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회색 정원사

회색 정원사

by ToB

사람들은 비극을 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의미 없는' 비극을 견디지 못한다.


고통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죽음에는 서사가 필요했다. 만약 어떤 남자가 일가족을 살해했다면, 대중은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이거나, 사회가 낳은 뒤틀린 괴물이기를 바랐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주인공처럼 고뇌했거나, 니체의 사상을 오독한 철학자이길 원했다. 그래야만 공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은 공포스럽지만, 서사화된 악은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


그래서 우리, '국가 서사 기록원'의 아키비스트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현실의 앙상한 뼈대에 살을 붙이고, 칙칙한 회색빛 사건에 붉은색과 검은색의 강렬한 필터를 입힌다. 우리는 정원사다. 다만 우리가 가꾸는 정원은 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라는 덩굴로 뒤덮인 묘지일 뿐이다.


나, 엘리안은 이 거대한 거짓말의 공장에 20년째 근속 중이다. 나는 나의 일이 일종의 복지라고 믿는다. 우리의 목표는 진실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척박하다는 사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새로운 의뢰가 떨어졌을 때, 기록원 전체가 들썩였다. 수감번호 704호. 언론이 '세기의 살인마', '심연의 설계자'라고 이름 붙인 자였다.


그는 도시 외곽의 낡은 빌라촌에서 무려 열두 명을 살해했다. 현장에는 어떠한 지문도, DNA 흔적도 남지 않았으며, 시신들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한 자세로 발견되었다. 대중은 열광했다. 그들은 704호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암살자이거나, 인류의 죄를 심판하려던 종교적 광신도일 것이라 추측했다.


인터넷에는 팬덤이 생겨났다. 범행 날짜가 특정 별자리의 주기와 일치한다는 분석 글이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704호에게서 '한니발 렉터'의 지성과 '조커'의 혼돈을 기대했다. 그들은 악이 낭만적이기를 갈망했다.


상부는 내게 704호의 '기억 원본'을 넘겼다. 임무는 간단했다. 704호의 뇌에서 추출한 시각 및 청각 정보를 바탕으로, 대중이 납득할 만한 '범죄 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기억의 공백을 독백으로 채우고, 지루한 대기 시간을 긴장감 넘치는 침묵으로 편집해야 했다.


"엘리안 수석, 기대가 큽니다. 이번 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되어야 해요. 시민들은 전율을 원합니다."


국장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작업실인 '편집실'로 들어갔다. 외부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마치 자궁처럼, 혹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접속 헤드기어를 썼다. 704호의 기억이, 그 날것의 시간이 내 신경망으로 흘러 들어올 준비를 마쳤다.


심호흡을 했다. 거대한 악을 마주할 시간이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천재성이나, 소름 끼치는 광기를 기대했다.


접속이 완료되자마자 느낀 첫 번째 감각은 '축축함'이었다.


곰팡이가 핀 벽지 냄새, 며칠 감지 않은 머리카락의 기름 냄새, 그리고 눅눅한 여름 장마철의 불쾌한 습기가 먼저 다가왔다.


704호의 시각 정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좁은 방 안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 앉아 있었다. 고서나 철학책, 정교한 살인 도구 따위는 없었다. 바닥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굴러다녔고, 텔레비전에서는 저급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무료한 노인이었다.


704호는 발가락 사이의 무좀을 긁고, 손톱의 때를 이빨로 잘라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사고의 흐름은 충격적일 정도로 단조로웠다.


'배고프다. 라면이 너무 짰나. 물 마셔야지. 아, 귀찮아. 옆집 개새끼가 또 짖네. 죽여버릴까. 아, 허리야.'


그게 전부였다.


범행을 저지르러 나가는 과정에는 어떤 비장미도 없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 센서 등이 고장 났다고 투덜거렸다.


첫 번째 살인의 순간을 재생했을 때, 나는 당혹감을 넘어선 허탈함을 느꼈다.


피해자는 길을 묻던 대학생이었다. 704호가 그를 공격한 이유는, 종교적 신념 같은 게 아니었다. 단지 학생이 멘 가방이 자신의 어깨를 툭 쳤고, 그 순간 704호가 느끼던 만성적인 소화불량이 짜증스럽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살인의 과정은 우아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 엉망진창이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 미끄러지는 발, 비겁한 욕설. 704호는 상대를 제압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변명을 늘어놓았다.


'네가 날 쳤잖아. 네가 나를 무시했잖아. 아, 팔 아파. 왜 안 죽는 거야. 짜증 나게.'


그의 악(惡)은 깊이가 없었다. 심연이 아니라, 물웅덩이였다. 아니, 너무 얕아서 발목조차 잠기지 않는 흙탕물 웅덩이. 거기에는 어떤 철학도, 미학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불쾌함을 타인에게 배설하려는 유아적인 충동과,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루한 회피만이 존재했다.


이것이 '실제의 악'이었다.


상상 속의 악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다양하지만,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롭고, 척박하며, 무엇보다 지루했다. 나는 하품이 나올 것 같은 지루함을 견디며 그 역겨운 영상을 지켜봐야 했다.


이대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대중은 이런 지질한 노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괴물을 원하지, 동네의 불쾌한 주정뱅이를 원하지 않는다. 편집 도구를 꺼내 들었다.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깔았다. 낮고 웅장한 첼로 선율을 입혀, 그의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고뇌에 찬 탄식으로 바꾸었다. 텔레비전 소리를 지우고, 대신 빗소리를 증폭시켜 누아르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무좀을 긁는 장면은 삭제하고, 대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는 장면의 시간을 늘려 '허무를 응시하는 살인마'의 이미지를 조조했다.


거짓말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회색 진흙을 빚어 검은 조각상을 만들고 있었다. 열한 번째 피해자까지의 기억을 편집했을 때, 거의 완벽한 '작품'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두 번째 기억, 마지막 살인의 순간에서 멈췄다.


열두 번째 피해자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704호는 골목길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인의 동기는 하찮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서 떨어진 사과가 704호의 발에 차였을 뿐이다. 704호는 씩씩거리며 흉기를 꺼내 들었다.


문제의 장면은 흉기로 복부를 찌른 직후에 발생했다.


보통의 경우, 피해자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도망치려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서사 기록원은 이 장면을 극대화하여 비극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여성은 달랐다.


치명상을 입은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704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고, 늙고 병든 육체는 살인이라는 격렬한 행위를 감당하지 못해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헐떡거렸다.


'아, 숨차. 죽겠네. 내가 죽겠어. 젠장.'


704호의 내면은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자신의 호흡 곤란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때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여성이 손을 뻗었다.


그녀가 704호의 얼굴을 할퀴거나, 흉기를 빼앗으려 할 것이라 예상했다. 또는 저주를 퍼부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704호의 떨리는 손등 위에, 아주 가볍게 내려앉았다.


제압하려는 것도, 공격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시키려고 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도, 눈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공황 상태에 빠진 살인마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공포는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투명한 '다정함'만이 있었다.


자신을 죽인 자가, 지금 이 순간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


그녀의 정신은 자신의 죽음을 초월하여, 타인의 현재적 고통에 반응했다. 본능적으로 그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마치 넘어진 아이를 일으키는 어머니처럼, 혹은 환자의 맥박을 짚는 의사처럼.


"... 천천히... 쉬세요."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손이 툭, 떨어졌다. 숨을 거두었다.


704호는 멍하니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흐르던 징징거리는 불평의 소음이, 난생처음으로 뚝 끊겼다. 그 짧은 정적. 704호조차 이해하지 못한, 그리고 나조차 해석할 수 없는 3초간의 정적만이 남았다.


나는 영상을 멈췄다.


그리곤 다시 재생했다.


여성의 손이 살인마의 손에 닿는다. "천천히 쉬세요." 손이 떨어진다.


이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의 편집 매뉴얼에는 이런 행동을 분류할 코드가 없었다. 이것은 '용서'라는 진부한 단어로 설명될 수 없었다. 용서는 가해자의 죄를 전제로 하고, 위계가 존재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도덕적 판단조차 건너뛴, 훨씬 더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선(善)이었다.


상상 속의 선은 도덕 교과서처럼 지루하고 예측 가능하다. 선한 사람은 악에 저항하거나, 정의를 외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의 선은...


이토록 뜬금없고, 비논리적이며,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난 20년간 만들어온 모든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순식간에 가짜로 만들어버렸다. 704호의 찌질한 악이 잿빛 곰팡이라면, 이 여성이 보여준 3초간의 선은 태양을 직시한 것처럼 눈을 멀게 만드는 섬광이었다.


매혹적이었다.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두려울 정도였다.


시스템 경고창이 떴다.


[서사 불일치 감지. 해당 구간은 맥락에 맞지 않습니다. 삭제를 권장합니다.]


AI는 정확했다. 이 장면은 내가 구축한 '704호: 심연의 설계자'라는 서사에 흠집을 낸다. 냉혹한 살인마가 피해자의 위로를 받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피해자가 보여준 그 행동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는커녕,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불쾌감과 혼란을 줄 것이다.


국장의 호출이 왔다.


"엘리안, 작업은 끝났나? 오늘 저녁 메인 뉴스에 송출해야 해."


떨리는 손으로 콘솔을 잡았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 AI의 권고대로 이 3초를 삭제한다. 704호는 끝까지 잔혹하고 고독한 악마로 남는다. 대중은 분노하고, 또 열광하며, 자신들의 안전한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할 것이다. 세상은 질서를 유지한다.


둘. 원본을 그대로 내보낸다. 704호의 찌질한 런닝셔츠, 무좀을 긁는 손가락, 그리고 그 손을 잡아준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을. 어떤 배경음악도, 어떤 필터도 없이.


나는 작업실을 서성였다.


왜 우리는 악을 낭만화하는가? 왜 우리는 악당에게 서사를 부여하려 안달하는가?


우리가 '평범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이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 내면의 악 또한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괴물'이라는 다른 종족으로 격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저 여자는 달랐다.


그녀는 악을 괴물로 보지 않았다. 자신을 찌른 남자를, 그저 '숨을 헐떡이는 나약한 생명체'로 보았다. 중력과도 같은 인과율(네가 나를 찔렀으니 나는 너를 증오한다)을 거스르고, 설명 불가능한 은총의 영역으로 도약했다.


이것이 진짜다.


내가 만들어온 모든 드라마는 쓰레기였다.


지루한 악과, 경이로운 선. 이것이 세계의 실체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704호의 '다크 히어로' 서사 트랙을 전부 선택했다. 웅장한 음악, 고독한 독백, 어두운 조명.


그리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가 깜빡이며, 날것 그대로의 영상이 타임라인에 올라왔다.


습기 찬 방, 곰팡이 냄새가 날 것 같은 화질, 헐떡이는 노인의 추한 숨소리. 그리고 그 모든 권태와 추함을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찢어발기는 여성의 손길.


제목을 수정했다.


<심연의 설계자>에서, <수감번호 704번 사건 기록 원본>으로.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내 경력은 끝날 것이다. 대중은 실망할 것이고, 국가는 나를 해고할 것이다. 그들은 '재미없는 진실'을 유포한 죄를 물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짜 '정원사'가 된 기분을 느꼈다.


잡초를 꽃이라 속이는 정원사가 아니라, 잡초 밭에 숨겨진 보석 같은 씨앗 하나를 발견해 낸 진짜 정원사.


버튼을 눌렀다.


방송이 나간 후, 도시는 한동안 기묘한 침묵에 잠겼다. 사람들은 그저 텔레비전을 끄고,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본 것은 악마가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짜증스러운 노인이었다. 그리고 비극의 히로인도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존엄을 보여준, 너무나도 평범한 아줌마였다.


인터넷 댓글창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뭐야, 저게 끝이야?"


"저 살인마 그냥 개찐따였네."


"근데... 마지막에 아줌마가 왜 손을 잡아준 거야?"


"모르겠어. 근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


환상은 깨졌다. 낭만적인 악의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 척박하고 지루한 현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폐허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너무나 작고 찰나였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다.


나는 해고되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짐을 챙겨 기록원을 나오는 길, 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색빛이었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날씨는 춥고 우중충했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옆에는 낡은 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피곤해 보였고, 인상은 험상궂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분류하고, 인생에 어떤 비극적 서사가 있을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는 그저 피곤한 회사원일 것이고, 집에 가면 발을 씻고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그의 삶은 평범하고 지루할 것이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그때, 바람이 불어 남자의 모자가 벗겨졌다. 모자는 도로 쪽으로 굴러갔다.


남자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욕설을 뱉으려던 찰나,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선에서 재빨리 발을 뻗어 모자를 밟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주워 남자에게 건넸다.


"여기요."


아무런 의도도 없는 행동. 대단한 희생도, 위대한 봉사도 아닌 행동.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어... 고마워요."라고 웅얼거렸다.


저 여학생의 행동에는 이유가 없었다. 나의 이익, 너의 손해, 사회적 계약... 그 모든 인과 관계의 사슬 밖에서 일어난 작은 스파크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었다.


세상은 거대한 권태의 캔버스 위에, 아주 가끔, 하지만 분명하게 찍히는 경이로운 물감 자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코트 깃을 세우고 거리로 걸어 나갔다.


상상 속의 정원은 사라졌지만, 실제의 땅이 내 발아래에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