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아사(餓死)
(주: 대상 K는 L-형 아미노산 기반 세계에서 D-형으로 존재가 역전됨. 이하 대상의 자가 기록.)
1일. 아침 7시. 배가 고프다. 이 감각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식탁에 앉는다. 식탁 위에는 완벽한 붉은 사과가 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든다. 중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사과의 무게도, 표면의 매끄러움도 기억과 일치한다. 나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치아가 과육을 파고드는 순간, 세계가 어긋난다. 그것은 '사과'의 맛이 아니다. 단맛은 쓴맛으로, 신맛은 떫은 금속성의 통증으로 치환된다. 내 혀의 미뢰가 이 사과의 분자 구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이것은 모래의 맛이다. 혹은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차가운 거울의 맛이다.¹ 나는 씹지 않고 삼킨다. 위장으로 내려간 사과는 소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물질이다. 내 몸은 사과를 '음식'이 아닌 '돌'로 인식한다. 나는 배가 고프다.
2일. 점심. 허기가 위벽을 긁는다. 나는 빵을 본다. 갓 구운 빵에서 김이 오른다. 그것은 갈색이고, 부드럽고, 고소한 향을 내야 한다. 나는 빵을 뜯어 입에 넣는다. 씹는다. 그것은 '빵'의 질감이 아니다. 젖은 종이 뭉치를 씹는 것 같다. 혹은 존재의 부재를 씹는 것 같다. 나의 위(胃)는 L-형(왼손잡이) 효소를 가지고 있다. 이 세계의 밀가루와 탄수화물은 D-형(오른손잡이) 구조다. 아니, 세계가 그대로이고 나만 뒤집혔다. 내가 D-형이다. 내가 이 세계의 유일한 오류다. 열쇠가 자물쇠 구멍에 들어간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는다.² 이가 맞지 않는다. 내 몸의 모든 효소가 이 세계의 영양소와 결합하기를 거부하며 헛돈다. 나는 끊임없이 먹고 있지만, 내 세포들은 비명을 지르며 말라간다. 나는 풍요 속의 진공 상태다. 나는 배가 고프다.
3일. 저녁. 현기증이 난다. 그녀가 퇴근하고 돌아온다. 그녀가 나를 안는다. 내 아내. 나의 세계. 그녀가 나에게 키스한다. 입술이 닿는다. 촉각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직후, 호흡이 섞이는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그녀의 냄새가 역겹다. 어제까지 나를 안도하게 했던 그녀의 살내음, 샴푸 향, 그 고유한 페로몬이 끔찍하게 변질되었다. 그녀는 썩은 오렌지 냄새가 난다. 혹은 불에 탄 플라스틱 냄새가 난다.³ 나의 후각 수용체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화학 신호가 내 뇌에서는 '독극물' 혹은 '경고'로 번역된다. 나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낸다.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서린다. 나는 해명할 수 없다. "당신 냄새가 잘못됐어."라고 말할 수 없다. 잘못된 건 그녀가 아니라 나의 좌표값이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한다. 나오는 것은 위산뿐이다. 위산은 여전히 시다. 그것만이 내 것이다.
5일. 일어서는 것이 힘들다. 근육이 스스로를 파먹기 시작했다.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나'는 오른손을 들고 있다. 거울 밖의 나는 왼손을 들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거울은 허상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거울 속의 세상이 '진짜'다. 거울 속의 사과만이 나에게 단맛을 줄 것이다. 거울 속의 그녀만이 나에게 향기를 줄 것이다. 나는 거울 유리를 긁는다.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이곳, L-형 세계에 감금된 유일한 D-형 수감자다. 밖으로 나간다. 사람들과 악수를 한다. 묘한 어긋남. 내 손아귀의 나선 방향과 그들의 나선 방향이 맞물리지 않는다. 나사는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여진다. 하지만 내 몸의 나사는 오른쪽으로 돌리면 풀린다. 나는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겉도는 부품이다.
7일. 시야가 흑백으로 점멸한다. 소리가 멀어진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음식이 가득하다. 스테이크, 샐러드, 와인. 그것들은 찬란하게 빛난다. 그것들은 나를 조롱한다. "먹어. 하지만 넌 살 수 없어." 세상은 완벽하다. 태양은 붉고, 중력은 적당하며, 산소는 폐를 채운다. (다행히 산소 분자는 카이랄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굶어 죽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기아는 '부재'의 비극이다. 나의 기아는 '불일치'의 비극이다. 나는 이 모든 풍요와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는 바로 그 죄목으로, 서서히 소멸한다. 내 몸은 점점 흐려진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만, 화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배가 고프다. 나는, 잘못 끼워진 단추다. 나는.⁵
1. 카이랄성(Chirality)과 미각: 맛을 인지하는 혀의 수용체는 분자의 3차원 구조(입체 이성질체)를 구분한다. 예를 들어, 카르본(Carvone) 분자는 L-형일 때 박하(Spearmint) 맛이 나지만, D-형(거울상)일 때는 캐러웨이(Caraway, 딜과 비슷함) 맛이 난다. K의 수용체가 D-형으로 역전되었으므로, L-형 사과는 '사과'로 인식되지 않는다.
2. 효소의 기질 특이성: 지구 생명체(L-형)의 효소(열쇠)는 L-형 아미노산(자물쇠)만 분해할 수 있다. K의 몸(D-형)은 L-형 세계의 음식을 섭취해도 영양분으로 분해/흡수할 수 없다.
3. 후각과 카이랄리티: 후각 수용체 역시 카이랄성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L-리모넨(Limonene)은 소나무 향, D-리모넨은 오렌지 향이 난다. K에게 '그녀의 체취'는 이제 완전히 다른 화학 물질의 조합으로 인식되며, 이는 뇌에서 '타인' 또는 '위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4. K의 비극은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가 존재하는 세계와 '완벽한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는 L-형 세계라는 '맥락'과 결합할 수 없는 존재론적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