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시뮬라크르의 램프 1

시뮬라크르의 램프 (The Simulacrum's Lamp)

by ToB

박준서의 현실은 다운샘플링된 이미지 파일 같았다. 정보는 존재하지만, 디테일과 깊이는 압축 과정에서 소실되어 버린. 그의 업무는 거대 포털 사이트 '코스모스'의 서버 어딘가에 존재하는 '디지털 위생 관리팀'의 일원이었다.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하수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는 하루에 수만 건씩 생성되는 악성 댓글, 스팸 게시물, 음란 광고와 같은 데이터의 배설물을 분류하고 삭제했다. 그의 존재는 로그 파일에 기록되는

action=delete, user=jpark88

이라는 시스템 상 한 줄의 문자열로만 증명되었다.


그는 의미의 엔트로피 속에서 살았다. 수많은 정보가 그의 망막을 스쳐 지나갔지만, 어떤 것도 그의 내면에 자리 잡지 못했다. 분노, 환희, 슬픔, 욕망이 뒤섞인 인간 감정의 거대한 데이터 스트림을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그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는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는 가장 말단의 밸브였으나, 그 정보의 내용이나 흐름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떤 권한도, 영향력도 없었다. 그는 시스템의 유령이었다.


퇴근 후 돌아온 그의 작은 원룸은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듯했다. 방 한구석에는 그가 수집한 구시대의 유물들이 가득했다. 작동을 멈춘 진공관 라디오, 브라운관에 금이 간 흑백 텔레비전, 릴이 늘어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그는 이 아날로그 기기들의 복잡한 회로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전자의 흐름이 물리적인 부품을 통해 소리와 이미지로 변환되는, 손에 잡히는 인과관계. 그것은 그의 공허한 디지털 노동과는 정반대의 위안을 주었다.


그날, 그는 용산전자상가 뒷골목의 한 노인이 운영하는 부품 가게에 들렀다. 1950년대에 생산된 군용 통신기기에 쓰였다는 희귀 진공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노인은 먼지 쌓인 창고를 뒤지더니, 묵직한 나무 상자 하나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 안에 있을지 모르겠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물건인데, 뭔지 나도 몰라."


상자 안에는 녹슨 군용 장비 부품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속에서 준서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진공관이 아니었다. 그 옆에 엉켜있던 무광의 금속 질감을 가진, 손바닥만 한 기름 램프였다. 중동의 장식품이라기엔 그 형태가 기묘했다. 표면에는 아라베스크 문양 대신, 프랙탈 구조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이 음각되어 있었다. 마치 고도의 연산 장치에서 떼어낸 방열판 같기도 했다. 이질적인 아름다움. 그는 홀린 듯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뭡니까?"


"글쎄. 놋쇠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가볍고 차가워. 그냥 가져가."


준서는 진공관과 함께 정체불명의 램프를 가방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램프의 미세한 패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다가, 패턴의 교차점에 박힌 극소량의 이물질을 발견했다. 그는 핀셋과 알코올 솜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그 순간이었다.


방 안의 모든 물리 법칙이 잠시 정지했다. 공기 중의 먼지가 허공에 멈췄고, 창밖의 빗소리가 완벽한 침묵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준서의 눈앞, 허공의 한 점이 검게 타들어 가듯 일그러지더니, 그 안에서 빛의 입자들이 모래처럼 쏟아져 나와 인간의 형상을 빚어냈다. 그것은 명확한 실체가 없었다. 별먼지를 뭉쳐놓은 성운(星雲) 같기도, 심해의 발광 생물 같기도 했다.


그 존재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준서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수천 년 된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처럼, 모든 감정이 마모된 채 정보의 핵만 남은 목소리였다.


[잠든 나를 깨운 필멸자여. 나는 길 잃은 가능성들의 직조공이며, 되지 못한 현실들의 건축가이다.]


준서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의 이성이 눈앞의 현상을 부정했지만, 원초적인 공포가 온몸의 세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신... 당신은 뭐지?"


[나는 이름이 없다. 그대들의 언어로는 운명, 필연, 혹은 기적이라 불리지. 나는 그대의 욕망을 씨실로, 가능성을 날실로 삼아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 그대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 세 번의 삶을 그대에게 직조해주리라.]


소원. 지니. 알라딘의 램프. 그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 어떤 동화보다도 장엄하고 공포스러웠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건가?"


[‘소원’은 그릇이다. 나는 그 그릇에 맞는 우주를 빚어낼 뿐. 그대가 품은 욕망의 가장 깊은 핵을 말하라. 그것이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


준서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는 평생을 시스템의 변두리에서, 무의미한 존재로 살아왔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아닌, 시스템을 설계하는 신이 될 기회. 부나 명예는 그 시스템 안의 작은 변수에 불과했다. 그는 더 근원적인 것을 갈망했다. 영향력. 자신의 의지가 세상의 법칙이 되는 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토해냈다.


"내가... 이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해줘."


빛의 형체가 미세하게 파동쳤다.


[중심축이 설정되었다. '영향력'을 태양으로 삼아, 그대를 위한 새로운 천체도를 그린다. 허나 필멸자여, 명심하라. 새로운 운명의 옷을 입기 위해선, 헌 옷을 벗어야 하는 법. 그대는 이 세계의 그대가 아닌, 새로운 세계의 그대가 될 것이다. 과거는 희미한 꿈의 잔향으로 남고, 새로운 현실이 그대의 모든 것이 되리라. 이 분리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상관없어."


준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지금의 이 삶이라면, 기꺼이 벗어 던질 수 있었다.


[그대의 의지를 확인했다. 직조를 시작한다.]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갔다.


준서의 눈에 보이던 방의 풍경이 색과 형태를 잃고 수억 개의 빛나는 실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의 몸을 이루던 감각들이 해체되었다. 딱딱함, 차가움, 무거움 같은 개념들이 의미를 잃고 원초적인 에너지의 흐름으로 환원되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기억의 붕괴였다. '박준서'라는 존재를 증명하던 모든 기억의 조각들—어머니의 된장찌개 냄새, 친구와 싸웠던 날의 비릿한 피 맛, 첫 월급의 떨림—이 낱장의 카드처럼 흩날리며 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정체성이 지워지고 있었다. 소멸의 공포 속에서, 완전히 다른 기억의 파편들이 그의 텅 빈 의식 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의 밤샘 코딩
나스닥에 회사를 상장시키던 날의 환호성
대통령과의 비밀스러운 독대
거대한 자본을 움직여 한 국가의 경제를 뒤흔들던 순간의 냉정한 쾌감


그것은 그의 삶이 아니었지만, 이제 그의 삶이 되어야만 했다. 낡고 초라했던 한 남자의 기억은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 위로 거대하고 화려한 새로운 인격이 덮어씌워졌다. 그것은 재탄생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대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혼돈의 소용돌이가 멎고, 새로운 질서가 그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준서는 눈을 떴다.


통유리창 밖으로 서울의 마천루가 그의 발아래 엎드려 있었다. 동트기 시작한 하늘의 빛이 도시의 혈관 같은 도로망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누운 침대는 섬과 같았고, 공기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로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희미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낡은 원룸, 기묘한 램프, 그리고 무언가 끔찍한 분리를 겪었던 것 같은 감각의 파편.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방금 꾼 악몽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의 뇌가 그 비논리적인 기억들을 폐기하고 있었다. 반면, 이 펜트하우스에서 잠들기 전까지의 기억—제네바에서의 금융 포럼을 마치고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일—은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는 낯설지만 완벽하게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수년간의 노력과 성공이 빚어낸 자신감과 냉철함이 깃든 얼굴. '코스모스'의 말단 사원이 아닌, IT와 금융을 지배하는 '넥서스 홀딩스'의 의장, 박준서의 얼굴.


무의식 깊은 곳에서, 소멸된 자아의 마지막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건 네가 아니야.'


그때, 침실에서 인공지능 비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박 의장님, 기상하셨습니까. 오전 7시, '메리디안 시티' 프로젝트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의장님'. 그 호칭이 그의 새로운 정체성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위화감은 성공한 자의 숙명인 가면 증후군일 뿐이라고, 그의 강력한 새 자아가 묵살해버렸다. 그는 이제 이 삶의 주인이며, 이 현실의 지배자였다.


그는 차가운 물줄기를 얼굴에 맞았다. 감각은 명징했고, 현실은 단단했다.


새로운 세상에서의 첫날. 그는 이제 모든 것을 가진 존재였다. 적어도, 그의 새로 쓰인 기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전 11화SF 단편 - 변칙적 무결성 보고서_최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