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운동감각 상실 증후군에 대한 단상 2_0

운동감각 상실 증후군에 대한 단상

by ToB

서론:


나의 하루는 언제나 차를 우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자 저항이다. 내 거주 모듈의 공기는 완벽하게 정화되어 어떠한 입자도, 냄새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내 작은 부엌 공간에 윈난성에서 온 낡은 찻잎 덩어리의 흙냄새와 발효된 시간의 향기가 가득 퍼진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자사호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잔과 호를 데운다. 모든 것이 즉각적이고 자동화된 이 세상에서, 나는 굳이 시간을 들여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그 온도가 찻잎의 영혼을 깨우기에 적절한 98℃가 될 때까지 지켜본다. 물줄기가 찻잎 위로 쏟아지며, 잠자던 잎들이 서서히 풀어진다. 찻잎이 물을 머금고 펴지는 몇 분의 시간 동안, 나는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으로는 ‘흐름(The Flow)’이 있다. 수백만 개의 하얀 모듈이 유령처럼, 소리 없이, 서로의 간격을 완벽하게 유지하며 도시의 동맥을 따라 미끄러진다.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며, 절대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저 흐름 속에는 서두름도, 분노도, 실수도 없다. 내 아버지가 ‘인간적인 혼돈’이라 불렀던 그 모든 것이 제거된 풍경. 저 매끄러운 흐름 속을 떠다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찻물이 알맞게 우러나면, 나는 그것을 작은 찻잔에 따른다. 짙은 갈색의 찻물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본다. 그의 손톱 밑에 박혀 있던 검은 기름때, 낡은 작업복에서 풍기던 금속과 땀 냄새, 그리고 그가 렌치로 볼트를 조일 때 들리던, 세상의 이음새를 맞추는 듯한 명료한 소리. 아버지는 내게 기계의 언어를 가르쳐주셨다. 모든 소음에는 의미가 있고, 모든 진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모든 저항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 세상은 저항이 없는 곳이 되었다. 마찰은 비효율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소음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운동감각 상실 증후군(Kinetic Atrophy Syndrome, KA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침묵을 얻었다. 뇌가 더 이상 세상과 직접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상태. 영혼이 매끄러운 유리 상자 안에 갇혀버린 병.


나는 그 병을 치료하는 의사다. 아니, 치료라는 말은 오만이다. 나는 그저 환자에게 잃어버린 감각의 기억을 잠시 빌려주는 사람에 가깝다. 과거의 유령을 불러내, 현재의 공허함과 잠시나마 싸우게 만드는 주술사다.


딩.


부드러운 디지털 알림음이 내 명상을 깨뜨린다. 오늘의 의뢰인이 TIA(Temporal Inertia Archives)의 게이트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나는 마지막 찻물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찻잎의 쓴맛과 흙내음이 혀뿌리를 감싼다. 이 감각. 이 저항감. 이것이 오늘 내가 내 의뢰인에게 선물해야 할 세상의 전부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선다. 차를 우리던 ‘나’는 사라지고, 古신경학자 ‘엘리아스 반 데르 발’이라는 가면을 쓴다. 이제 곧 나는 한 사람의 뇌가 잊고 있던 우주와 다시 연결되는 경이롭고도 슬픈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영혼에게는 구원이겠지만, 이 시대 전체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장례식에 바치는 뒤늦은 조가(弔歌)와도 같을 터였다.

이전 11화SF 단편 - 운동감각 상실 증후군에 대한 단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