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點火-點化)
반바지 작가님의 “절세미”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https://m.blog.naver.com/bahnbazi/223081612022) 만화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가장 완벽한 도형이 구라면, 가장 완벽한 구는 점이다."
물리학자 아리스 손(Aris Thorne)의 삶은 이 차가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광적인 투쟁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오차'를 병적으로 증오했다. 바람에 휘어 자란 나무의 비대칭, 미세하게 짝짝이인 연인의 눈, 무작위로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 그에게 우주는 신의 위대한 실패작이었다. 완벽한 '점'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빅뱅'이라는 무질서한 폭력으로 인해 더럽혀지고, 그 파편들이 138억 년간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소음의 장(場)에 불과했다.
그의 집착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유리 공방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뜨거운 유리를 파이프 끝에 매달아 혼신의 힘을 다해 불었지만, 결과물은 언제나 미세하게 길쭉하거나 어딘가 찌그러진 불완전한 구였다. 아버지는 그 독특한 굴절과 형태를 '개성'이라 부르며 사랑했지만, 어린 아리스의 눈에는 그것이 세상의 근원적인 결함, 용납할 수 없는 오류로 보였다. 어느 날, 그는 비눗방울이 완벽한 구를 이루었다가 '펑'하고 터져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 찰나의 완벽과 이어진 허무. 아리스는 깨달았다. 질량을 가진 모든 것은 중력과 환경의 간섭으로 인해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진정한 완벽은 물질 세계 너머에 있었다.
그의 집착은 학문으로 이어졌다. 그는 구(球)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모든 표면의 점이 중심으로부터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다는 '궁극의 평등'에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탐구는 언제나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의 스승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엘가가 교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리스, 자네가 말하는 완벽은 죽음의 다른 이름일세. 생명이란, 그 완벽한 구의 표면에 생긴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이끼와 같은 거야. 그 균열이 바로 생명이고, 사랑이며, 예술이지."
아리스는 스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균열은 수리해야 할 오류일 뿐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그의 '우주 대칭성 복원 이론'은 기존의 엔트로피 이론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는 우주의 무질서가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이라는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간'이야말로 모든 비대칭과 오류, 즉 '균열'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차원이라 보았다. 그의 해결책은 충격적이었다. 시공간의 각 차원을 지탱하는 양자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상위 차원부터 차례로 붕괴시키는 '연쇄 차원 축소'를 일으킨다는 발상이었다. 4차원에서 3차원으로, 다시 2차원, 1차원,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0차원 '점'으로 회귀시키는 것. 학계는 그를 '종말론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라 불렀다.
비웃음은 그의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막대한 비밀 자금을 끌어모아 칠레 아타카마 사막 가장 깊숙한 곳에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위험한 장치를 건설했다. 이름은 '카타르시스(Katharsis)'. 추악한 우주를 정화하고, 모든 것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릴 제단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삶, 그의 모든 신념이 응축된 그날이 왔다. 지하 벙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는 마지막 시스템 점검표를 확인했다. 그는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엘가가 교수의 낡은 사진을 보았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 약간 비뚤어진 미소. 아리스는 잠시 가슴에 스미는 이물감을 느꼈다. 균열, 비대칭. 그는 고개를 저어 그 감정을 떨쳐내고 거대한 관측창 앞에 섰다.
"최종 시퀀스 돌입. 10초 전."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위하여. 이제 곧 완벽한 안식을 얻게 되리라."
[활성화]
붉은 버튼 위로 그의 손가락이 내려앉았다.
'카타르시스'는 폭음 대신, 시공간의 직조 자체를 풀어헤치는 공명 파동을 토해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시간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분이 사라졌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흐름이라는 개념이 소멸했다. 아리스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았다. 빅뱅의 광채와 마지막 양성자가 붕괴하는 암흑을 하나의 정지된 풍경처럼 인지했다. 자신의 탄생과 지금 이 순간의 소멸이 같은 공간에 박제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 모든 프레임이 한꺼번에 겹쳐진 단 한 장의 사진이 되었다.
다음은 깊이였다. 3차원 공간이 2차원의 평면으로 짓이겨졌다.
산맥은 더 이상 솟아오른 지형이 아니라, 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이 되었다. 행성들은 입체적인 구가 아닌 완벽한 원반이 되어 하늘에 걸렸다. 아리스는 자신의 몸이 납작하게 눌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앞과 뒤가 사라지고, 오직 표면만이 남았다. 우주는 한 폭의 거대한 그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소리도, 바람도, 부피를 가진 모든 것이 의미를 잃었다.
그리고 폭이 사라졌다. 2차원의 우주가 1차원의 선으로 수렴했다.
거대한 그림이었던 우주가 단 하나의 수평선으로 압축되었다. 모든 은하와 별, 모든 존재가 이 무한한 선 위의 한 점으로 표현되었다. 색과 형태는 사라지고, 오직 위치 정보만이 남았다. 아리스의 의식 또한 이 선 위의 한 구간이 되어, 우주의 모든 것이 일렬로 늘어선 장엄한 배열을 인지했다.
그의 감각은 이미 육체를 초월하고 있었다. 시간이 하나의 정물화가 되었을 때, 그는 엘가가 교수의 비뚤어진 미소에 담긴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그 미소를 만들기까지의 모든 삶의 궤적, 모든 슬픔과 기쁨의 총합을 보았다. 균열이란 시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역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깊이가 사라져 모든 것이 평평해졌을 때, 그는 모든 존재의 내면과 외면이 사라지고 오직 표면의 아름다움만이 남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의 선으로 수렴했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파괴한 것이 추함과 오류가 아니라, 관계와 구조, 즉 의미 그 자체였음을. 완벽함이란 내용물이 없는 완벽한 그릇과 같다는 것을.
'아... 이것이... 나의 오차였군.'
그것이 1차원 우주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이 점으로 무너져 내렸다.
1차원의 모든 길이가 사라지고, 무한했던 선이 스스로의 중심으로 접혀 들어갔다.
마침내, 우주는 가장 완벽한 구가 되었다.
반지름 0의 구.
0차원의 점.
완벽한, 그리고 텅 빈 궁극의 아름다움. 절대적인 무(無)의 질서 속에서, 더 이상 그 아름다움을 인식할 존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