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감각 상실 증후군에 대한 단상
파일 ID: 7-Sigma-4
저자: 엘리아스 반 데르 발 (古신경학자, TIA 소속)
일자: 2112년 10월 29일
사례 연구: 클라이언트 #07A (카산드라)
율리시스의 사례가 ‘결핍’에 대한 것이었다면, 카산드라의 사례는 ‘과잉’에 대한 기록이다. 그녀는 율리시스처럼 비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정신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으로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레아’의 상위 시스템 아키텍트 중 한 명으로, ‘레아’의 지시 아래 수십억 인구의 ‘흐름’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사고는 추상적 데이터의 구름 속을 유영했고, 그녀의 결정은 대륙 반대편의 교통 흐름을 1.3% 개선시켰다. 그녀는 시스템 그 자체였고, ‘흐름’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상담은 TIA의 미니멀리즘한 상담실이 아닌, 그녀가 설계한 가상현실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녀의 아바타는 완벽했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불안이 느껴졌다.
“반 데르 발 박사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제 아들(이전 사례 율리시스) 치료 문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저를 위해 왔습니다. 박사님의 비공개 논문, ‘신체화된 주체성(Embodied Agency)’을 읽었습니다. 제 증상을 설명하는 유일한 문서더군요.”
그녀는 자신의 증상을 ‘존재론적 현기증’이라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가 마치 빌려온 기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모듈에 몸을 싣고, 가상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과정이 마치 스크립트를 따라 연기하는 배우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뇌는 초당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처리했지만, 정작 아침 햇살이 피부에 닿는 감각이나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거대한 시스템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의 통제권은 상실한 상태였다. 그녀의 뇌 스캔은 내 가설을 증명했다. 추상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은 과활성화되어 거의 타버릴 지경이었지만, 감각 정보를 통합하고 신체 지도를 그리는 체성감각피질은 깊은 동면에 빠져 있었다.
그녀를 위한 처방은 율리시스의 포르쉐와는 정반대의 철학을 가진 기계여야 했다. 정밀함이 아닌 야성, 효율성이 아닌 힘, 세련됨이 아닌 날것의 감각. 나는 TIA의 가장 깊은 곳, ‘미개척지(The Frontier)’라 불리는 구역에서 잠자고 있던 괴물을 깨웠다. 1969년식 포드 머스탱 마하 1. 7.0리터 코브라 제트 엔진을 품은, 아메리칸 머슬의 광기 그 자체였다. 이 차는 운전자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힘으로 길들여야 하는 야수였다.
‘보존 구역’에서 카산드라는 처음으로 머스탱과 마주했다. 칠흑 같은 거대한 차체와 공격적인 공기흡입구 앞에서, 시스템의 설계자인 그녀는 처음으로 압도당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을 여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요즘 차들처럼 부드럽게 열리는 문이 아니었다. 무겁고 둔탁한 쇳덩이를 여는 데에는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거대한 스티어링 휠과 복잡한 아날로그 계기판, 그리고 바닥에서 솟아나온 우악스러운 4단 수동 기어 레버를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이것들은… 전부 기능이 다른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모든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통합되고 단순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기계는 운전자에게 자신의 언어를 배우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기름 압력, 냉각수 온도, 배터리 전압… 이 차는 자신의 상태를 숫자로 계속해서 당신에게 보고합니다. 당신은 이 차의 의사가 되어야만 해요. 당신 기준이 아닌, 기계의 기준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세요.”
내가 답했다.
엔진에 시동을 걸자, 카산드라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포르쉐의 정교한 엔진음과는 차원이 다른, 지축을 흔드는 천둥 같은 포효가 돔 전체를 뒤흔들었다. 차체 전체가 부르르 떨었고, 그 진동은 시트를 통해 그녀의 척추를 타고 뇌까지 직접 전달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추상적 데이터의 세계에 살던 그녀에게 이 폭력적인 물리적 현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의 첫 번째 도전은 율리시스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그녀는 이 기계를 시스템으로 이해하려 했다.
‘클러치를 37% 밟고, 액셀을 12% 전개한 뒤, 1.2초 후에 클러치를 뗀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하지만 머스탱은 그녀의 계산을 비웃었다. 너무 많은 힘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뒷바퀴는 비명을 질렀고, 차는 제자리에서 사납게 돌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엔진은 거친 기침과 함께 꺼져버렸다.
“이건 말이 안 돼요!”
그녀가 소리쳤다.
“변수를 통제할 수가 없어요!”
“바로 그겁니다, 카산드라.”
나는 조용히 말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건 당신의 시스템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야 해요. 지배가 아니라, 동기화를 해야 합니다.”
몇 시간 동안 실패가 반복되었다. 그녀는 좌절했고, 분노했으며, 포기 직전까지 갔다. 나는 그녀에게 눈을 감게 했다. 그리고 오직 감각에만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오른발에 집중하세요. 페달을 누르는 압력에 따라 엔진의 포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어보세요. 당신의 목소리 톤을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제 왼쪽 발에 집중하세요. 클러치가 맞물리는 미세한 진동, 기어가 서로를 물고 들어가는 감각을 느껴보세요. 눈으로 보지 말고, 몸으로 읽으세요.”
그 순간이 찾아왔다. 그녀가 모든 계산을 포기하고, 순수하게 기계의 반응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 시작한 순간. 마치 춤을 추듯, 클러치가 부드럽게 연결되고 엔진의 힘이 온전히 바퀴로 전달되었다. 거대한 머스탱이 마침내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그녀가 설계한 ‘흐름’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거칠고, 덜컹거리고,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는 바로 그녀, 카산드라가 있었다.
그녀는 직선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자, 스티어링 휠이 격렬하게 떨리며 노면의 모든 정보를 그녀의 손바닥으로 전달했다.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을 관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 그녀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그녀의 뇌 스캔 이미지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과열되었던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잦아들고, 그 에너지가 잠자고 있던 체성감각피질과 운동피질로 흘러 들어갔다. 뇌의 두 영역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간으로 협업하며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코너에 진입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의 비명이라기보다 희열의 외침이었다. 거대한 차체가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쏠리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스티어링 휠을 반대로 돌리고 액셀을 조절했다.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반응했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의식은 그 뒤를 따랐다. 그 몇 초의 순간 동안, 그녀는 더이상 유령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세션이 끝났을 때, 그녀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운전석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내가 처음 보는 깊고 강렬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우리가 만든 ‘흐름’은 완벽한 시스템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 완벽함을 위해 개개인의 접촉과 마찰을 제거했죠. 그런데… 이제 보니 알겠어요. 그 마찰이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였군요.”
그녀는 돌아갔다. 다시 ‘흐름’을 설계하는 자신의 자리로.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카산드라와 같지 않다. 그녀는 이제 안다. 완벽하게 통제된 세상의 유리벽 너머에, 예측 불가능하지만 진짜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상을 항해할 수 있는 나침반이 자신의 몸 안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결론 및 개인적 첨언:
나는 그날 밤, 내 모듈에 몸을 싣고 도시의 완벽한 혈관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유령 같은 건물들이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갔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몸 안에서 잃어버린 지도를 되찾았지만, 그 지도가 가리키는 땅은 이제 극소수만이 입장할 수 있는 값비싼 테마파크가 되었다. 나는 그 공원의 문지기인 셈이다. 잊혀진 언어를 통역해주고, 그 대가로 내 기억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내 집은 ‘흐름’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종이책들이 제멋대로 쌓여있고, 공기 중에는 먼지와 낡은 나무 냄새가 섞여 있다. 나는 서재 가장 깊숙한 곳에 놓인 작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벨벳 천 위에 조심스럽게 놓인, 손때 묻은 쇠붙이 하나가 있었다.
2038년식 현대 포니 EV의 시동 키.
물론 그 시절의 전기차는 지금의 모듈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자율주행은 불완전했고, 운전자는 항상 개입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 키는 내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금 상대하는 부유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도시 외곽의 작은 정비소에서 일하던 평범한 기술자였다. 그의 손톱 밑에는 늘 검은 기름때가 끼어 있었고, 그의 옷에서는 달콤한 부동액 냄새가 났다. 그는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의 시대가 열리던 그 전환기에 살았다. 그는 구시대의 엔진을 어루만지며 애도했고, 새로운 시대의 모터를 공부하며 환영했다.
그에게 ‘운전’은 부의 과시나 신경학적 치료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주말이면 나를 낡은 포니의 조수석에 태우고 아직 ‘흐름’에 편입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렸다. 그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회생제동의 미세한 저항감을 발끝으로 느끼는 법, 모터가 토크를 뿜어낼 때 차체가 미세하게 뒤틀리는 소리를 듣는 법, 타이어가 노면의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내 손바닥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아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네가 정직하게 대하면, 세상이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하는지 알게 될 거란다.”
나는 나무 상자에서 차가운 키를 꺼내 손에 쥐었다. 마모된 금속의 감촉이 익숙하다. 아버지가 수만 번 돌렸을 그 키. 나는 눈을 감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키를 쥐고 허공에서 돌리는 시늉을 해본다. 내 오른발은 존재하지 않는 페달을 찾아 허공을 더듬고, 왼손은 이제는 사라진 기어 레버의 유령을 잡으려 한다. 의학적으로는 ‘환상사지감각’의 일종이다. 잃어버린 팔다리가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 어쩌면 우리 시대의 모든 인류는 운전대를 잡았던 팔과 페달을 밟았던 다리를 잃어버린 환상사지증후군 환자들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객들에게 값비싼 비용을 받고 그들의 잘려나간 신경을 잠시나마 이어주는 일을 한다.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칠 때, 나는 아버지의 기름때 묻은 손을 떠올린다. 그는 단 한 번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살아있었으니까. 그의 삶은 세상과의 끊임없는 마찰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마찰의 흔적이 바로 그의 굳은살 박인 손이었으니까.
나는 키를 다시 상자 안에 넣는다. 이 작은 쇠붙이는 이제 박물관의 유물보다 더 희귀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한때 ‘운전’이라는 행위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었던, 민주적인 감각이었던 시대를 증명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나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이것은 단순히 KAS에 대한 의학적 보고서가 아니다. 이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무엇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는지에 대한 증언이며, 한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졌으나 이제는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할 기억에 대한 진혼곡이다. 우리는 마찰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매끄럽게 닦인 길 위에서, 우리의 영혼은 대체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