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시뮬라크르의 램프 2

시뮬라크르의 램프 (The Simulacrum's Lamp)

by ToB

기자회견장의 공기는 수천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이온화되는 듯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끝없는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탐욕스러운 벌떼의 날갯짓처럼 윙윙거렸다. 과거의 박준서였다면 이 압박감 속에서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졸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상 위에 선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뇌는 멀티코어 프로세서처럼 작동했다. 각 기자들의 소속과 성향, 질문의 숨은 의도, 자신의 답변이 불러올 주가의 변동률과 여론의 향방까지, 모든 변수가 실시간으로 계산되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논리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되었다. 그는 미소와 단호한 표정을 적절히 섞어가며 군중을 지휘했고, 복잡했던 '메리디안 시티' 프로젝트를 대중이 열광하는 위대한 서사로 바꾸어 놓았다. 기자회견이 끝났을 때,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이 세계의 왕임을 직감했다.


이어진 몇 달은 신과 같은 권능을 휘두르는 나날이었다. 그의 손짓 하나에 돈의 흐름이 바뀌었고, 그의 말 한마디에 법안이 수정되었다. 그는 버려진 항구 도시에 최첨단 데이터 센터를 건립했고, 차세대 인공지능 연구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세상은 그의 비전에 열광했고, 그의 이름 '박준서'는 혁신과 부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는 권력의 단맛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몰았고, 대륙을 넘나들며 최고급 요리를 맛봤다. 그를 선망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새로운 기억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그가 노력해서 얻어낸, 그의 삶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코딩된 프로그램에도 버그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의 경우, 버그는 깊은 무의식 속에 격리된 채 삭제되지 않은 '유령'의 데이터였다.


균열은 아주 사소한 감각의 불일치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저녁, VVIP들만 참석하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시식회에서였다. 메인 요리로 세계 최고가라는 알바산 백송로버섯(트러플)이 듬뿍 갈려 올라간 파스타가 나왔다. 그의 새로운 기억은 이 진귀한 향과 맛을 '최고의 별미'로 저장하고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포크를 놀려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그의 혀뿌리를 타고 끔찍한 역겨움이 치솟았다. 흙냄새와 가스가 뒤섞인 듯한 역한 향. 그것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역질을 유발했다. 간신히 표정을 관리하며 음식을 삼켰지만, 위장은 뒤틀리는 듯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나'는 이 음식을 좋아하는데, 왜 '내 몸'은 이것을 독처럼 거부하는가? 그것은 마치 격리된 유령—평생 버섯이라면 질색했던 가난한 박준서—이 미각이라는 원초적 감각을 통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한 신호였다.


두 번째 균열은 시각 정보에서 비롯되었다. 거대한 미디어 월로 도배된 그의 집무실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승인한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는 낡은 상가 건물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 간판조차 희미한 작은 전자부품 가게가 화면에 잡혔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이 이유 없이 세차게 뛰었다.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왜? 그곳은 그저 수많은 철거 대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먼지 쌓인 진열대와 인두기 냄새, 구부정한 허리의 주인이 보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여 모니터 앞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새로운 자아는 이 감정의 출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치부할 뿐이었다.


불협화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새로운 가족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였다. 야심 많은 아버지는 그의 후광을 이용해 정계 진출을 노렸고, 사치스러운 어머니는 그의 법인카드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했다. 기억 속의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생신에 값비싼 보석 대신 소박한 난초 화분을 선물했다. 유령의 기억 속, 그의 진짜 어머니가 난초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행동에 싸늘하게 굳어버린 '가짜'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과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성공한 사업가 박준서의 꿈이 아닌, 잊힌 박준서의 꿈. 좁은 원룸,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음악, 창밖의 잿빛 하늘. 그 꿈속에서 그는 지독하게 외로웠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꿈에서 깨어 광활한 펜트하우스의 침대에 홀로 누워 있을 때면, 그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아니라, 그저 금테를 두른 조종석에 앉아 있는 승객일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선한 의도로, 자신의 막대한 자본을 이용해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그의 곁을 지키던 충직한 비서실장 강 여사는 평소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운 채 차갑게 말했다.


"의장님, 그 사업은 '위원회'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습니다."


'위원회'는 그의 새로운 기억 속에도 희미하게만 존재하던 집단이었다.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그림자 속의 원로들. 그들은 박준서라는 젊고 유능한 인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가장 효율적인 '대리인'으로 선택하고 이 자리에 앉혔던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위원회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유효한, 잘 짜인 각본이었다.


"내가 내 돈으로 하겠다는데, 그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강 여사는 아무 말 없이 태블릿 PC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박준서 의장'의 탈세 혐의, 내밀한 사생활이 담긴 도촬 사진, 심지어는 그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의 조작된 증거 파일까지 들어있었다.


"의장님께서는 완벽하지 않으십니다. 위원회는 의장님을 이 자리에 앉혔고, 또 언제든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의장님의 역할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준서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왕이 아니었다. 가장 화려한 목줄을 찬 개에 불과했다. 그의 펜트하우스는 거대한 새장이었고, 세상의 환호는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영향력은 조금도 없었다. 첫 번째 소원으로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거대한 감옥이었다.


절망이 그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갔다. 그는 매일 밤 술에 취해 잠들었고, 약물의 힘을 빌려 낮 시간을 버텼다. 유령의 속삭임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원회는 멋대로 날뛰려는 그에게 확실한 경고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저녁 뉴스 시간, 그는 무심코 TV를 보다가 화면에 나온 한 얼굴 앞에서 얼어붙었다. 앳되고 선한 인상의 젊은 여성. 시골 초등학교 교사라는 그녀는, 아동 학대라는 끔찍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피해 아동 부모들의 격렬한 인터뷰와 자극적인 자막이 화면을 뒤덮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몰랐다. 그의 새로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그의 영혼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박. 서. 연.


유령의 기억 속, 그의 유일한 피붙이.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진짜 여동생이었다.


그는 온몸을 떨며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다. 너무나도 조악하고 허술한 음모였다. 위원회가 언론사와 몇몇 학부모를 매수해 벌인 짓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감히 우리에게 반항하면, 네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너의 진짜 뿌리까지 뽑아버리겠다.'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졌다. 억압되었던 유령의 기억이 댐이 무너지듯 쏟아져 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떡볶이를 나눠 먹던 기억,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려던 자신을 붙잡고 울던 동생의 얼굴, 그녀가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 함께 기뻐하던 순간. 그 모든 진짜 기억들이 거짓된 기억의 성벽을 부수고 그의 의식을 점령했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따위 부와 명예가 아니었다. 바로 저 사람,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동생의 저 웃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 가짜 세계의 영향력이 진짜 세계의 소중한 사람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는 펜트하우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가 '수집한 기묘한 골동품'으로 분류해 두었던 낡은 램프가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램프를 꺼내 들고 소매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와! 당장 나오란 말이야, 이 사기꾼아!"


빛의 형체가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은 더 이상 신비롭거나 경이롭지 않았다. 그저 끔찍한 재앙의 근원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준서는 절규했다.


"이 모든 걸 되돌려놔! 이건 내가 원했던 게 아니야! 이 끔찍한 감옥을 끝내줘! 제발... 그냥 원래의 나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박준서로 돌아가게 해 줘!"


그는 두 번째 소원을 빌었다.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지워달라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신비로운 은유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얼음처럼 차가운 정보의 나열이 그의 뇌를 파고들었다.


[사용자의 두 번째 요청, '현행 인스턴스의 즉각적 종료 및 베이스라인 현실로의 복귀'가 접수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냥 내 소원을 취소해 달란 말이야!"


[사용자의 어휘에 오류가 있습니다. '취소'는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프라임 리얼리티(Prime Reality), 즉 당신의 원본 현실은 단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요청은 현실 개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용자의 의식을 기반으로 렌더링 된, 완벽하게 격리된 체험형 시뮬레이션의 실행이었습니다.]


시뮬레이션. 렌더링. 그 단어들이 준서의 머릿속에 박혔다.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조건값을 가진 가상 세계를 '체험'했을 뿐입니다. 그 안에서의 모든 경험, 감각, 기억은 실재와 구분 불가능하도록 양자 레벨에서 시뮬레이션되었지만, 그것은 당신의 의식에만 존재하는 닫힌 세계였습니다. 이제 계약 조건에 따라, 인스턴스 1/3을 종료합니다.]


준서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고통, 그의 절망, 동생을 향한 죄책감. 그 모든 것이 진짜라고 믿었던 감정들이, 결국은 잘 짜인 프로그램의 일부였다는 말인가? 이야기 속 위대한 마법사에게 속은 줄 알았지만, 그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비디오 게임의 베타테스터였을 뿐이었다.


[지각 프레임워크 해체를 시작합니다. 베이스라인 현실로의 재통합에 대비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그의 발아래 펼쳐졌던 화려한 서울의 야경이 깨진 유리처럼 조각나며 어둠 속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의 붕괴는 처음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해체되고 있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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