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크리스마스 ep.9
"우와!"
시작은 감탄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엄청난 인파에 압도당하기도 했고,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며 돌아가는 거대한 지구본 로고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드디어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의 심장부에 발을 내디뎠다.
"아빠, 이번에 디즈니랜드에 가면 아이언맨 있어요?"
"그럼, 디즈니랜드로 이사 온 지 꽤 돼서 거기가 집일걸?"
"아빠, 아빠! 그럼 토이스토리 친구들도 있어?"
"그럼~ 토이스토리도 있고 미키마우스도 있고, 아주 재미있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사실 아이들이 일본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도쿄 디즈니랜드였다. 하지만 도쿄행 티켓을 놓치며 계획이 무산되자마자, 우리는 주저 없이 행선지를 오사카로 바꿨다. 바로 이곳, 유니버셜 스튜디오라는 강력한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들이 열광하는 아이언맨과 딸아이가 좋아하는 토이스토리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아이들은 조금의 불만도 없이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와 주었다. 이곳엔 귀여운 미니언즈와 생동감 넘치는 마리오, 그리고 신비로운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유니버셜 로고 앞에서 '오늘의 행복'을 증명하는 가족 사진을 남긴 뒤, 우리는 드디어 입구의 대기줄을 통과했다. 미리 준비한 익스프레스 패스 덕분에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웅장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죠스였다. 배를 운전하는 선장의 실감 나는 원맨쇼가 시작되자 가족 모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한국의 테마파크에서는 특유의 성조가 섞인 리듬감 있는 멘트가 익숙했는데, 이곳 일본의 선장님은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에너지를 쏟아내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배 위로 튀어 오르는 거대한 상어와 선장님의 열연에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 우리는 본격적인 유니버셜의 마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 목적지는 단연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던 '슈퍼 닌텐도 월드'.
초록색 터널을 지나 눈앞에 펼쳐진 원색의 세상은 마치 게임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곧장 기념품 샵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커다란 코와 보드라운 초록색 등껍질이 달린 '요시 모자'를 골라 머리에 썼다.
그때부터였다. 길을 걷기만 해도 직원들이 아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와아, 요시! 카와이~(귀여워요!)"
"굿 초이스! 요시와 함께 즐거운 모험 하세요!"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들도 계속되는 환대에 어깨가 으쓱해졌는지, 어느새 마리오카트 핸들을 잡은 손동작까지 흉내 내며 신이 났다. 요시 아일랜드의 느긋한 기차에 몸을 싣고 알록달록한 풍경을 즐길 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하지만 그 곁에서 딸아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오빠에게만 쏟아지는 '카와이'라는 찬사와 관심이 못내 부러웠던 모양이다. 결국 딸아이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만... 나만 안 귀엽대..."
당황한 아내와 나는 얼른 딸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우리 공주님도 요시가 되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걸?"
딸아이의 머리 위에도 폭신한 요시 모자가 씌워졌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지나가던 직원들이 딸아이와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 여기도 귀여운 요시가 있네! 카와이 데스네~!"
그 한마디에 눈물은 마법처럼 쏙 들어갔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딸아이는 오빠와 나란히 요시 모자를 쓰고 '쌍둥이 요시'가 되어 닌텐도 월드를 누볐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안개 낀 호수 너머 웅장하게 솟은 호그와트 성이었다. 해리포터 테마파크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아이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고, 버터맥주의 하얀 거품을 입가에 묻힌 채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늘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이언맨과 토이스토리를 보지 못한 아쉬움 따위는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느덧 해가 지고, 유니버셜의 화려한 조명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지하철 안. 덜컹거리는 열차 소리가 자장가라도 된 걸까. 하루 종일 에너지를 쏟아부은 아이들은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비뚤어진 요시 모자 아래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무거운 유모차를 접고 짐 꾸러미를 챙기느라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아이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하게 차올랐다. 디즈니랜드면 어떻고 유니버셜이면 어떠랴. 가족이 함께 웃고, 때로는 울고, 결국 다시 웃으며 함께한 이 시간이 중요한걸테니까 말이다.
나는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살며시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오늘 꿈속에선 마리오와 함께 하늘을 날아도 좋아. 사랑한다, 얘들아.'