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9.8m/s²

9.8m/s²

by ToB

그 숫자는 그의 뼛속까지, 혈관을 흐르는 피의 감각까지 새겨져 있었다. 지구의 중력 가속도, 9.8m/s².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물리 상수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고향의 마지막 속삭임이자, 꿈속에서 붙잡으려 애쓰다 허공만 움켜쥐게 만드는 아련한 감각이었다.


이안은 우주정거장 '망향(望鄕)'의 차가운 관측창에 이마를 기댔다.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는 듯한 묵직한 피로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저 멀리, 검은 벨벳 위에 놓인 푸른 보석처럼 지구가 빛나고 있었다. 15년 전, 인류는 죽어가는 행성을 뒤로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희망을 찾아 떠난 여정이었지만, 이안에게는 영원한 추방과 다름없었다. 그는 마지막 세대의 탐사대원으로 선발되어 이곳, 프록시마 센타우리 b 행성의 궤도에서 고향을 그리는 망부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록시마 b의 중력은 지구의 1.3배였다. 30%라는 숫자는 작아 보일지 몰라도, 인간의 몸에게는 가혹한 족쇄였다. 이곳에 도착한 첫 몇 년간, 탐사대원들은 만성적인 근육통과 골밀도 이상에 시달렸다. 심장은 언제나 한계에 가깝게 뛰어야 혈액을 온몸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점차 이 육중함에 적응해갔지만, 그것은 적응일 뿐 극복은 아니었다. 아무도 지구에서의 가벼운 발걸음, 힘껏 도약했을 때의 짧은 체공, 물수제비를 뜨면 물 위를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돌멩이의 움직임을 잊지 못했다.


특히 이안에게 지구의 중력은 잃어버린 모든 것의 상징이었다. 그는 9.8m/s²라는 숫자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개인 단말기에는 지구에서 가져온 낡은 영상들이 가득했다. 그는 출근 전 매일 아침, 아내가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영상을 보았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았다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시 돌아오는 아내의 웃음소리. 그 모든 자유로운 움직임의 배후에는 9.8m/s²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했다. 이곳 프록시마 b에서는 모든 것이 무겁고, 느리고, 슬프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아빠, 지구에서는 비가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 옆으로는 안 불고?"


딸 아일라의 앳된 목소리가 상념에 잠긴 이안을 깨웠다. 아일라는 망향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 '뉴 제너레이션'이었다. 그녀에게 지구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 속의 별일 뿐이었다. 소녀의 뼈는 강한 중력에 적응하기 위해 지구의 아이들보다 훨씬 단단하고 두껍게 자랐지만, 그 대신 탄력과 유연성을 잃었다. 그녀는 한 번도 '넘어진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배운 적이 없었다. 이곳의 강한 중력 아래서 넘어지는 것은 곧 골절을 의미했기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고 발을 끌며 걷도록 훈련받았다. 아일라는 스케치북에 늘 날개 달린 사람이나 공중에 떠 있는 집을 그리곤 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녀의 상상력에 씨앗을 뿌린 것이다.


이안은 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저 아이에게 진짜 하늘과 바람, 그리고 자유로운 추락의 감각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 생각은 이내 위험한 결심으로 굳어졌다. 그는 자신의 거주 구역 한편을 개조해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구의 환경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룸. 그의 집착이 빚어낸 작은 신세계였다.


그 과정은 고독하고 위태로웠다. 그는 폐기된 장비들에서 부품을 빼돌리고, 야간 근무를 자청해 아무도 쓰지 않는 터미널에서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했다. 지구의 풍경, 새소리와 물소리, 심지어 흙냄새를 구성하는 분자 데이터까지.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기술, 중력 생성 장치의 제어 코드를 빼내는 데 성공했을 때 그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구역의 중력 시스템을 임의로 조작하는 것은 정거장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범죄였다. 하지만 이안은 이것이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자,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줄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다.


몇 달에 걸친 비밀스러운 노력 끝에, 마침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작은 지구가 완성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푸른 잔디와 시원한 바람의 홀로그램이 그들을 맞았다. 이안은 떨리는 손으로 제어판의 마지막 스위치를 올렸다.


[중력 설정: 9.8m/s²]


순간, 그의 몸이 마법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15년간 그를 짓누르던 육중한 강철 코트가 벗겨졌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팔을 벌리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생각보다 훨씬 높이, 그리고 꿈처럼 부드럽게 착지했다. 발소리마저 경쾌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감각,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자유로운 지구의 중력이었다.


"아일라, 이리 와보렴."


아일라는 겁을 먹은 듯 문가에 서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가벼움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괜찮아. 한번 뛰어봐. 이곳에서는 넘어져도 아프지 않아. 이게 바로 아빠의 고향이란다."


이안의 격려에 아일라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이내 경이로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녀는 난생 처음으로 마음껏 뛰어 보았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신비로운 감각, 공중에 머무는 찰나의 자유. 아일라는 웃음을 터뜨리며 방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일부러 넘어졌다. 푹신한 잔디 위로 몸을 던질 때마다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프지 않았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마치 중력의 사슬에서 풀려난 한 마리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행복과 슬픔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경고음이 관제 시스템 전체에 울리며 방 안의 조명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비인가된 중력 제어가 중앙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키며 치명적인 오류를 발생시킨 것이다.


"아빠, 무서워!"


순간, 방 안의 중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몸이 깃털처럼 붕 떠올라 천장에 부딪힐 뻔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쇳덩이처럼 무거워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선반의 물건들이 날아다녔고, 금속판이 뜯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이안은 비상 정지 버튼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아일라, 엎드려! 움직이지 마!"


하지만 아일라는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 겪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취해 방 한가운데서 뛰고 있었다. 중력이 잠시 0에 가까워졌을 때, 그녀의 몸은 즐거운 비명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안의 눈에 그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공중에 뜬 딸의 경이로운 표정, 그리고 그 뒤로 점멸하는 붉은 경고등. 바로 그 순간, 시스템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중력을 강제로 원상 복구시켰다.


[경고: 중력 시스템 강제 동기화. 1.3G로 복귀]


이안의 눈앞에서, 공중에 떠 있던 딸의 몸이 총알처럼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것은 떨어진다 할 수 없는 속도였다. 거대한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폭력적인 추락이었다. 9.8m/s²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가속도는 계산 불능의 영역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악!"


비명조차 되지 못하는 소리와 함께, 아일라는 이안이 직접 설치한 시뮬레이션 장비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혔다.


모든 것이 멎었다. 경고음도, 깜빡이던 조명도, 딸의 웃음소리도. 홀로그램의 푸른 하늘만이 비극적인 현실을 조롱하듯 평화로웠다. 정적 속에서 이안은 망가진 몸을 이끌고 딸에게 기어갔다. 아일라는 미동도 없었다. 하얀 옷 위로 붉은 꽃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딸의 시신을 끌어안고 텅 빈 눈으로 관측창 너머의 지구를 바라보았다. 한때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저 푸른 별은 이제 잔인한 신기루에 불과했다. 그의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프록시마 b의 무거운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서보다 더 빠르고 무겁게 떨어지는 눈물방울.


영원히 9.8m/s²의 부드러운 속도로 떨어지지 못할 그 눈물만이, 아비의 갈라진 심장 속으로, 지구의 그 어떤 심연보다 더 깊숙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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