이터는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변수를 제거하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제거해야 할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불안'과 '절망'일지도 모릅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2002년 6월에 생산된 물건들에는 무언가가 더 첨가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